[전남일보]에세이·유순남>리더의 덕목은 평범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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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에세이·유순남>리더의 덕목은 평범함에 있다
유순남 수필가
  • 입력 : 2023. 05.30(화) 12:36
유순남 수필가
지난 4월 중순 무렵이다. 4년 전 여수 모 섬에서 같이 근무한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아카시아꽃처럼 맑아 목소리만 들어도 힐링이 된다. 퇴근 후 매일 함께 학교 주변 산을 오르던 추억이 있어 가끔 통화를 하곤 한다. 안부를 묻더니, 본인이 근무하는 학교에 근무하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여수 시내 모 중학교로 교감 승진을 해 왔는데, 수학 공존 교실 강사 공고를 3차까지 냈지만 적당한 강사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나이가 많아 안 된다고 했으나 전공과 학생 상담 경력 등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며 서류제출을 원했다.

공존 교실은 전라남도 교육청에서 올해 처음으로 도입한 사업이다. 강사가 하는 일은 교과 교사와 함께 수업에 참여해서 교사의 설명이 끝나고 문제 푸는 시간에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미리 신청받아 정해진 자리에 앉히고 그 학생들의 문제 풀이를 돕는 일과 학생 생활지도를 돕는다. 교과 교사는 수업이 수월해졌다고 좋아하고, 도움을 받은 학생도 수학 시간이 재밌다고 한다. 수업 부담이나 업무 부담은 적으면서 보람이 많은 일이다. 요즈음 ‘노 시니어 존’이 늘고 있다는데, 나이 많은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것만으로도 기뻐할 일이다.

이곳에서도 매일 퇴근 후에 교감 선생님과 학교 뒷산에 오른다. 안심산(安心山) 정상의 확 트인 전망은 경도, 월호도, 자봉도 그리고 멀리 금오도, 개도, 백야도까지 펼쳐진다. 여러 가지로 학교생활이 즐겁고 안정감이 느껴진다. 선생님들은 성숙한 인품을 지니고 있었고, 무엇보다 학생들이 도심 속의 학교인데도 요즘 아이들 같지 않게 대부분이 착하고 순수했다. 잔잔해 보이는 바다는 가까이 가보면 물 표면이 쉼 없이 일렁이고, 조용한 숲속에서 여러 가지 동식물의 생존경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듯 각 교실에서도 작은 문제들은 있겠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큰일은 한 달이 지나도록 일어나지 않았다.

‘이 안정된 분위기는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이 삼 일에 한 번씩 교실 문짝이 떨어져 나가던 십여 년 전에 근무했던 모 중학교와는 사뭇 다르다. 학교 뒤에 있는 안심산의 기운일까? 아니면 학교 앞 바다에서 올라오는 부드러운 바닷바람 때문일까? 십여 년 전 근무한 중학교는 남학생들만 다니는 학교였는데 이곳은 여학생과 남학생이 함께 생활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매일 아침 “사랑합니다!” 하며 등교를 반겨주는 교장 선생님의 정성이 영향을 미쳤을 것 같기도 하다. 또 한 가지는 편안한 교무실 분위기일 것이다. 교무실 분위기는 교사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은 아이들의 정서로 이어진다.

교무실 분위기는 교감 선생님이 좌우한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학년 실이 따로 있지만 선생님들이 업무가 있을 때 교무실에 와서 교감 선생님과 상의하는 모습을 보면 화기애애하고 막힘이 없다. 모 선생님은 교감 선생님 닮았다는 말에 “좋아하는 분을 닮았다고 하니 기분이 좋다”고 한다. 낮은 자세로 임하면서 교사들의 의견을 하나도 건성으로 듣지 않고 고민하여 해결해주려는 교감 선생님의 친절한 태도가 학생들과 업무에 시달리는 교사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예전에 평교사로 근무할 때는 성품이 따뜻하고 자기 일에 충실하며 원칙과 양심을 지키는 그저 평범하고 조용한 교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보다는 사람은 그 자리에 올려놓아 봐야 진가를 알 수 있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다.

교단을 일찍 떠난 후 비정규직으로 근무한 햇수가 십사 년째다. 비정규직은 1년 이하로 근무하기 때문에 많은 학교를 거친다. 학교 건물 명칭을 자기 이름을 따서 지은 어처구니없는 교장도 보았고, 힘없는 비정규직이나 학생들에게 시켜서는 안 되는 일까지 시키면서 목소리 큰 직원에게는 원칙이 아닌 일도 해달라는 대로 해주는 소신 없는 교장도 보았다. 리더의 덕목은 따로 있지 않다.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과 원칙 그리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공동체가 바르게 갈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봐왔던 리더들 특히 대통령 중에는 오히려 상식과 원칙에서 벗어난 평범하지 못한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상식과 원칙’의 노무현. 그가 그리운 5월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