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리넬리’ 스틸 컷 |
1597년 야코포 페리(Jacopo Peri)의 ‘다프네’는 악보를 볼 수는 없지만,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오페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3년 후 지금도 연주되는 가장 오래된 오페라인 페리의 ‘에우리디체-1600’가 당시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고 유럽 예술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메디치 가문의 딸 마리아와 프랑스 앙리 4세의 결혼식 축하연을 위해 제작돼 큰 인기를 끌었다. 오페라는 종합예술로, 작곡가와 성악가뿐만 아니라, 대본, 무용, 무대미술, 분장, 의상 등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대형 프로젝트 공연예술이었으며, 작은 경제 규모의 도시 국가에서 오페라를 제작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볼거리, 들을거리가 전무했던 시대에 파격적인 오페라는 대중을 사로잡았고, 그 엄청난 인기를 지켜봤던 머리 회전이 뛰어난 이들에 의해 극장 건립과 오페라 제작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왕이 지은 오페라 극장뿐만 아니라 귀족과 부르주아지 계급들에 의해 앞다퉈 극장이 만들어지고, 많은 극장은 다양한 작품들을 수용했으며, 이는 경쟁을 통한 시장의 확대가 이뤄지는 계기가 됐다.
영화 ‘파리넬리’ 스틸 컷 |
대중음악에서 레전드 가수하면 ‘비틀즈’를 꼽는다. 이전 오페라에서 레전드 가수로는 카스트라토인 파리넬리(카를로 브로스키-Carlo Maria Michelangelo Nicola Broschi,1676~1717)를 말한다. 카스트라토(Castrato) 성악가는 거세된 성악가라는 뜻이다. 변성기가 시작되기 전에 거세해 소년 시절에 지니는 고음역의 목소리를 유지하는 가수들을 가리키는데, 18세기 이전까지는 이런 성악가가 많았다. 교황청 안의 도시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여성이 노래를 부르지 못했기에, 카스트라토가 여성의 역할을 대신했다. 카스트라토는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성공하지 않더라도 당시 가족 중 교회에서 성가대로 일할 수 있는 카스트라토가 가족의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1903년 교황 비오 10세가 마침내 로마 교황청 내에서 인위적으로 카스트라토를 만드는 행위를 공식적으로 금지하면서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영화 ‘파리넬리’ 스틸 컷 |
파리넬리는 그의 마지막 22년의 연주 생활을 스페인에서 마무리하게 됐다. 1737년 스페인의 펠리페 5세의 부인 엘리자베타에 의해 초청을 받고 공연을 했으며, 그곳에서 필리페 5세의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10년간 4곡을 반복해서 불렀다고 전해진다. 그는 이후로도 흥행사로 정치 권력을 등에 업고 스페인에서 꾸준한 활동을 했으며, 은퇴 이후에는 쌓아놓은 풍족한 재물을 가지고 고향 이탈리아에서 평안한 여생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파리넬리’ 포스터. 출처 나무위키. |
근래 가끔 바로크나 고전 오페라에 나오는 카스트라토의 역을 지금은 카운터테너나 메조소프라노가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직 음악만을 위해 양성된 인위적 성악가 카스트라토는 반인륜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인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인간의 아름다운 소리를 향한 욕망을 채우고자, 그의 목소리를 재현하기 위해 소프라노와 카운터테너, 그리고 기계음으로 합성해 만든 파리넬리를 부활시켰다. 파리넬리는 스크린과 뮤지컬, 연극무대 안에서 융복합 예술의 소재가 돼 바로크의 명곡 오페라 아리아들을 선보이며, 인간의 예술을 향한 무한한 욕망을 매혹적인 목소리로 표출하고 있다. 특히 영화로 제작된 파리넬리를 통해 우리는 반세기 전의 그를 상상으로 복원해서 오페라의 멋을 무한히 느끼고 있다.
여장한 파리넬리의 케리커쳐. 출처 위키피디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