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98-2> 현대미술에 광주정신 접목, 세계미술 담론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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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
일주이슈 98-2> 현대미술에 광주정신 접목, 세계미술 담론 제시
되돌아본 광주비엔날레 발자취
1995년 ‘광주정신의 시각화’ 창설
5·18 상흔 문화적 ‘치유·승화’ 의지
규모 확대 세계 4대 비엔날레 위상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성장 밑거름
대통령 ‘허수아비 묘사’ 외압 논란
  • 입력 : 2023. 05.07(일) 18:14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제14회 광주비엔날레에서 광주 고려인마을에 사는 이주 학생들과 함께 디아스포라의 삶을 담아낸 고이즈미 메이로의 영상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들. (재)광주비엔날레 제공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식 모습. (재)광주비엔날레 제공
 “광주비엔날레는 광주의 민주적 시민정신과 예술적 전통을 바탕으로 한다…(중략) 1995년 세기말 역사의 굽이에서 광주비엔날레는 새로운 예술의 질서를 위하여 닻을 올린다.”

 1995년 시작된 광주비엔날레의 창설 선언문이다. 창설문의 내용처럼 광주비엔날레는 ‘광주정신의 시각화’와 ‘지역 미술의 세계화’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단계적 발전을 이어왔다. 그 결과 광주비엔날레는 베니스비엔날레, 유럽의 순회비엔날레인 마니페스타, 휘트니비엔날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4대 비엔날레로 자리 잡았다.

 광주비엔날레는 베니스비엔날레가 100주년이 되던 1995년, 한국 미술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정부 주도로 시작됐다.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문화예술의 부흥은 시대적 과제였다. 문민정부가 내걸었던 ‘세계화·지방화’ 정책 기조도 분위기 조성에 한몫했다. 특히 국제 첫 비엔날레가 다른 도시가 아닌 광주에서 열려야 한다는 명분이 뚜렷했다. 5·18민주화운동이 남긴 상흔을 문화적으로 치유하고 승화시키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광주의 특성은 광주비엔날레의 정체성과 차별성을 만들었다. 현재 진행 중인 제14회 광주비엔날레 주제인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에서 강조된 것 역시 ‘광주정신’이다. 유약하지만 모든 곳에 스며들어 결국 변화를 끌어내는 물의 강함이 1980년 5월의 투쟁과 맞닿아 있다. 광주정신은 특정 지역을 넘어 이주민 문제, 소수민 차별 등 모든 형태의 억압에 적용 가능한 담론이 된다. 이처럼 대사회적인 메시지를 자유롭게 함유할 수 있다는 것은 광주비엔날레의 강점이었다.

 더불어 매회 광주에 있는 여러 미술관과 협업해 외부전시와 국가별 부록전시 파빌리온 등을 열어 광주 전역을 ‘아트’로 잇기도 했다. 갤러리는 물론 5·18자유공원, 양동시장, 대인시장, 지역 커뮤니티 공간 등에서 비엔날레 전시가 분산됐다. 광주 도심 곳곳에 소규모 건축조형물을 설치하는 ‘광주폴리’ 프로젝트까지, 예향 광주의 브랜드 이미지가 강화되는 효과로 이어졌다.

 해마다 규모를 키운 광주비엔날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발판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제5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식에서 광주를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선포했으며 그 거점이라 할 수 있는 국립아시문화전당이 2014년 개관했다. 2012년 제9회 광주비엔날레 기간에는 ‘세계비엔날레대회’가 열려 세계 곳곳의 비엔날레 관계자들이 광주에서 한자리에 모이기도 했다. 아시아 중심을 넘어 국제무대에서 광주의 위상과 역할을 인정받은 셈이다.

 2005년에는 경제적 파급효과까지 노린 미술박람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창설했다. 여러 산업 분야에 스며든 디자인의 흐름을 조명한 디자인비엔날레는 2013년 제5회까지 광주비엔날레 재단이 주관을 맡았고 이후 광주디자인진흥원이 운영을 맡게 됐다. 2010년에는 미술시장의 유통구조를 활성화할 목적으로 출품작을 구매할 수 있는 ‘아트페어’를 주관하기 이른다. 아트페어 역시 사업자 공모 용역으로 주관이 바뀌면서 광주비엔날레는 외연의 확장을 거듭했다.

 광주비엔날레의 위기는 2014년 제10회 행사를 앞두고 열린 특별전에서 터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묘사한 홍성담의 ‘세월오월’ 전시가 불허되면서 외압 논란이 벌어졌다. 해당 작품이 너무 정치적이라 목적에 부합하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는데, 이는 광주비엔날레의 설립취지인 ‘광주정신’을 무색하게 하는 변명이었다. 참여 작가들의 보이콧 선언과 이용우 당시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등의 자진 사퇴에 이어 특검 수사로까지 이어졌다.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았다는 점에서 예술인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때마침 2015년 창설 20주년 계기로 발족한 혁신위원회를 필두로 그동안 지적됐던 광주비엔날레의 한계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대중성이 취약하고 지역의 밀착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여전히 대중과의 소통, 부수적 서비스 확대, 언제든 광주비엔날레를 찾아오게 할 상시 참여공간, 연계 프로젝트의 장기적 관리 등이 과제로 남아있다.

 박양우 광주비엔날레 대표는 “광주비엔날레는 동시대 세계 미술에 대한 담론을 제시하고 이끌었다는 측면에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그동안 광주비엔날레 참여작가, 예술감독이 광주정신을 현대미술과 잘 접목시켜 전시를 선보였기 때문에 가능한 평가다. 지역 주민들이 보여준 호응도 흥행 요인에서 빼놓을 수 없다”며 “세계 4대 비엔날레를 넘어 베니스비엔날레에 견주는 수준까지 도달하기 위해 물론 갈길은 남았다. 차기 제15회 예술감독 또한 전시 기획력과 이론을 겸비한 사람으로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