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투사 윤형숙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서석대
독립투사 윤형숙
이용환 논설위원
  • 입력 : 2023. 03.14(화) 16:44
이용환 논설위원
“우리가 몰랐던 소녀의 정신을 되살리고 싶었다.” 2019년 조민호 감독이 만든 ‘항거:유관순 이야기’는 우리가 몰랐던 17살 독립운동가 유관순이 감옥에서 보낸 1년을 담은 영화다. 시종일관 차분하게 이어지는 영상 속 유관순은 지조와 용기, 신념의 화신이었다. 서대문형무소 비좁은 8호실 감옥에 투옥된 유관순. 잔혹한 고문과 핍박이 이어졌지만 끝까지 그는 조국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않았다. 독립의 신념도 잃지 않았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이 유일한 슬픔이다.” 그가 남긴 마지막 유언이다.

광주의 윤형숙도 지조와 신념은 유관순에 못지 않다. 1919년 3월 10일. 본정통으로 불렸던 광주천변 작은장터(현 충장로)에서 일어난 광주3·10독립 만세운동에 나섰던 수피아 학교 2학년 윤형숙은 출동한 일본군의 칼에 왼팔이 잘렸다. 하지만 윤형숙은 나머지 오른팔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불렀다. 재판정에서도 그는 이름을 묻는 재판관을 향해 ‘나는 피 흘리는 계집 윤혈녀’라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의 나이 18살 때였다. 노성태 남도역사연구원장은 이런 윤형숙을 ‘남도의 유관순’이라 했다.

윤형숙의 삶은 불우했다. 수피아에 진학하기 전 외국인 선교사의 집에서 ‘식모살이’를 했던 그는 만세운동으로 체포된 후 가혹한 고문으로 오른쪽 눈마저 멀었다. 어렵게 해방을 맞았지만 6·25전쟁 때 인민군에게 붙잡혀 손양원 목사와 함께 순교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주춧돌로 놨던 독립운동가의 믿을 수 없는 비극이다. ‘왜적에게 뺏긴 나라 되찾기 위해 왼팔과 오른 쪽 눈도 잃었노라. 일본은 망하고 해방되었으나 남북 좌우익으로 갈려 인민군의 총에 간다 마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여 영원하라’는 그의 비문도 가슴을 저미게 한다.

광주에서 들불처럼 번졌던 3·10독립 만세운동을 기념해 지역 시민단체가 윤형숙의 모교인 수피아여고에 윤형숙의 기념비를 세우기 위한 시민운동에 나선다고 한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순국한 독립투사를 기리는 것은 후손들의 당연한 책임이다. 작은 기념비가 주는 상징성도 크다. 하지만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예산이 한계에 봉착해 추진은 더디다. 윤형숙은 짧은 인생동안 광주와 광주 젊은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광주에서 자랄 우리 젊은이들이 나라를 위해 헌신한 윤형숙의 정신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시민의 도전이 아름답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