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지혜 기자 |
왜인지 모르게 미뤄뒀던 ‘소년이 온다’를 모두 읽는데 꼬박 하루가 넘게 걸렸다. 반나절이면 읽겠다 싶었던 소설은 한 챕터를 지날 때마다 소화를 시켜야 했다. 한 챕터 안에서도 한 문단 한 문단이 목에 맺히고 가슴에 맺혀 속도가 나질 않았다. 끝내 도청에 남았던 중학생 동호와 어른거리던 정대의 혼. 그동안 ‘희생자’라고 기억됐던 인물들을 넘어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부터는 설상가상 모든 문장이 고비였다. ‘처음부터 살아남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살아남았지만, 살아 있는 것을 부정한다. 살아서는 안된다고 여긴다. 살아있는 것에 치를 떨고, 경멸하고, 괴로워한다. 매일이 장례식이 되어버렸다는 그들의 삶에 책을 읽고 있는 나조차 살아 있다는 것이 부끄러워진다. 비할 바겠냐마는 지난 겨울 이 핑계 저 핑계로 한 번도 광장에 나서지 않았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까지 몰려온다. 그 광장의 사람들이 나보다 바쁘지 않아서, 더 중요한 일정이 없어서 그 자리에 방한포를 둘둘 싸매고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 속 시민군의 말처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양심이다.
부끄러운 봄을 지나 여름의 길목에서 우리는 또 한 번의 대통령 선거를 맞이한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역시 통과의례인 듯 5·18민주묘지를 찾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광주는 오늘도 헛헛한 숨을 삼켜낸다. 사법리스크에도 불구한 ‘어대명’ 분위기 속에서 유권자들의 혼란은 오히려 가중되고 있다. 기본적인 경쟁 구도조차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형국에서 정책 대결이 주목받을리 만무하다. 대한민국을 둘로 쪼개려는 듯 달려들더니, 이제는 자신들의 팔다리마저 쪼개 이권을 더 가져야겠다며 밤낮 없이 바쁜 분들도 계시다. 정치권의 혼란 속에서 경제 복구 전략, 지역 균형 발전, 각 계층의 갈등 해소 등 정작 필요한 국가적 어젠다는 사라지는 분위기다. 이래저래 부끄러운 일 투성이다.
1980년 5월 광주를, 민주주의를 지켜낸 이들의 정신이 지난 겨울 광장에서 다시 살아났다고 믿었다. 그 정신은 국민들의 것만이어서는 안된다. 환호와 함께 흩어져 버려서도 안된다. 다음 정권을 두고 사활을 걸고 있는 모두가 더 이상 부끄러운 봄이 되지 않도록 국민을 돌아봐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