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의 안개로 떠난 윤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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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무진의 안개로 떠난 윤정희
  • 입력 : 2023. 01.24(화) 16:16
  • 이용규 기자
이용규 논설실장
60년대에서 80년대까지 한국영화를 이끈 1세대 은막의 대스타였던 윤정희씨가 천상의 무대로 옮겼다. ‘영화는 내 인생이고 아흔까지 카메라앞에 설 것’이라는 그의 꿈도 알츠하이머 병마가 앗아갔다. 그의 부음에 SNS에서는 추모의 글들이 이어졌다.

윤정희씨는 프랑스 파리에서 지난 19일 79세의 일기로 별세, 영면에 들어갔다. 산업화의 거센 물결속에서 힘겨운 삶터를 지켜가는 수많은 대한민국의 남성들을 명연기로 위로해준 영원한 배우가 지구별로 여행을 떠난 것이다. “영화는 내인생이고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카메라 앞에 서겠다”며 마지막까지 배우로 활동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낸 그였다.

고인은 지난 1944년 부산에서 출생해 유년시절을 보내다 광주에서 호남의 명문 전남여고를 졸업했다. 1967년 조선대 영문과 시절 영화 ‘청춘극장’ 오디션에서 1200대 경쟁률을 뚫고 주연배우로 데뷔해 지금까지 300여 편에 출연해 지적이고 한국적인 여인상으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씨와 결혼후 프랑스에 정착한 고인은 2010년 이창동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었던 영화 ‘시’에서 심도높은 연기로 평단의 극찬을 받고 국내 영화제 상을 휩쓸었다. 고인의 알츠하이머 투병 소식은 지난 2019년 남편 백씨에 의해 알려져 안타까움을 주었다. 윤씨의 부음에 순천 출신으로 전 한국관광공사 광주전남지사장을 역임한 이강우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1974년 윤정희, 남궁원 주연이었던 영화 무진기행(황홀)에서 제자역으로 출연한 인연을 추억했다. 소설 ‘무진기행’이 원작인 이 영화는 작가 김승옥씨의 출신 고교인 순천고에서 일부 장면을 촬영했다. 이런 인연으로 순천고 1학년때 이 영화에 조연 학생으로 출연한 이 씨는 당시 음악교사 역을 맡은 고인이 교실에서 풍금 연주에 맞춰 ‘고향의 봄’ 합창 장면을 촬영했다는 설명과 함께 ‘선생님 천국에서 다시 기억 찾으시고 아름다운 시절을 추억하며 행복하게 사시길 기원합니다‘는 간절함을 드러냈다. 윤씨가 주연한 ‘황홀’은 순천 국가정원내 김승옥문학관에서 가끔 무료상영하고 있다.

국내외 유명인 중에 알츠하이머 투병을 고백한 사람은 많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은 1994년 담화문을 통해 “나는 인생의 황혼을 향한 여행을 시작하지만 이 나라의 미래는 언제나 찬란한 여명일 것”이란 축복과 함께 알츠하이머 사실을 알렸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말년에는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는 것도 잊고, 부인 낸시 여사도 몰라봤다고 한다. 영화 ‘벤허’에 출연한 배우 찰턴 헤스턴은 2002년 작별 기자회견을 열고 “포기하지 않겠다”고 투병 의지를 밝혔으나 2008년 사망했다. 흔히 치매로 불리는 알츠하이머는 노인성과 혈관성, 알코올성 등으로 나뉘고 증상에 따라 더 세분된다. 가장 많은 노인성은 뇌의 노화 현상으로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발병전에 육체적 죽음이 찾아 오느냐, 아니냐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100세 시대, 오래사는 것은 알츠하이머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이다. 치매는 꼭 노인에게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젊은이들도 적지않게 미래를 삼켜버린 병마에 무너져 안타깝다. 잘난 사람, 못난사람, 부자, 가난한사람, 권력이 있건 없건간에 그 누구를 가리지 않는 치매, 과연 백세시대에 장수는 축복일까, 재앙일까 자문해본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불청객 어떻게 피해야 하느냐는 개인 문제를 넘어 지구촌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다. 가난한 시절 대한민국 남녀노소 모두의 연인이었던 우리시대 영원한 배우 윤정희를 애도하며, 영원한 안식을 기도한다. 이용규 논설실장
이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