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창·정수연> 꿈꾸기와 잊기, 그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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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칼럼
교육의창·정수연> 꿈꾸기와 잊기, 그 사이
정수연 전남대학교사대부설중학교 교사
  • 입력 : 2022. 12.04(일) 14:44
  • 편집에디터
정수연
매일 밤, 달이 지는 것이 그다지 안타깝지 않은 이유는 내일 다시 떠오를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와 천체의 질서 정연함은 절대적인 믿음과 신뢰의 영역으로 마음의 안정감을 주고, 절대적인 것들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품게도 한다. 눈 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형태가 달라진다고 해서 본질이 훼손되는 것이 아님을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꿈을 꾸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사랑하고 인정받고 싶은 꿈, 안전하고 평안한 삶에 대한 꿈, 지금보다 더 나은 삶에 대한 꿈들. 그런데 모든 꿈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로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망각'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바로 '잊기'의 과정인데, 어떤 이유가 되었든 이루어지지 않거나 이룰 수 없는 꿈은 기억의 저편으로 밀어놓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현실태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꿈을 꾸고 잊고, 또 새로운 꿈을 꾸고 다시 잊기'의 과정일밖에.
'일하면서 죽지 않을 권리'에 대한 꿈. 안전한 사회, 안전한 대한민국을 꿈꾸는 일과 꿈과 대비되는 참혹한 집단 기억을 잊는 일을 우리는 언제까지 반복해야 할까? 우리가 만나는 재난이나 위험 상황이 인간의 힘으로 아무리 대비해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천재 지변이 아니라면, 적어도 인간이 만들어낸 도시 문명과 그로 인해 생겨난 위험이라면 '안전한 사회'에 대한 믿음, 책임있는 사과와 반성이 있을 거라는 믿음,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싶다. 천재지변도 대비하기에 따라 그 피해의 규모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도시 한 복판에서 일어난 예견된 사고에 대해 우리 사회는 너무 안일하게 대응했거나 무대응했다는 것을 지난 10월의 이태원 거리에서 확인했다.
'대중이 모이는 곳이라서 예견할 수가 없었다.', '주최가 없는 행사에서 집단 압사 사고는 하나의 현상이다.' 라는 종잡을 수 없는 말들이 책임을 져야 할 자리에 앉은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놀라운 일들 역시 목격하면서, 여전히 아직은 아니네. 라고 체념하게 된다.
지금은 슬픔이 아프고 잔인한 상처로 남지 않도록 뒷수습을 할 때이다. 국가애도기간을 정해서 온 국민의 추모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겠으나 사고를 예방하지 못한 무능했던 행정 기관이 뒤늦게나마 반성의 의미로 사고의 원인을 명확히 밝히고 예방책을 마련하는 행정능력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새삼스럽게 국가의 역할을 다시 묻지 않더라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국가 존재의 제 1원칙을 내팽개쳐서는 안 된다.
헌법 제34조 6항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내 아이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알고 싶다는 부모의 간절한 바람을 우리 사회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서 이유없이 사라져도 좋을 목숨이란 없으니까. 놀러 간 사람들의 목숨값까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느냐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누구라도 죽기 위해 그 자리에 간 것은 아니므로. 어디 수만 리 떨어진 먼 바다에서 일어난 사고도 아니고 우리가 사는 가장 번화한 도시 서울의 한복판에서 일어난 사고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시스템을 정비해야 할 때인 것이다. 달리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다시 꿈을 꾼다. 국가의 공권력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국가 시스템을 갖추기를. 정치인과 행정가들이 자신의 안위와 정치적 이해만을 따지지 않기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좀더 안전하기를. 매슬로우에 따르면 인간은 가장 하위 단계의 욕구인 '생존과 안전'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사랑과 소속', '존경과 자아실현'의 요구를 실현하려고 하는 존재이다.
영국 콜린스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는 '영구적 위기'라는 뜻의 permacrisis 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지난 10월 permanent (영구적인) 와 crisis (위기) 의 합성어인 이 단어가 꼽힌 것은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브렉시트에 이어 코로나 19 팬데믹과 기후변화, 우크라이나 전쟁, 정치적 격변과 고물가 등으로 인해 처한 혼란상을 반영한다고 전한다. 우리나라도 여러 대내외적 악재가 겹쳐 무력감과 한탄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지금의 위기가 영구적인 것이 아닌 지나가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방법을 찾아가야 할 때다.
어느 시간, 어떤 상황에서도 ''국가가 사라지는 시간'이 없기를 바란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