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자 선생이 목포를 떠났다. 지난 달 27일 어머니 이난영의 고향인 목포에서 6일동안 머무른 뒤다.
1935년 스무살에 '목포의 눈물'을 불렀던 가수 이난영의 둘째 딸이며 1959년 미국으로 진출해 TV쇼에 출연하는 등 인기를 얻었던 한국 최초 여성 보컬그룹인 '김시스터즈' 리더다. 지금의 BTS, 블랙핑크, 싸이 등과 같이 한국을 전세계에 알렸던 한류스타 '1호'인 셈이다.
목포에서 열린 '목포뮤직플레이' 개막 행사에 참가해 어머니의 고향에서 어머니의 노래인 '목포의 눈물'과 '다방의 푸른 꿈'을 불러 감동을 선사했다.
'이난영&김시스터즈전시관'이 주관한 '김시스터즈 김숙자 토크'쇼에서 어머니에 대한 옛 추억과 미국에서 가수로 성공하게 된 사례 등을 유쾌하며 애절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했다.
토크쇼는 2016년 '행(幸)과 불행(不幸)으로 보는 가수 이난영의 삶과 노래'로 논문을 발표한 근대 대중음악 분야 멘토(mentor)인 장유정(단국대·가수)교수가 진행했는데 마치 오누이가 함께 나누는 대화처럼 편안했다.
"목포의 눈물이 여러 지역, 스포츠 경기장에서도 함께 불려지는 것을 보며 감동을 받았고 감사하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아버지(김해송·작곡 및 작사가)는 항상 무대에 서는 일에만 관심을 가졌다. 아버지는 자매형제가 하모니를 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고 했다. "어머니(이난영은 우리나라 최초 걸그룹인 '저고리 시스터즈'의 리더)는 족두리를 하며 치마저고리를 입고 무대에 섰다"고 기억했다. "집에 불이 났을 때도 3자매가 해외(미국)에 진출하려면 악기를 배워야 한다며 많은 기회를 주셨다"며 "3개의 악기로 시작해 30개가 넘는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그룹이 됐다"고 말했다.
미국 진출을 앞두고 "23살까지 연애를 하지 말라"고 "유명해 질 때까지 절대로 한국에 들어오지 말라"는 말씀도 했다. "처음 미국 라스베이거스는 흙먼지가 바람에 날리는 넓은 들판 같았다며 그곳의 아시안쇼에 처음으로 공연할 수 있는 기회가 와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다 "미국의 인기 TV쇼인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는데 유명 프로그램인 줄 모르고 출연해서 오히려 떨지 않고 공연했다"고 웃었다. 그는 "로마, 파리, 런던 등 전 유럽 순회공연을 하면서 우리 3자매는 항상 '한국에서 태어난 가수'라는 사실을 알렸고 한국인이란 자부심을 가졌는데 그것은 어머니의 뜻이기도 했다"고 했다.
한 시간 남짓 진행되던 토크 쇼는 어릴 적 어머니 품에 안긴 채 얘기를 듣다가 잠이들었던 것처럼 스르르 빠져 들었다. 선생님은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어두운 밤, 캄캄한 밤 같았다"며 북교동 주민의 통기타로 '실로암'을 연주하며 부른 노래는 가장 긴 여운으로 남는 순간이 됐다. 관객들의 '앵콜' 요청에 '김치깍두기' 한소절을 불러 주며 토크쇼를 마쳤다.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시민들과 함께 한 저녁 식사 자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였다. 곧은 외모에서 풍기는 당당함에도 시민들과 마주치는 눈빛에서는 어머니의 자상함이 묻어났다.
그 자리에서 가슴에 묻어둔 아픈 얘기도 꺼냈다. 그는 "1965년 4월 한국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3자매는 부고장을 들고 밤새 울었다"고 했다. 그때 매니저가 "과연 어머니였다면 우리 3자매가 어떤 선택을 하길 바랬는지 생각해 보라"는 말을 했다고 했다. "공연 취소에 따른 위약금을 지불했어야 했고 갖고 있던 여권으로는 한국에 나가면 다시 미국으로 되돌아 갈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많이 울었다"고 고백했다.
김숙자 선생이 어머니의 고향 '목포'에 와서 전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항상 아버지 김해송과 함께 무대를 기획하고 공연했고 임신 중에도 족두리에 치마저고리를 입고 늘 무대에 섰다는 이야기에서 근대시대 열심히 활동했던 가수이자 공연기획가인 이난영 이야기.
자녀들을 세계적인 시스터즈와 보이즈그룹으로 만들려고 노력했고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악기를 배워야 한다며 자매형제들에게 악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줬고 유명해 질 때까지 절대로 한국에 들어오지 말고 한국인이란 자부심을 잊지 말라고 했다. 1965년 돌아가시면서도 자녀들이 미국에서 계속 활동하길 바랬을 것이라는 이야기에서 자녀들에게 강하면서 끝없는 사랑을 줬고 조국을 사랑했던 어머니 이난영 이야기를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김숙자 선생님은 목포뮤직플레이 무대에서 "어머니 이후 후배가수들이 이런 무대에 계속 설 수 있길 바란다"며 83세 마지막 은퇴 공연을 끝내고 무대를 내려왔다. 우리는 김숙자 선생의 90살, 100살에도 기념 공연하기 위해 다시 무대에 서길 바란다.
김숙자 선생이 떠난 후 목포 북교동 '이난영&김시스터즈 전시관' 벽에는 선생님이 쓴 아들 '앤서니 보니파지오'와 손자, 손녀 '맥케이, 마이클, 카이, 브랜든, 보니파지오'의 이름이 남아서 이 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