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삼의 마을 이야기> 여름꽃 별천지… 섬 산정에 '비밀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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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삼의 마을이야기
이돈삼의 마을 이야기> 여름꽃 별천지… 섬 산정에 '비밀의 정원'
'쑥섬' 고흥 애도||300여 종 꽃들 계절따라 피어||전남도 제1호 민간정원 지정||길고양이 개체수 조절·돌봄 등||주민·고양이 공존 '고양이 천국'
  • 입력 : 2022. 07.07(목) 16:15
  • 편집에디터

섬의 산정에서 만난 꽃밭. 배경 무대로 섬과 바다가 자리하고 있다. 이돈삼

산과 들에 여름꽃이 흐드러졌다. 여름꽃으로 별천지를 이루고 있는 섬으로 간다. 호젓한 섬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섬 자체가 정원이고 꽃밭인 '쑥섬'이다. 전라남도의 제1호 민간정원으로 지정돼 있다.

쑥섬은 고흥반도의 끝자락,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외나로도에 딸려 있다.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고흥군 봉래면 사양리에 속한다. 외나로도항에서 배를 타면 5분 만에 데려다주는, 섬 속의 섬이다.

섬의 면적이 32만6000㎡, 해안선의 길이 3㎞ 남짓의 작은 섬이다. 인구는 주민등록상 30여 명이 산다. 오래 전 섬에 쑥이 지천이었다고, 한자로 쑥애(艾) 자를 써서 애도(艾島)이고 쑥섬이다.

마을 담장에 그려져 있는 고양이 조형물과 그림. 길손의 얼굴에 웃음을 짓게 한다. 이돈삼

비밀의 정원에 세워져 있는 고양이 조형물. 쑥섬이 '고양이섬'이라는 걸 상징하고 있다. 이돈삼

쑥섬은 고양이들의 천국이다. 섬 주민과 동물보호단체인 '동물구조119'가 함께 길고양이를 배려하고 있다. 안 쓰는 기자재를 활용해 고양이를 위한 놀이터와 집을 만들었다. 주민들은 사료를 내어 준다. 수의사들도 참여해 고양이의 개체수 조절에 나섰다.

섬길에서 담장 위에 앉아 졸고 있는 고양이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길손을 흘겨보는 고양이의 눈빛이 귀엽다. 고양이의 천국이면서, 사람과 고양이가 함께 사는 섬이다. '고양이섬'이 입소문을 타면서 섬을 찾는 여행객들이 부쩍 늘었다. 젊은 연인들의 발길도 줄을 잇는다.

고양이들은 많지만, 섬에 개와 닭은 없다. 예부터 내려오는 당제와 연관된다. 섬이 다 그렇지만, 쑥섬사람들은 전통 풍습에 대한 믿음이 강했다. 당제를 지내러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내려와서 목욕재계를 했다. 개와 닭의 울음소리도 신성한 제사에 방해가 된다고, 아예 기르지 않았다. 마을 뒤 당산에도 제사 때 외에는 사람들의 출입을 못하게 했다.

섬의 산정에서 만난 꽃밭. 배경 무대로 섬과 바다가 자리하고 있다. 이돈삼

섬의 산정에서 만난 꽃밭. 배경 무대로 섬과 바다가 자리하고 있다. 이돈삼

쑥섬의 정원에서 내려다 본 주변 풍경. 섬과 바다가 배경으로 펼쳐진다. 안개 자욱한 날이다. 이돈삼

쑥섬의 정원에서 내려다 본 주변 풍경. 섬과 바다가 배경으로 펼쳐진다. 안개 자욱한 날이다. 이돈삼

농산어촌에 흔한 무덤도 쑥섬에는 없다. 쑥섬은 옛날에 '부자섬'이었다. 주민들은 고기를 잡아 돈을 벌고, 쑥섬 밖의 큰섬에 땅을 샀다. 무덤도 거기에다 썼다. 초분을 썼다가 나중에 섬밖에 본장을 하기도 했다. 큰섬이나 뭍을 지향하는 작은 섬사람들의 바람이 담겨 있다.

섬의 풍광도 아름답다. '아직 가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다시 찾는다. 쑥섬은 겉보기에 아주 작고 평범해 보이지만, 섬에 들어가면 금세 평범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돌담길은 수십 년에서 100년까지 됐다. 세월의 더께가 묻어난다. 뒷산은 난대수종 수천 그루로 숲을 이루고 있다. 난대림의 보고다. 무엇보다도 섬의 산정에 비밀의 정원이 있다. 쑥섬의 큰 자랑이다.

해발 80m의 산정에 오르면 널따란 평지가 펼쳐진다. 산정까지 오르지 않으면 만날 수 없고, 섬 밖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는 비밀의 정원이다. 먼바다에 떠 있는 섬에 비밀의 정원까지 만들어져 있다.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재간이 없다.

하늘 아래 꽃밭에는 300여 종의 꽃이 철따라 옷을 바꿔 입는다. 지금은 하얀색과 진분홍색이 어우러져 예쁜 백합과 탐스러운 수국이 많이 피었다. 개패랭이꽃, 참나리꽃, 기생초도 지천이다. 페튜니아, 우단동자까지 피었다.

쑥섬의 정원에서 내려다 본 주변 풍경. 섬과 바다가 배경으로 펼쳐진다. 안개 자욱한 날이다. 이돈삼

쑥섬의 정원에서 내려다 본 주변 풍경. 섬과 바다가 배경으로 펼쳐진다. 안개 자욱한 날이다. 이돈삼

쑥섬의 정원에서 내려다 본 주변 풍경. 섬과 바다가 배경으로 펼쳐진다. 안개 자욱한 날이다. 이돈삼

쑥섬의 정원에서 내려다 본 주변 풍경. 섬과 바다가 배경으로 펼쳐진다. 안개 자욱한 날이다. 이돈삼

꽃이 드넓은 바다와 섬을 배경으로 피어 더 아름답다. 한편으로 고흥 발포와 거금도, 소록도가 펼쳐진다. 다른 한편에는 여수 거문도와 백도, 손죽도, 초도가 보인다. 정면으로는 완도 평일도와 생일도, 청산도, 소안도, 보길도가 자리하고 있다. 가까운 데는 크고작은 배가 드나드는 외나로도항이다.

정원의 이름도 동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예쁘다. 환희의 언덕, 별정원, 태양정원, 달정원으로 붙여놓았다. 꽃을 보면서 잠시 쉴만한 나무의자와 평상도 군데군데 놓여 있다. 하나하나가 섬과 아주 잘 어우러진다.

비밀의 정원은 김상현(54)․고채훈(51) 씨 부부가 20여 년 동안 만들었다. 김 씨는 중학교 교사, 고 씨는 외나로도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이다. 이들이 틈나는 대로 꽃과 나무를 심고 가꿨다. 고 씨는 약국 옆에 작은 하우스를 만들어 모종까지 키웠다. 심고 가꾼 꽃이 태풍에 사라지고, 가뭄에 말라 죽어도 계속했다. 주말과 휴일은 물론 방학 때까지 꽃을 가꾸고 숲길을 정비하며 섬을 단장했다.

쑥섬의 정원으로 가는 길. 나무가 터널을 이뤄 멋스럽다. 이돈삼

비밀의 정원이 있는 산정으로 오르는 길도 다소곳하다. 경사는 약간 있지만, 숲에 귀한 나무들이 많다. 나무껍질이 얼룩무늬처럼 생긴 육박나무가 있다. 해병대의 옷과 닮았다고 '해병대나무'로 불린다. 태풍 '매미'한테 험한 꼴을 당하고도 의연하게 살아 있는 후박나무는 '당할머니나무'로 통한다. 남부지방에만 자생하는 푸조나무와 구실잣밤나무도 많다. 산정에서 만날 정원을 상상하며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남자산포바위와 여자산포바위의 전망도 좋다. 산포바위는 오래 전 섬사람들이 놀던 곳이다. 쑥섬사람들은 경치 좋은 데서 놀거나 쉬는 것을 '산포'라고 했다. 여자들이 명절이나 보름날 음식을 싸 와서 노래하고 춤추며 놀던 곳이 여자산포바위다. 남자들이 놀던 곳은 남자산포바위다. 두 바위의 거리가 200m 남짓 된다. 남녀가 따로 놀다가 눈이 마주치면 중간에서 만나 애틋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던, 요즘 말로 '썸'을 탔던 곳이다.

외나로항에 들어온 쑥섬호. 외나로도와 쑥섬을 이어주는 배다. 이돈삼

외나로항에 들어온 쑥섬호. 외나로도와 쑥섬을 이어주는 배다. 이돈삼

신선들이 내려와 바둑을 두거나 거문고를 타며 놀았다는 신선대의 풍광도 압권이다. 방파제로 연결된 무인도의 기암괴석도 절경이다. 쑥섬등대와 동백숲도 정겹다. 신선이 먹는 과일이라는 '신선과'도 신비롭다. 아주 작은 무화과다. 속살이 무화과와 똑같다.

'몬당길'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돌면 이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몬당은 '언덕'의 지역말이다. 길이 섬의 해안 언덕을 따라 이어진다. 휴가철을 맞아 '특별한 여행지'를 찾는 사람들한테 강추할만 한 섬이다.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남도 대변인실〉

천상의 화원으로 가는 길에 만난 푸조나무. 난대림을 지키는 터줏대감이다. 이돈삼

후박나무와 동백나무 우거진 섬길. 왼편 앞으로 보이는 항구가 외나로도항이다. 이돈삼

후박나무와 동백나무 우거진 섬길. 왼편 앞으로 보이는 항구가 외나로도항이다. 이돈삼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