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79> 새것과 오래된 것, 욕정과 슬픔이 공존하는 공간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차노휘의 길위의 인생
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79> 새것과 오래된 것, 욕정과 슬픔이 공존하는 공간
뉴욕, 뉴욕, 뉴욕 - 첼시(Chelsea)에서의 하루 ||뉴욕 최고 맛집들 모인 오래된 공장 개조해 만든 첼시 마켓||쓸모없어진 철도 노선 아픔다운 공원 탈바꿈 하이라인 파크||계단 2500개, 전망 공간 80개로 구성 '뉴욕의 에펠탑' 베슬
  • 입력 : 2022. 06.23(목) 16:21
  • 편집에디터

하이라인의 산책로. 차노휘

첼시는 새것과 오래된 것이, 분방함과 엄격함이 그리고 욕정과 슬픔이 동시에 공존하는 공간인 것 같다. 거리를 걷다보면 동성애자들의 상징인 무지갯빛 깃발이 꽂힌 아파트나 상점이 자주 눈에 들어오고 한때 성시를 이루었을 나이트클럽은 코로나 여파로 굳게 문 닫혔지만 화랑들은 여전히 아티스트들의 자유분방한 기운을 가득 채우고는 사람들을 유혹한다. 오래된 공장을 개조해 만든 첼시 마켓은 뉴욕에서 두 번째라면 서러워할 맛집들이 모여 있다. 1890년대 뉴욕 비스킷 컴퍼니가 공장으로 사용했던 곳을 새로 인테리어를 해 1997년 문을 연 음식 백화점이다. 뿐만 아니라 뉴욕 예술가들의 역사를 간직한 첼시 호텔도, 히말라야 불교 예술을 접할 수 있는 루빈 미술관도 한 해 동안 무려 1조원에 육박하는 작품 판매고를 올리는 가고시안 갤러리도 가볍게 방문할 수가 있다. 그런 다음 미국 현대 미술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휘트니미술관을 들렀다가 승강기를 타고 지상에서 9m 높이인 공중정원에 오르면 하루 일정이 완벽하게 마무리 될 것이다. 하이라인파크라는 공중정원을.

하이라인의 산책로. 차노휘

하이라인파크(High-Line park)

뉴욕 고가 철도 역사는 뉴욕 지하철 보다 36년 앞선, 1868년부터 시작되었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노후한 철로를 드러내고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려는 시도를 뉴욕시가 해오고 있다. 그 성공적인 케이스가 하이라인파크(High-Line park)다. 세월이 지나 쓸모없어진 철도 노선을 아름다운 공원으로 탈바꿈시켰던 것이다. 마침내 도심 속 휴식공간으로 뉴요커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는 물론 미술 조각품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서쪽으로는 허드슨 강변 풍경이 동쪽으로는 프랭크 게리, 장 누벨, 닐 드나리 같은 건축가들이 만든 유명한 현대식 건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첼시의 스카이라인을 볼 수 있다.

이곳은 원래 1930년대 식료품과 원자재를 운반하는 철도 노선이었다. 250여 개의 도축장과 육가공 업체들이 모여 있던 곳이어서 낡고 시끄럽고 더러운 곳이었다. 이제는 패션과 유흥의 중심지가 되었다. 1.6km 거리를 걷다보면 저절로 알 수가 있다. 이 길 자체가 명품이라는 것을.

하이라인의 산책로. 차노휘

베슬(Vessel)

명품이라고 느끼는 것은 하이라인을 연결하고 있는 공원의 시작과 끝에 누구나 탄성을 지를 만한 구조물이 들어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처음 하이라인을 걷게 된 계기가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이었다면 두 번째는 베슬(Vessel) 때문이었다.

베슬은 허드슨 야드의 상징물로, 높이 45m의 벌집 모양 청동색 개방형 건축물이다. 계단 2500개, 전망 공간 80개로 구성돼있다. 건물 내 계단을 올라가면 맨해튼 시내와 허드슨강을 여러 각도로 바라볼 수 있고, 독특한 외관으로 뉴욕의 유명한 관광 명소가 됐다. 일명 '뉴욕의 에펠탑'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지금은 올라갈 수가 없다. '안전' 때문이다.

건물을 휘감은 투명 유리 펜스가 불과 1m를 조금 넘는다.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뛰어내릴 수 있다. 실제 투신자도 연이어 나타났다. 내가 그곳에 갔을 때도 며칠 전에 열네 살 소년이 가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8층 높이에서 뛰어내렸다면서 안전요원들이 입장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 소년까지 합해서 2019년 3월 15일 개방한 뒤로 총 4명이 자살했다. 그래서 또 임시폐쇄다.

처음 베슬에 갔을 때는 그 외관에 홀렸다면 두 번째 베슬을 봤을 때는 그야말로 발칙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베슬과 죽음과의 관계에서 말이다.

베슬은 영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토마스 헤더윅의 작품이다. 헤더윅은 베슬의 형상을 인도 계단우물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인도의 계단우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아담한 크기가 아니다. 우물이 포함된 하나의 건축물이다. 우물계단의 시초는 물이 귀했던 인도 북서지역에서였다. 인도 북서지역은 건조하고 무더워서 대부분 지상에 노출된 우물은 말라버렸다. 깊게 땅을 파야했다. 당시에는 우물을 가지고 있는 것이 귀족의 상징이었고 얼마나 화려하게 만드느냐가 그 가문의 권위를 드러내는 기준이었다. 계단우물은 또한 힌두교의 교리인 우주론과 윤회사상을 근간으로 조성되었다. 우주는 생성하고 점차적으로 발전하며 결국에는 소멸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마치 계절이 바뀌듯 우주의 시간도 바뀌어 결국에는 낡은 우주가 소멸되고 새로운 우주가 만들어지듯이 생성, 발전, 소멸… 따라서 베슬의 형태 또한 인도 계단우물에서 영감을 받았으니 힌두교의 우주론과 윤회사상이 투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죽음 다음에 또 다른 탄생을 예고하며 생명을 미련 없이 버렸던 것이 아닐까. 햇살 가득한 대낮에 이런 불손한 생각으로 동선 패턴이 반복되는 베슬의 육각형 구조물을 다시보고 다시 본다. 차노휘 소설가/ 도보여행가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