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은행나뭇잎에서 온다. 동네 어귀와 도로위에 수북하게 쌓인 샛노란 낙엽위에 또 새로운 길이 났다. 창공을 가르는 가을 바람에 우수수 쏟아지는 황금 낙엽 소리는 장엄한 가을 연주곡이다. 여기 저기 나뒹구는 둥글 둥글한 은행은 행인들의 외면을 받으나 애주가들의 안줏거리로 사랑받아 이중적이다. 살아있는 화석으로 통하는 은행나무는 지구상에 출현한 지 2억년 넘었고, 현존하는 나무 중 가장 오래된 식물이다. 튼튼하고 강인한 나무이기에 오염은 물론 병충해에도 강하다. 전국 어디를 가도 가로수로 은행나무를 만나는 이유다. 은행나무 원산지는 중국이다. 남북조시대에는 평, 수나라와 당나라 시대에는 '평중'으로 통칭됐다. 본초강목 과부에는 '강남이 원산지로 잎이 오리발을 닮아 압각이라고 불렀다'고 은행나무를 기록하고 있다. 송나라 초기에 공물로 바쳐지면서 은행으로 명칭이 바뀌어졌고, 생김새가 살구와 비슷하고 씨가 흰색이라 '백과'라 부르게 됐다. 은행 열매 악취는 고약스럽다. 은행이 익어서 나는 냄새인데 썩은 내와 탄 고무냄새가 섞인 복합적이다. 고급요리에 빠지지 않는 은행은 부드러운 식감과 은행 특유의 달착지근하고 씁쓸한 맛이 한 번 먹어보면 멈출수 없게 만든다. 씁쓸한 맛은 은행의 경고이다. 안에 독이 있으니 조심해서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1세미만 영아는 은행 10알을 먹으면 치명적이고, 3~7세 아동은 30-40알을 먹으면 중독현상이 나타나고 심하면 사망한다. 은행의 공인된 유효 성분은 징코라이드다. 이 성분은 혈소판의 활성도를 낮추는 물질이다. 그렇다고 은행을 매개로 하는 각종 건강보조식품을 맹목적 믿는 건 절대 금물이다.
가을 끝자락 광주·전남 곳곳에서 샛노란 낙엽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황금빛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은행 비'는 어디에서 보든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광주 동구 지산2동 다복마을 은행나무길도 그렇다. 알음알음 입소문나면서 가을 낭만을 연출하는 숨은 명소다. 지산2동 회전교차로에서 지산동 카페거리 길목 양편 1㎞에 이르러 50년생 은행나무 160여 그루가 연출한 샛노랗게 물든 거리 풍경이 제법 낭만적이다. 이 일대에는 한국 최초의 인상주의 화가인 고 오지호 화백이 작업했던 작업실과 민족시인 문병란 시인의집, 10여 곳의 카페가 자리잡고 있다. 서정적인 풍경에 미술과 문학, 카페와의 만남이 가을날의 정취에 진한 커피향이 더해져 풍미를 더해준다. 지산2동사무소와 주민자치위원회는 오지호 화백의 차남인 오방색의 화가 고 오승윤씨와의 인연으로 은행나무에 오방색 옷을 입히고, 다복마을을 상징하는 부엉이 인형으로 은행나무길을 꾸며 독특한 멋과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거리에서는 은행도 사람도 곱게 익어간다. 손을 잡고 걷는 하얀 머리의 노부부도, 젊은 청춘들의 발랄함도 눈부시다. 가을이 가기전 좋은 사람들과 노란 카펫을 밟으며 타박타박 걷는 여유는 가을이 주는 또 다른 낭만이라는 선물이다. 이용규 논설실장
이용규 기자 yonggyu.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