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올해의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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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올해의 나무
최도철 미디어국장
  • 입력 : 2025. 04.21(월) 18:07
 호남 화단의 종조라 불리는 소치(小癡) 허련은 순조 9년(1809) 남도땅 궁벽한 섬 진도 쌍정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림그리기를 즐겨 하던 허련은 20대 후반, 당대 최고의 학승 초의선사에게 학문을 배웠고, 녹우당의 공재 화첩을 보고 채법과 화법을 수양했다.

 그림공부에 매달린 지 수 년, 소치가 33세 되던 해 초의스님은 허련의 습작 몇 점을 한양으로 보낸다. 조선 후기 예원의 마지막 불꽃 추사(秋史) 김정희의 화실이다.

 그림을 본 추사는 허련을 단박에 한양으로 부른다. 이후로 추사의 문하에 입문해 본격적으로 서화를 배우게 된다.

 허련의 그림이 농익을 무렵 낙선재에서 헌종임금을 알현하게 되면서 흥선대원군, 권돈인 등 권문세가들과 함께 글을 짓고 그림을 그렸다.

 허련의 아호도 스승 김정희가 직접 지었다. 추사는 남종화의 대가로 성장한 허련을 두고, 중국 원나라 전설의 화가인 대치(大癡) 황공망과 견줄만하다고 해서 허련에게 소치(小癡)라는 아호를 내려준 것이다.

 허련은 ‘천리를 여행하라’는 추사의 가르침을 받들어 그야말로 붓 한 자루 들고 조선팔도 산하를 유람한 뒤에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온다. 소치 나이 50세쯤이었다고 한다.

 당파 싸움에 영일이 없었던 시류에 스승 추사가 유배를 거듭하다 타계하자, 소치는 진도 첨찰산 쌍계사 담 옆에 작은 산방을 짓고 안착한다.

 초가에는 ‘운림각’이라는 당호를 짓고 거실에는 ‘묵의헌’ 이라는 편액도 걸었다. 허련이 1893년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그림에 매진했던 운림산방이다.

 천부적 예술가의 감성은 산방을 짓는데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산방앞에 널따란 연못을 파 운림지라 이름하고 연꽃을 심었다. 연못 한가운데에는 작은 섬을 만들어 선비들의 고결함을 상징하는 자미나무도 심었다. 지금도 여름이면 청초한 수련이 연못 가득 피어 오르고, 붉은 빛 선연한 배롱나무 꽃이 석달 열흘 피어 운림지에 비친다.

 선비들의 관상수 배롱나무는 예로부터 사대부들의 사랑을 받아 사당, 절집 뜨락, 선비의 원림(苑林), 서원에 많이 심었다.

 운림산방의 95년 된 배롱나무가 산림청의 ‘올해의 나무’로 선정됐다는 짤막소식에 몇해 전 지인들과 산방에 들렀던 기억이 떠오른다.

 운림산방은 살면서 한번은 가봐야 할 인생여행지 가운데 하나이다. 발길이 닿는다면 내 좋은 벗들과 다시 찾아 산방 툇마루에 앉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