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삼의 마을이야기> 담양 해동문화예술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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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삼의 마을이야기
이돈삼의 마을이야기> 담양 해동문화예술촌
  • 입력 : 2021. 04.22(목) 12:54
  • 편집에디터

해동문화예술촌 전경. 옛 주조장에서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담양의 도시재생이 눈길을 끌고 있다. 양곡창고도, 정미소도, 주조장도, 공판장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담빛예술창고와 해동문화예술촌이 담양의 도시재생을 대표한다. 담빛예술창고는 정부양곡 보관창고에 예술의 옷을 입혔다. 복합전시실, 문예카페, 문화체험실로 꾸며져 있다.

해동문화예술촌은 항아리에서 뽀글뽀글 술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던 술공장이었다. 오래되고 낡아서 쓰지 않던 해동주조장이 예술공간으로 부활한 것이다. 부지 6600㎡에 이른다. 전시 공간은 주(主)·조(造)·장(場) 3개 테마로 이뤄져 있다. 갤러리와 아카이브실, 교육실도 갖추고 있다. 맛이 다른 예술마을이다. 해동문화예술촌을 찾아간다.

실내전시관. 해동주조장의 역사와 우리나라의 막걸리, 역사와 문학작품 속에 나오는 막걸리와 술 이야기 등을 보여준다

해동주조장의 역사를 전시관에서 만난다. 세계 여러 나라의 술과 우리나라의 지역 대표 막걸리도 살필 수 있다. 술 익어가는 소리를 영상과 음향으로 재현해 놓은 공간도 있다. 역사와 문학작품 속에 나오는 막걸리와 술 이야기도 흥미롭다.

옛 누룩창고를 활용한 주류 아카이빙 공간도 눈길을 끈다. 나무로 얼키설키 얽힌 천정이 오랜 세월을 대변해준다. 주조장 시설과 술 제조에 사용하던 물을 긷던 우물도 그대로 활용했다. 다양한 전시와 예술이 함께 하는 주조장이다. 상상력도 맘껏 펼칠 수 있다.

실내전시관에서 만난 막걸리 지도. 우리나라 지역을 대표하는 막걸리가 표시돼 있다

막걸리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쌀과 누룩, 물이다. 막걸리의 맛과 향은 숙성된 주정을 거르고, 물을 넣어 도수를 낮춘 다음 병에 담아 포장하는 과정에서 달라진다. 호박을 첨가하면 호박막걸리, 유자를 넣으면 유자막걸리, 딸기를 넣으면 딸기막걸리가 된다.

술 이야기도 재밌다. 옛날 농촌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빠지지 않던 막걸리다. 논두렁과 밭고랑은 물론 잔치집과 초상집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쁠 때나 슬플 때도 막걸리는 늘 함께했다.

중장년층은 막걸리에 얽힌 추억 몇 가지씩 갖고 있다. 막걸리를 받아오라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한 말짜리 통이나 다섯 되짜리 주전자를 들고 주조장으로 갔다. 막걸리를 사오면서 홀짝홀짝 마셨던 기억이다. 집에 닿을 때쯤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취하기도 했다. 해동문화예술촌에 세워져 있던 짐발이 자전거가 추억을 소환해준다. 둥그런 막걸리통을 한꺼번에 여러 개 싣고 배달을 다니던 그 자전거다.

해동주조장의 옛 모습 사진. 당시 해동주조장은 담양을 대표하는 산업시설이었다

해동주조장은 1960년 전후에 생겼다. 70년대까지 막걸리가 최대 호황을 누리던 시절이었다. 당시 해동주조장의 위상은 대단했다. 읍내 곳곳을 누비던 배달원을 합해 종업원이 수십 명이나 되는, 담양읍내에서 가장 큰 산업현장이었다.

해동주조장은 우리나라 근현대 주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주조장의 성쇠가 우리 막걸리의 굴곡진 역사와 맞아떨어진다. 정부는 1948년 10월 양곡관리법을 제정, 더 이상 쌀로 막걸리를 만들지 못하도록 했다. 식량이 부족한 탓이었다. 당시는 밥을 지어 먹을 쌀이 부족해 혼분식을 장려하던 때였다.

정부는 대안으로 일본식 개량누룩 사용을 권장했다. 누룩곰팡이와 효모가 공존하는 한국누룩과 달리, 일본 누룩에는 효모가 없어 주조시간이 짧았다. 쌀 이외의 다른 곡식으로 술을 빚어도 좀처럼 실패하지 않았다. 1960년대 술 소비량의 80%가 막걸리였다. 경제개발시대 막걸리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수요를 감당하기 벅찼다. 카바이드 막걸리가 등장했다. 가스용접에 주로 쓰던 화학물질인 카바이드가 물과 만나 열을 일으켰다. 막걸리의 발효기간을 줄이려고, 공업용 화학물질을 쓴 것이다. 당연히 부작용이 따랐다. 막걸리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고, 숙취도 지독했다. 막걸리의 이미지가 실추되기 시작하더니, 서민의 술이라는 위상도 한꺼번에 무너졌다.

짐발이 자전거. 둥그런 막걸리 통을 한꺼번에 여러 개 싣고 배달을 다니던 자전거다

막걸리가 내리막길을 걷고, 소주와 맥주가 부상했다.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맥주와 소주 소비량이 막걸리를 넘어섰다. 막걸리의 추락은, 막걸리를 빚는 주조장의 경영난으로 이어졌다. 해동주조장도 예외일 수 없었다. 2010년 폐업을 했다.

주변 건물과 주택의 공동화도 덩달아 시작됐다. 주민들 사이에선 우범지대 우려가 커졌다. 원도심 활성화를 고민하던 담양군에선 문화예술 거점공간이 필요했다. 담양군이 해동주조장에 주목한 이유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디자인공예문화진흥원의 '2016산업단지·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에 공모했다. 해동주조장에 대한 재생사업이 추진됐다.

최은태의 '블루'. 세월호 참사와 기후 위기를 표현한 작품이다

주조장은 물론 그 옆을 지키던 교회 건물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주조장 앞의 한옥도 예술촌의 전시공간으로 만들었다. 뒤집힌 세월호의 선체가 보이고, 그 위에 북극곰이 올라 서 있다. 세월호 참사와 기후 위기를 표현한 최은태의 작품 '블루'다. 세월호의 관점에서 북극곰은, 구출해 줄 것을 믿고 기다렸던 304명의 승객을 상징한다. 기후관점에서 보면, 북극곰이 녹고 있는 빙하를 힘겹게 딛고 선 모습이다. 세월호가 골든타임을 놓쳐 소중한 생명과 함께 침몰한 것처럼, 지금의 기후위기를 방치하면 가까운 미래에 지구가 침몰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해동문화예술촌의 교회 전시관. 옛 교회는 새 건물을 지어 옮겨갔다

해동문화예술촌 조성사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당시 주인이 쓰던 안채와 마당을 방문객들의 휴식공간으로 꾸미고 있다. 옛날식 작두펌프가 있는 정원과 작은 연못도 멋스럽다. 시멘트 벽돌담에 그려진 그림도 추억여행으로 이끈다.

쓸모가 없어 오랫동안 방치됐던 주조장이 문화의 향기 가득한 공간으로 재탄생하면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막걸리를 빚으며 담양경제를 이끌던 주조장이 이제는 문화와 예술을 버무리며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해동문화예술촌이 담양의 과거와 현재·미래를 잇고, 담양사람과 외지인의 사이를 잇는 통로가 되고 있다.

이돈삼/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