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오전 찾은 광주 서구 양동시장에서 상인이 인심 좋게 봉지 가득 반찬을 담아주고 있다. 김해나 수습기자
설을 3일 앞둔 22일, 바깥 활동 하기에 춥지 않은 날씨에 아침부터 내린 겨울비가 땅을 촉촉이 적셨다.
명절 대목을 맞아 이날 광주지역 전통시장은 차례상 장을 보러 나온 이들로 오랜만에 활기를 띠었다. 대형마트와 온라인 구매가 활성화되면서 지역 전통시장은 생기를 잃어가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상인들의 웃는 얼굴에서는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평소 한산했던 광주 남구 남광주시장 골목은 오전부터 시장을 찾은 손님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상인들은 저마다 좌판에 채소·생선·과일·반찬 등을 펼쳐놓고 호객 행위에 한창이었다.
유독 손님이 몰리는 가게는 차례상에서 빠질 수 없는 홍어집. '좋은 분이 오셔서 참 행복합니다'라는 간판이 세워진 나주수산에는 27년째 홍어를 판매하고 있다는 김수기(54·여)씨가 오전 내내 홍어를 손질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김씨는 "나주 영산포로 유명한 홍어는 전라도 대표 음식 중 하나다. 가격을 보고 비싸다고 하는 손님도 많은데 저렴한 가격은 대부분 아르헨티나 산으로, 우리는 항상 최상급 국산 홍어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정육점을 8년째 운영하는 김운기(51)씨도 시장을 찾는 손님들을 맞아 고기를 자르고 포장하느라 분주하다.
김씨는 "명절을 앞두고 평시보다 손님이 늘긴 했지만,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해도 크게 줄었다. 대목 준비를 하는 상인들의 분위기는 좋지만 매출이 적어 다소 실망스러워하는 이들도 많다"고 했다.
전통시장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수십 년 전부터 매해 명절 대목에 시장 인심과 정을 느껴온 나이대 지긋한 손님들이었다. 물건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구매할 겸 향수를 곱씹는 이들도 많았다.
조경희(63·여·남구 주월동)씨는 "대형마트가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압박하고 있지만 꾸준히 남광주시장을 애용하고 있다. 가격도 흥정할 수 있고 인심 좋은 서비스에 푸짐한 먹거리까지 준비된 전통시장의 푸근함을 많은 이들이 알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광주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인 서구 양동시장도 간만에 시끌벅적해졌다. 손님들은 저마다 한껏 들뜬 채 명절에 모일 가족들의 배를 채울 산해진미를 찾아 돌아다녔다.
한상원(60·서구 동천동)씨는 "요즘은 명절에 모이는 대신 해외여행을 가기도 한다고 하던데, 이번 설에는 형제가 집으로 다 모이기로 했다. 큰 맘 먹고 한우도 사고, 손주들 줄 장난감도 둘러보는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몰린 인파에 비해 판매량은 다소 저조한 수준이었다. 구경만 하고 지나가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었으며, 가격을 물어보고는 고개를 젓는 이들도 많이 보였다.
40년간 양동시장을 지켜온 부침 전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이진순(59·여)씨는 "요즘은 명절을 쇠지 않는 가정도 많고 차례상도 간소화돼 손님이 많지는 않다. 그나마 전은 상에 꼭 올라야 하기 때문에 장사는 되는 편이지만, 지난해보다 손님이 없는 편이다"고 했다.
상인과 손님 간 물가 체감도가 다른 것도 판매량 저조에 한몫했다. 마트보다 저렴하다고 느끼는 손님들이 있는가 하면, 전통시장을 찾는 주된 이유였던 가격 경쟁력이 많이 떨어졌다는 손님도 있었다.
12년째 채소 가게를 열고 있는 최명철(38)씨는 "작년 설에 비하면 물가는 싼데 손님이 줄어 판매량도 저조하다"고 했다.
하지만 손님 이영초(63·여·북구 신용동)씨는 "과일은 작년하고 비슷한데 고기나 생선은 물가가 좀 오른 것 같다"고 했다.
북구 말바우시장은 명절 대목 기운을 받아 예전의 명성을 되찾은 듯 손님들로 붐볐다. 장바구니에 검정 비닐봉지를 가득 든 이들이 바쁘게 시장을 오가며 물건을 구매했다.
"너무 비싸다. 1000원만 더 깎아줘요."
"더는 안 돼. 이미 2000원 깎아줬잖아. 대신 덤으로 귤 몇 개 더 얹어줄게."
지키려는 자와 깎으려는 자. 은근한 신경전을 펼치며 팽팽히 맞서던 상인과 손님은 이내 타협점을 찾아 웃는 얼굴로 셈을 치렀다.
간혹 보이는 젊은이들은 부모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신기한 듯 연신 시장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트와 온라인 구매에 익숙해져 있는 이들에게 가격을 흥정하고 덤을 얹어주는 광경은 낯설게만 느껴졌다.
이한수(23·북구 문흥동)씨는 "마트에서 살 수 없는 물건들이 시장에 많이 준비된 것을 보고 놀랐다. 전통시장이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를 깨달았고, 앞으로도 상인들이 지속해서 장사할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했다.
가게를 찾는 단 한 명의 손님을 위해 내일 장사 준비에 소홀함이 없는 이들. 덕분에 손님들도 편리함보다는 마트나 온라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따뜻한 정을 찾아 전통시장을 꾸준히 찾는다.
양동시장 무안수산 고인순(여·62)씨는 "정량 따지는 백화점과 달리 전통시장만이 갖는 '덤'이라는 인심은 요즘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람 간 따뜻한 정이다. 꾸준히 찾아주는 단골도 좋지만, 새로운 손님들이 시장을 많이 찾아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위선초(65·여·서구 금호동)씨는 "짐이 한가득이지만 오랜만에 자식들 얼굴 볼 생각에 전혀 힘들지 않다. 가족이 모두 올 한 해 무사히 잘 보냈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22일 오전 광주 동구 남광주시장에서 손님이 상인과 담소를 나누며 굴비 값을 치르고 있다. 김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