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돈삼의 마을이야기 >무안 상동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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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삼의 마을이야기
이돈삼의 마을이야기 >무안 상동마을
이돈삼 / 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
  • 입력 : 2019. 10.03(목) 14:13
  • 편집에디터

무안 상동마을 풍경

태풍을 견뎌낸 들녘이 누렇게 채색되고 있다. 나뭇잎도 서서히 색깔이 변하고 있다. 가을이 무르익어 찬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는 한로(寒露)가 며칠 앞으로 다가와 있다.

천변을 걷고 있는데, 하얀 백로 한 마리가 눈앞에서 날아간다. 저만치 왜가리도 보인다.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는 백로들이다.

문득, 무안 상동마을이 떠오른다. 이른 봄부터 여름까지 때 아닌 눈이라도 내린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곳, 백로와 왜가리 떼로 인해 산자락이 온통 하얗게 변하는 '학마을'이다.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읍 용월리에 속한다. 서해안고속국도 무안나들목에서 무안읍 방면으로 옛 국도의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다. '백로․왜가리 집단 서식지' 입간판을 보고, 논과 논 사이 농로를 따라가서 만난다.

상동마을에 있는 용연저수지와 청용산이 백로와 왜가리의 집단 서식지다. 사람이 사는 마을과 바짝 붙어있는 게 색다르다. 새와 사람이 함께 사는 마을이다. 그만큼 마을사람들이 새들을 지요히 여기며 보살펴준다. 새들의 서식지가 지금껏 유지되고 있는 것도 볼만장만하는 마을사람들 덕분이다.

백로와 왜가리에 대한 마을사람들의 애정이 각별하다. 새들에 해가 될 만한 일은 일절 하지 않는다. 새에 해를 끼칠만한 사람의 접근도 막는다. 조금 과장하면,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경음기도 누르지 않는다. 주민들끼리 다툴 일이 생겨도 새들의 눈치를 보며 목소리를 낮춘다. 주민들이 스스로 만든 '환경보전 생활수칙'에도 백로·왜가리 보호 규정이 들어있다. 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의 성격도 하나 같이 노글노글하다.

그렇다고 백로와 왜가리가 한없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새들로 인한 주민들의 피해가 상당하다. 새들의 울음소리가 흡사 수백, 수천 마리의 개구리가 한꺼번에 우는 것처럼 크다. 분변의 흔적도 부지기수다. 산림 소유자의 피해도 이루 말할 수 없다. 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청용산은 나주정씨 문중의 것이다.

"안 좋게 보는 사람들도 있지. 밤낮없이 시끄럽다고. 먹이를 찾는다고 모 심어놓은 논을 짓이겨놓기도 하고, 분명 피해가 있어. 새들을 쫓아 버리자는 의견도 일부 있긴 헌디, 그러면 쓰간디. 같이 살아야제."

상동마을에서 태어나 여태껏 살고 있다는 김영대(77) 어르신의 말이다. 걱실걱실해 보이는 김 어르신은 "백로와 왜가리가 마을 잘 살아라고 응원하는 것 같다"며 "새들이 마을의 보물"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새들이 마을의 액운을 막아주고, 잘 살게 해준다고 믿고 있다. 해마다 찾아드는 백로와 왜가리이지만, 한국전쟁 때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했다.

백로와 왜가리는 해마다 정월대보름을 전후해 상동마을로 날아든다. 청용산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다가 7∼8월에 날아간다. 벌써 수십 년째 되풀이되는 일상이다. 시나브로 백로와 왜가리가 마을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용연저수지에 연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여름에 시인묵객들을 초청하고 싶어. 백로와 왜가리가 날고 연꽃이 가득한 마을을 보여주고 싶은데, 돈이 없네. 무안군에서 도와주면 좋겄는디, 모르겠어. 내년에는 할 수 있을랑가."

백로와 왜가리가 함께 사는 마을에 대한 김 어르신의 자긍심이 묻어난다. 김 어르신은 지난 9월 무안스포츠파크에서 열린 전남마을이야기박람회에 무안 대표로 나가 상동마을을 소개하고, 당당히 최우수상을 받았다. "백로와 왜가리가 없었다면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며 웃는다.

"특별한 풍경이 없잖아, 여기에. 사람들이 관심 가질만한 문화유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디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우리 같은 사람 보러 올 리는 없고, 새들 보러 오제. 외지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새들이여. 마을의 이미지도 새들이 있어서 좋아졌고, 친환경 생태마을로 소문도 나고."

김 어르신이 청용산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다.

상동마을이 백로와 왜가리 집단 서식지가 된 것은 1960년대 중반이다. 한국전쟁 이후 뜸하던 백로와 왜가리 수천 마리가 날아들었다. 이후 지금까지 해마다 거르지 않고 찾고 있다. 새들의 서식지는 법적으로도 새들의 땅임을 공인받았다. 196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법으로 보호받는, 엄연한 새들의 땅이다.

백로와 왜가리는 지금 바다 건너, 멀리 있는 다른 둥지를 찾아 떠나고 없다. 하얗던 청용산도 푸르름을 되찾았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새들은 여기서 겨울을 나며 텃새로 산다. 주관이 뚜렷한 것인지, 고집불통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Away, I'd rather sail away(멀리, 차라리 멀리 항해를 떠나겠어)/ Like a swan that's here and gone(여기에 머물다 떠나간 백조처럼)/ A man gets tied up to the ground(인간은 땅에 머물러 있다가)/ He gives the world its saddest sound(가장 슬픈 소리를 세상에 들려주지)/ Its saddest sound(가장 처량한 소리를)….

나도 모르게 'El Condor Pasa(철새는 날아가고)'를 흥얼거리고 있다. 페루의 민요에 노랫말을 입힌 폴 사이먼의 노래다. 매력 넘치는 목소리가 귓전에 맴돌면서 이국적인 풍경이 그려진다.

마을길을 따라 가붓이 걷는다. 트랙터 한 대가 옛 우물가에서 쉬고 있다. 그 옆 비닐하우스 앞에선 한 어르신이 자투리땅에 마늘을 심고 있다. 빈 터에서 콩을 훑고 있는 노부부한테도 인사를 건넨다. 담장에 걸린 하늘수박과 주렁주렁 걸린 감이 마음까지 넉넉하게 해준다. 옥구슬처럼 생긴 가새잎개머루도 눈길을 끈다. 해질 무렵 마을 골목이 여느 때보다 호젓하다.

상동마을에는 70여 가구 200여 명이 살고 있다. 벼농사를 주로 짓는다. 양파와 마늘, 콩도 재배한다. 마을이 친환경 생태마을로 지정돼 있다. 마을사람들이 담그는 된장, 청국장, 고추장 등 전통 장류의 상표도 '학동네 전통장'으로 쓰고 있다. 백로와 왜가리가 만들어준 친환경 이미지를 함께 팔고 있다.

극단 갯돌에서는 이 마을을 배경으로 한 연극 '학마을 연가'를 공연했다.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생명공동체의 가치를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었다. 몇 년 전이었다.

상동마을은 무안을 대표하는 들노래인 '상동들노래'의 태 자리이기도 하다. 들노래는 모찌기, 모심기, 논매기, 풍장 작업을 함께 하면서 불렀다. 영산강 유역 들노래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남성 노동요의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전라남도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주민들로 이뤄진 들노래보존회도 유지되고 있다.

무안 상동마을 풍경

무안 상동마을 풍경

무안 상동마을 골목 담장에서 만난 가새잎개머루

무안 상동마을 골목 담장에서 만난 가새잎개머루

상동마을 골목 담장에서 만난 하늘수박

상동마을 토박이 김영대 어르신

무안 상동마을의 벼논 풍경

무안 상동마을의 벼논 풍경

무안 상동마을의 벼논 풍경

무안 상동마을의 벼논 풍경

상동마을의 옛 우물

연잎 가득한 용연저수지와 청용산

연잎 가득한 용연저수지와 청용산

연잎이 가득한 용연저수지와 상동마을 풍경

연잎이 가득한 용연저수지와 상동마을 풍경

연잎이 가득한 용연저수지와 상동마을 풍경

용연저수지 제방 길

용연저수지 제방 길

청용산 위를 날아다니는 백로와 왜가리

청용산 위를 날아다니는 백로와 왜가리

청용산 위를 날아다니는 백로와 왜가리

청용산 위를 날아다니는 백로와 왜가리

콩수확 작업하는 주민과 청용산

텃밭에 마늘을 심는 마을주민

텃밭에 마늘을 심는 마을주민

텃밭에 마늘을 심는 마을주민

학동네전통장의 항아리와 청용산

이돈삼 / 여행전문 시민기자·전라남도 대변인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