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지실마을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이돈삼의 마을이야기
담양 지실마을
이돈삼 <여행전문 시민기자, 전라남도 대변인실>
  • 입력 : 2019. 02.14(목) 11:27
  • 편집에디터

한국가사문학관

이돈삼 / 여행전문 시민기자, 전라남도 대변인실

'담양'을 가리키는 수식어가 많다. 먼저 떠오르는 게 대나무의 고장이다. '남도의 젖줄' 영산강의 발원지도 담양이다. 딸기의 주산지이기도 하다. 죽녹원과 관방제림,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도 담양의 관광을 대표한다. 조선시대 민간정원의 백미로 소문 난 소쇄원도 담양에 있다.

누정도 많다. 식영정, 독수정, 면앙정, 송강정 등 30곳이 넘는다.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던 조선시대 사림들은 이들 누정에서 주옥같은 시와 글을 지었다. 이른바 가사문학이다. 담양은 가사문학의 산실로 통한다.

가사문학은 시조와 함께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문학 장르다. 고려시대부터 전해지는 시조는 정형화돼 있으며 길이가 짧아 단가(短歌), 가사는 정해진 틀이 없이 자유로운 장가(長歌)로 분류한다.

담양에서 지어진 가사작품은 모두 18편으로 알려져 있다. 전해지는 가사작품 1만5000편 가운데 극히 일부다. 그럼에도 가사문학을 얘기할 때 담양을 첫손가락에 꼽는다. 담양에서는 이서의 〈낙지가〉를 시작으로 정해정의 〈민농가〉까지 600년 넘게 가사문학의 전통을 이어왔다. 그 중에서도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성산별곡〉과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이 다섯 손가락에 꼽힌다.

〈면앙정가〉는 면앙정의 위치와 생김새, 여기서 바라보는 풍경과 사계절의 경관을 그리고 있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즐거움과 임금을 그리는 정도 노래하고 있다.

〈성산별곡〉은 전원생활의 풍류를 읊었다. 우리말의 느낌을 한껏 살려 표현한 작품으로 꼽힌다. 〈관동별곡〉은 당쟁으로 담양에 물러나 있던 그에게 강원도관찰사가 제수되자, 그때의 감동과 관동지역의 경물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사미인곡〉은 임과 이별한 여인의 입장을 빌어 불우한 자신의 처지를 빗대고 있다. 〈속미인곡〉은 본의 아니게 임금에게 버림받은 자신의 입장을 두 여인의 대화 형식으로 풀었다. 사미인곡의 속편으로 불린다.

이들 작품은 한글로 우리의 사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당시는 한문이 주류를 이루던 때였다. 글의 구성과 짜임새도 알찼다. 글 속에 주변 풍광이 녹아 있고, 특유의 정서까지 가득 담고 있었다. 문학성이 빼어나다는 평을 받는 이유다.

그 흔적을 한국가사문학관에서 만난다. '문학관'이라는 선입견 탓에 문턱이 높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철과 임억령·김성원·고경명 등 '성산사선'의 문학 세계를 접할 수 있다. 이들의 문집과 유물도 보여준다.

담양군이 한국가사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는 남면의 이름을 '가사문학면'으로 바꾸는 것도 이런 연유다. 담양군은 2월 19일부터 '남면'의 명칭을 '가사문학면'으로 바꾼다. 지역 고유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담아내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담양군은 지난해 12월 주민의견을 묻는 투표를 했다. 주민의 4분의 3이 찬성을 했다. '읍·면·리·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도 고쳤다. 면 이름 변경은 방위를 토대로 1914년 '남면'이란 명칭을 쓴 지 105년 만의 일이다.

가사문학의 중심이 담양군 남면 지곡리 지실(芝室)마을이다. 창계천(증암천)을 사이에 두고 행정구역이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과 나뉜다. 창계천에는 옛날에 진분홍 배롱나무 꽃이 지천이었다고 '자미탄'으로도 불린다.

한국가사문학관과 식영정, 서하당과 부용당이 지실마을에 속한다. 정철의 〈성산별곡〉 무대가 된 성산과 장원봉, 효자봉, 열녀봉이 감싸고 있는 마을이다. 이곳에 조선의 많은 선비들이 모여 살았다. 성산(별뫼) 주변의 절경을 노래한 식영정 18경을 낳은 곳이기도 하다.

송강 정철(1536-1593)은 사촌 김윤제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벼슬길에 나서기 전까지, 청년 시절을 여기서 보냈다. 김윤제는 환벽당의 주인이다. 1547년 양재역 벽서사건으로 유배된 아버지가 해배되면서 이곳으로 내려온 16살 때부터다. 정철은 김윤제, 양응정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면앙정과 환벽당, 식영정, 소쇄원을 무대로 송순, 임억령, 양산보, 김성원, 기대승, 고경명 등 당시의 명사들과도 가까이 지냈다.

식영정과 달리 우리에게 덜 알려진 계당(溪堂)도 지실마을에 있다. 정철의 시가 남아있던 집을 그의 넷째 아들 기암 정홍명(1582-1650)이 인수하고, 새로 지었다. 시냇물이 집 앞으로 흐른다고 '계당'이라 이름 붙였다. 해마다 봄이면 격이 다른 매화가 피는 집이다. 백양사의 고불매, 선암사의 선암매 등과 함께 손가락에 꼽히는 계당매(溪堂梅)다.

계당에는 송강의 16대 후손인 정구선(80) 씨 부부가 살고 있다. 정 씨는 10여 년 전, 여기에 보관해 오던 고문서 등을 전남대에 기탁했다. 문중 재산은 국민신탁에 맡겼다. 400년 넘게 간직해 온 문화유산을 온전하게 보존하고, 많은 사람들이 두루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한국가사문학관에서 계당으로 가는 마을 입구에 느티나무 고목이 지키고 서 있다. 마을의 수호신 같다. 대숲과 어우러진 문학관 담장을 지나 마을의 고샅으로 이어지는 길도 유연하게 구부러져 있다. 울퉁불퉁 돌담에도 정감이 묻어난다.

그 길을 따라 마을주민들이 오간다. 호젓한 분위기를 찾는 외지인들의 발길도 간혹 오간다. 사부작사부작 거닐기에 더 없이 좋은 길이다. 이 길에서 만수동 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은 나이 든 송강이 '만수명산로(萬壽名山路)'로 부르기도 했다. 어느새 송강 정철이 길동무, 말동무가 되어 함께 걷는 것만 같다.

한국가사문학관

한국가사문학관

한국가사문학관

한국가사문학관

한국가사문학관

한국가사문학관

한국가사문학관

한국 가사문학관 돌담

한국 가사문학관 돌담

한국 가사문학관 돌담

계당

계당매

서하당과 부용당

소쇄원

소쇄원

소쇄원

소쇄원

송강후손 정구선

송강후손 정구선

식영정

식영정

식영정

식영정

지실마을 고샅

지실마을 고샅

지실마을 고목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