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북면 송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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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삼의 마을이야기
화순 북면 송단마을
이돈삼 / 전남도청 대변인실
  • 입력 : 2019. 01.31(목) 12:45
  • 편집에디터

송단마을 가는길

마을이야기 – 화순 북면 송단마을

이돈삼 / 전남도청 대변인실

오래 전, 우리 어머니들은 밥을 짓기 전에 조리로 쌀을 일었다. 조리는 쌀과 섞인 자잘한 돌이나 쭉정이, 잡것 등을 걸러내는데 맞춤이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조리로 쌀을 이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 조리도 본래의 역할보다는 복이 들어오는 조리의 의미를 담은 '복조리'로 바뀌었다. 옛 사람들은 섣달그믐에서 정월 초하루 사이에 1년 동안 쓸 조리를 사서 걸어뒀다. 일찍 살수록 복이 많이 들어온다고 믿었다. 제때 사지 못한 사람은 새해 첫 장날에 달려가서 사기도 했다.

조리는 돈이나 실을 넣어 방 귀퉁이나 대청에 걸었다. 1년 내내 복을 받고, 재물이 불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20∼30년 전까지만 해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지금은 추억 저편의 얘기가 됐다.

화순군 북면 송단마을. 백아산(810m) 차일봉의 서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산골마을이다. 곡성 옥과에서 화순 동복 방면으로 가는 도로에서 산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복조리길'로 이름 붙여져 있다.

주민들은 논에 벼를 심고 밭을 일궈 고구마, 감자, 찰옥수수, 콩 등을 심어 생활하고 있다. 불미나리와 인진쑥도 많이 재배하고 있다. 30~40명이 산다. 60살이 넘은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이 마을이 이른바 복을 짓고, 또 복을 보내는 '복조리마을'이다. 한때는 집집마다 복조리를 만들면서 한 해 10만개까지 만들어 팔았다. 그때는 기업체나 중간상들이 먼저 돈을 가져다주고 복조리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렸다. 마을의 조리 만들기 전통이 100년도 넘었다.

"가을 수확을 끝내고부터 설날 전까지 집집마다 조리 만드느라고 정신이 없었제. 내가 시집왔을 때 시어른들이 만들고 있었고, 나도 자연스럽게 조리를 만들었제."

복조리를 만들고 있던 윤연숙(66) 어르신의 말이다.

그때는 마을에서 복조리를 만들지 않는 집이 없었다. 밤새 아이들까지 나서 만들어도 주문량을 대지 못할 정도였다. 이렇게 만든 복조리를 팔아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육성회비도 냈다. 복조리는 따로 밑천 들이지 않고도 짭짤한 소득을 보장해 주는 마을의 복덩이였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마을의 벼와 보리 수매 수익이 3500만~4000만 원 했는데, 조리로 인한 수익이 두 배는 됐다는 게 마을에서 만난 어르신의 얘기다. 논이 많지 않은 산골인 탓이 크지만, 그만큼 조리 수익이 컸다. 조리의 가격이 좋고, 판로 걱정도 없었다.

송단마을이 '복조리마을'로 명성을 지켜온 것은 백아산의 산죽(山竹) 덕분이었다. 지금은 숲 가꾸기 사업 탓에 많이 줄었지만, 당시만 해도 산죽이 무성했다. 복조리는 산죽 가운데서도 그해에 새로 돋아난 것만을 베어 쓴다.

복조리를 만드는 과정은 산에서 산죽을 베어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산죽을 베어다 삶아 하루쯤 햇볕에 말려서 껍질을 벗긴다. 이것을 네 가닥으로 쪼개서 냇물에 반나절 정도 담가둔다. 물에 불어야 댓살이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야 작업도 한결 수월하다.

이 댓살을 한 줄씩 씨줄 날줄로 꿰어 조리 모양을 만든다.

복조리를 만드는 일은 겉보기에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막상 해보면 힘들다. 댓살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한쪽 무릎을 세워 발로 눌러줘야 한다. 몸이 비틀어지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금세 옆구리가 결리고 목이 뻣뻣해진다.

댓살을 이리저리 끼우다 보면 손끝도 까칠해진다. 장갑을 끼고선 할 수 없는 일이다. 맨손으로 해야 한다. 손바닥에 깡이 박히고, 여차하면 찔리기 일쑤다.

'잘 나가던' 복조리가 퇴색한 것은 1990년대 후반 즈음이다. 중국산 복조리가 들어오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시대가 바뀌고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복조리를 찾는 사람도 없다시피 한다.

지금은 주문이 들어오면, 그만큼만 만든다. 주민들이 복조리를 만드는 것도 돈 때문만은 아니다.

"노느니 허요. 지금은 노인들뿐이어서 만들기도 버겁고, 만들어도 안 팔려요. 이거 하고 나면 온몸이 쑤시고 아픈디. 젊은 사람들 누가 요런 것 하것소? 우리 같이 늙은 사람이나 하제."

복조리를 엮던 나승식(66) 어르신의 말이다.

설날을 앞두고 마을 어르신들은 복조리를 또 만들고 있다. 복을 짓는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을 한다. 다른 사람들한테도 복을 나눠줄 수 있다는 마음에 뿌듯하기도 하다. 산골마을 사람들의 순박한 마음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요즘이다. 일상생활도 버겁기만 하다. 곧 설날이다. 정월대보름도 다가온다. 올 정월엔 복조리 하나 사서 집안에 걸어두면 어떨까.

조리로 우리 사회와 일상의 찌꺼기들을 다 걸러내 버리면 좋겠다. 대신 좋은 일, 모두가 함박웃음 지을 일만 남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복조리길 도로명주소안내판

마을주민 나승식과 윤연숙

마을주민 나승식과 윤연숙

나승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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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연숙

윤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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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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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