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훤을 호남의 역사적 인물로 재발견하자! 복원하자! 추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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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재발견
견훤을 호남의 역사적 인물로 재발견하자! 복원하자! 추앙하자!
조성식(대한민국을 생각하는 호남미래포럼 정책위원장)
  • 입력 : 2018. 12.20(목) 10:20
  • 편집에디터

견훤을 호남의 역사적 인물로 재발견하자! 복원하자! 추앙하자!

조성식(대한민국을 생각하는 호남미래포럼 정책위원장)

견훤은 후백제를 건국한 역사적 인물임에도 주인공 대접을 제대로 받고 있지 못하다. 최근의 연구성과를 반영하지 못하는 기존의 역사서술에서는 견훤은 여전히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왕건은 긍적인 반면에 견훤은 부정적인 역사서술이 많다. 왕건에게 멸망 당한 것도 서러운데 천년 이상을 건너뛴 후예들한테 칭찬을 받지 못할 지언정 나쁜 인물로 치부 당하는 것은 더욱 억울할 것이다.

견훤은 마한과 백제의 고토를 수복하는 과정에서 왕국의 부와 군사력을 키우기 위해 저수지를 신축하거나 개축하거나 하여 농업생산력을 높혀나아갔다, 저수지의 신축이나 개축에 관련된 견훤 설화는 광주전남에서도 전북에서도 충남에서도 충북에서도 전승되고 있다.

광주전남 지역에서는 경양방죽에 관련된 견훤 설화가 전해내려오고 있다. 견훤 어머니의 경양방죽 축조 전설이 그것이다. 후백제왕 견훤의 어머니가 광주의 부자로서 북촌에서 살았는데 견훤이 후백제를 세우기 직전인 신라 진성여왕 때 극심한 흉년을 맞아 광주사람들이 굶주림에 허덕이자 관개시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경양방죽을 만들었다는 전설이다.

그런데 경양방죽와 같은 저수지의 축조와 관련된 견훤 전설은 경양방죽에도 나올 뿐 아니라 당진의 합덕제와 고부의 눌제 축조에도 나오고 있다. 견훤의 탄생지를 둘러싸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술내용이 엇갈리고 있는 것과 상관없이 저수지 관련 견훤 전설은 경양방죽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합덕제와 눌제와 같은 저수지의 축조에도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견훤은 사회경제적 피폐를 시정하여 민심을 수습하고 건국기반을 쌓기 위해서 저수지 축조나 개축, 보수를 추진했을 것이다. 광주에서 빠르게 다른 지역으로 후백제의 영토팽창을 전개하는데는 이러한 저수지 축조나 개축, 보수가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견훤은 농업생산력 제고를 통해 건국기반을 강화하고 국력을 키워가기 위해 경양방죽을 축조하고 당진의 합덕제와 고부의 눌제를 축조하였을 것이며 나아가 다른 저수지를 개축하거나 보수하도록 조치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라도 견훤과 관련된 저수지 설화를 이제 제대로 조사하여 연구하는 게 필요하다. 후백제의 건국기반 강화, 국력강화, 민심수습을 위한 건국 지도자 다운 견훤의 면모를 재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한과 백제를 잇는 정통성을 계승하고 홍익인간을 구현하고자 했던 광주전남을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로 오늘날 크게 되살려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경양방죽의 복원은 광주전남의 역사적 대표인물 견훤의 리더십을 드러내는 일이 될 것으로 믿는다.

경양방죽 사진 경양방죽의 원래규모, 축소규모, 두 갈래의 수원과 물길



1. 경양방죽 사진



경양방죽의 원래규모, 축소규모, 두 갈래의 수원과 물길

당진의 합덕제

2. 당진의 합덕제

고부의 눌제 興德堤에서 바라본 用水路와 訥堤 내부 평야

3. 고부의 눌제



그림 . 興德堤에서 바라본 用水路와 訥堤 내부 평야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