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사림문화 원류, 호남 최초 커뮤니티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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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갑의 정원 이야기
남도 사림문화 원류, 호남 최초 커뮤니티 정원
백양사 쌍계루(雙溪樓)
  • 입력 : 2017. 02.10(금) 00:00
백양사 쌍계루

남도 사림문화 원류, 호남 최초 커뮤니티 정원
백양사 쌍계루(雙溪樓)

두 계곡의 중간지점 위치
뒤엔 백학봉이 병풍 역할


백양사의 원래 이름은 백암사(白巖寺)였다. 중건이후 한 때 정토사로 부르다가 현재는 백양사로 부르고 있다. 그와 관련된 전설이 하나 전해지고 있는데, 어느 날 한 스님이 꿈을 꾸었는데 흰 양(羊) 한마리가 나타나 자신은 수행과 덕을 쌓고 천상으로 떠난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잠에서 깨어난 스님은 절 뒷산에서 흰 양의 주검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후로 절 이름을 백양사(白羊寺)로 바꿨다는 이야기다.

백양사는 백제무왕 33년(632) 여환조사(如幻祖師)가 창건한 호남불교의 요람으로 조계종 5대 총림 가운데 하나다.

백양사에 소속된 암자는 운문암(雲門庵), 약사암(藥師庵), 물외암(物外庵), 영천암(靈泉庵), 청류암(淸流庵) 등이 있는데 고려 충정 2년 각진국사 때 지어졌다.

청류암은 1894년 갑오농민전쟁 시기에 전봉준이 하룻밤 묵어가기도 했고 구한말 항일의병 활동기에는 의병들이 드나들기도 하고 스님들이 의병활동에 참여하는 등 사회운동의 거점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유서 깊은 곳에 왠지 한가로운 느낌마저 드는 누정이 호젓하게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쌍계루(雙溪樓)다.

누정과 계곡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계곡이 있는 곳에 반드시 누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정이 있는 곳에 대체로 계곡이 있다. 불가피한 경우 계곡물을 끌어들여 연못을 조성하거나 먼발치에서라도 물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주로 누정을 지었다.

그런 면에서 쌍계루는 두 계곡(백양계곡과 천진암계곡)이 흐르는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다 뒤로는 백학봉이 병풍처럼 배경이 되어 주고 있어 풍경의 완성도는 두 말할 나위 없는 명승지다.

쌍계루는 고려시대인 1350년 각진국사(1270~1355)가 당시 정토사(현 백양사)를 중창하면서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1370년 대홍수에 휩쓸려 내려간 것을 각진국사의 제자이자 조카인 청수스님이 1377년 복원하였고 몇 차례 중수를 거쳤고 6.25때 완전히 소실되었던 것을 1985년 복원하였으며 현재 건물은 2009년 다시 해체하여 보수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 쌍계루 건물은 문화재적 가치를 논하기 보다는 백학봉과 어우러진 쌍계루 풍경과 일찍부터 옛 문인들이 시문을 남긴 곳으로 그 문화적 가치가 높은 곳이라 할 수 있다.

전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을 갖추고 2층 누각 형태인 쌍계루는 그 형태나 위치로 보아 여느 사찰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또 그 명칭을 짓는 과정도 다른 누각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처음 각진국사가 누각을 건립하였을 때는 특별한 명칭을 갖지 못하였으나 청수스님이 복원하면서 당시 유명한 문사들에게 차례로 작명을 요청하였다.

먼저 그 청을 받은 사람2은 삼봉(三峰) 정도전(1342~1398)이었다. 친원(親元)정책을 반대하다가 권문세족의 미움을 받고 나주로 유배 온 삼봉 정도전은 청수스님의 부탁을 받고 '백암산정토사교류기(白巖山淨土寺橋樓記)'를 남기면서 사찰풍경에 대해 예찬했지만, 이름은 부여하지 않았다.

그 후 다시 목은(牧隱) 이색(1328~1396)이 누각의 좌우 계류에서 흘러나온 두 갈래의 물이 하나로 합쳐진다고 해서 '쌍계루'라 지었는데 이를 '쌍계루기'에 남기게 된다. 삼봉 정도전과 목은 이색을 청수스님께 소개한 사람은 당시 용진사의 무열스님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이색에 의해 이름을 얻게 된 쌍계루는 다시 포은(圃隱) 정몽주(1337~1392)가 '쌍계루'라는 칠언율시를 남기면서 세상에 그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후 많은 문인들이 쌍계루에 올라 목은 선생의 시(詩)에 앞 다투어 차운(次韻)하면서 많은 시들을 남기게 되었는데 지금도 삼봉, 목은, 포은의 시문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쌍계류는 당대 큰스님이셨던 청수스님, 무열스님, 환암스님, 절간스님과 최고의 학인이자 정치가였던 삼봉 정도전,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등 당시 내로라하는 쟁쟁한 인물들의 교류와 숱한 사연이 얽혀있는 유서 깊은 장소라는 점에서 흥분을 감출 수 없게 만든다.

어찌 보면 쌍계루는 호남 사림문화의 원류(原流)이자 최초의 커뮤니티 정원(Community Garden)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쌍계루 백미 '아기단풍'과 '풍경 도우미'-----------------------------------


다양한 식생 정원 아름다움 더해
백양사서 첫 발견'백양꽃' 눈길


백양사, 백학봉이 위치한 백암산은 1500여종의 다양하고 풍요로운 동ㆍ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백양사 주변의 단풍경관과 어우러진 쌍계루와 백양사 대웅전에서 바라보는 백학봉의 암벽경관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예로부터 '대한팔경' 가운데 하나로 꼽혀왔을 만큼 이름난 명승지다.

쌍계루의 백미는 단연 아기단풍이 익어가는 가을풍경이다. 이곳 단풍은 잎이 얇고 작은데다 빛깔이 고운 것이 특징으로 생김새가 아기 손바닥 같다하여 일명 '아기단풍'으로 불린다. 그렇다고 아기단풍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국에서 단풍나무 종류가 가장 많은 곳으로도 유명한데 당단풍, 좁은단풍, 털참단풍, 네군도단풍 등 모두 13종의 단풍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가을이면 온통 붉은 계열의 단풍이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지천을 물들인다.

쌍계루를 향하는 도로 양쪽 가로수와 하천주변의 단풍이 연신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마침내 쌍계루에 이르는 지점에서 절정을 이룬다. 쌍계루 풍경의 주역은 물론 아기단풍이다. 그렇지만 쌍계루의 변화무쌍한 풍경의 완성도를 돕는 도우미 식물들이 여럿 있다.

먼저 백양사 내부로 들어가면 귀한 식물이 반갑게 맞이해준다. 바로 고불매(古佛梅)다. 백양사 고불매(천연기념물제486호)는 담홍색 꽃이 피는 개체 중 가장 대표적이며, 호남오매(湖南五梅) 가운데 하나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송받아온 귀중한 자연유산이자 백양사 대표 얼굴이 되었다.

또 백양사 때문에 생겨난 이름 백양꽃(Lycoris koreana NAKAI)이 있다. 백양꽃의 꽃말은 초가을의 그리움, 진한 미소이다. 어쩌면 단풍을 그리워하며 피는 가을마중 꽃인지도 모르겠다. 백양꽃은 꽃과 잎을 동시에 볼 수 없다는 상사화랑 같은 집안이다. 상사화와 백양꽃은 봄에 잎이 먼저 나오지만 꽃무릇이나 개상사화는 가을에 잎이 먼저 나온다. 모두 알뿌리식물이라 그런지 꽃이 참 크고 아름답다. 추위에 약해 주로 남부지역에서 자생한다. 백양꽃이란 이름은 백양사 인근에서 처음 발견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백양사 인근에는 귀한 식물 군락지도 있는데 바로 백양사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153호)과 갈참나무 군락지다. 주목과에 속한 상록침엽수 비자나무는 백양사 주변이 북방한계선일 만큼 온난한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다. 지금은 남부지방과 제주도 일부에만 자라고 있어 대부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오래전부터 고급 바둑판을 만드는데 애용되었다고도 한다.

갈참나무 군락지도 보호되어야 할 귀한 식생인데 여기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수령 700년 된 갈참나무가 있다.

또 경내에 있는 보리수(菩提樹)도 유감없이 풍경도우미를 자처하고 있다. 이 나무는 도수(道樹), 각수(覺樹)라고도 불리는데 보리(菩提 bodhi)는 인도 고대어인 산스크리트어를 한자로 음역한 것이며 '깨달음의 지혜'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백양사 쌍계루 인근에서 빼 놓을 수 없는 향토풍경이 또 있다. 바로 사과나무와 감나무이다. 장성의 과일이 참 맛있지만 특히 사과와 감(곶감)이다. 언제부턴가 사과와 감이 주렁주렁 열려 있는 풍경은 아기단풍과 더불어 장성의 가을을 대표하는 향토풍경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풍경이나 정원은 그야말로 꽃과 나무들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연출되는 상생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자연에 대한 이해와 그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안목이 더해진다면 백양사 쌍계루정원과 같은 멋진 작품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광주전남연구원 문화관광연구실장 송태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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