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언어의 유희로 파헤친 접대골프의 씁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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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언어의 유희로 파헤친 접대골프의 씁쓸함
하정우 감독 ‘로비’
  • 입력 : 2025. 04.14(월) 17:08
하정우 감독 ‘로비’. 미시간벤처캐피탈㈜ 제공
하정우 감독 ‘로비’ 포스터. 미시간벤처캐피탈㈜ 제공
배우가 감독을 겸하게 되면 어떤 이점이 있을까.? 주역 배우 역과 연출을 함께한 하정우 감독은 감독으로서의 독자적 보편성(?)과 설득력보다는 “배우의 눈을 봐주고 귀를 열어두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배우를 겸한 감독만이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하정우 감독의 영화는 거북함이 배제된 듯한 유쾌함이 있다. 그가 말하는 코미디는 슬랩스틱이나 의도적 웃음 코드에 노림수를 둔 영화가 아니다. 아무리 무겁고 긴장감이 흐르는 영화나 비극적 영화라도 상황이 웃음을 빚어낼 수 있다. 하 감독이 포커스를 두는 웃음은 바로 이런 것이다.

요 몇 달 동안 대한민국의 흘러가는 정국을 돌이켜 보면 너무도 공감이 가는 얘기다. 대통령이 자신의 의견반대 세력을 ‘종북’으로 몰고 간다거나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을 ‘애국 국민’으로 단정 짓는 일을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헛웃음을 웃었던가.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삶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인데, 멀리서 보면 희극’임을 절감하면서. 다행스럽게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굳건하고 헌법재판소는 공명정대한 판결을 내렸다. 아직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지녀도 되며 좀더 발전된 민주주의를 꿈꿔도 된다는 것이다.

영화 ‘로비’는 좀더 나은 대한민국 사회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다. 연구 밖에 모르는 스타트업 대표 윤창욱(배우 하정우)은 신기술을 개발했다. 주차장에 주차만 해도 전기차의 충전을 해주는 ‘매립형’ 충전기술이라 가히 획기적이다. 그렇지만 4조원에 달하는 국책사업을 따내야 회사가 산다. 라이벌 회사는 예전에 실리콘벨리에서 동거동락했던 손광우(배우 박병은)가 대표다. 손광우는 함께 개발했던 ‘돌출형’ 충전기술을 빼앗아 따로 회사를 설립했지만 보다 새로운 매립형을 개발하지 못한 상태다. 손광우의 특기는 로비력. 일찌감치 미래산업부 장관 조향숙(배우 강말금)을 포섭해 두었다. 급기야 상대가 “더럽게 싸움을 걸면, 더럽게 맞서라”는 김 이사(배우 곽선영)의 의견을 수용하기에 이른 윤창욱은 로비를 위해 생전 처음으로 급하게 골프를 배운다.

신문기자 박용훈(배우 이동휘)을 매개로 실무 총책인 미래산업부 최우현 실장(배우 김의성)을 대상으로 한 접대 골프 라운딩에 나서기 위함이다. 창욱은 최 실장의 팬심에 따라 골프선수 진세빈(배우 강해림)을 어렵게 초빙한다. 창욱으로서는 골프 지식을 단시간에 외운 후라 해프닝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캐디의 당돌함은 ‘참 더러운’ 로비임을 각인시킨다. 이날 손광우는 공교롭게도 같은 골프장에서 조 장관의 최애 스타 마태수(배우 최시원) 그리고 골프장 대표의 아내 다미(배우 차주영)와 함께 라운딩 중이다. 한편, 골프장 대표에게도 조 장관에 대한 로비가 필요한 상황이라 이들의 움직임을 과학의 힘을 빌려 주시한다.

영화 ‘로비’는 스토리의 전개방식으로 보면 케이퍼 무비다. 케이퍼 무비의 형식 속에 담긴 블랙 코미디. 그런데 언어의 유희, 즉 말장난을 담은 대사가 하도 찬연해서 금세 관객의 웃음을 터트리게 하고 자연 일반 코미디 장르로 이월시키고 만다. “뇌가 작다”거나 “실물보다 화면이 더 낫네요”로 시작하다 보니 셀럽에게 예를 표하는 “호랑이 울분을 가진 숫사슴의 억눌린 감정”이란 극중 대사에도 그저 코믹으로 수용하게 된다. 긴 대사를 빠른 템포로 소화하고 풍자 섞인 대사의 맛을 살리기 위해 수십번에 걸친 대본 리딩 과정이 있었음을 감독은 밝힌다. 골프장이라는 단조로운 공간과 5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 속에서 정신없는 상황 전개가 이어진 것은 감독의 역량으로 보인다. 행간에 들여다 보이는 배우 간의 케미스트리는 아마도 배우가 감독이라서 얻어낸 강점이었으리라.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의 로비는 술집과 화투판으로부터 골프장으로 이동했다. 탁 트인 대자연 속에 스포츠맨 정신으로 즐기는 건강한 운동이라 해도 사람 간의 관계속에 이루어지다 보니 친목도 과시도 로비도 은밀함도 공존했으리라. 우리 사회에 접대 골프란 용어가 존재하는 씁쓸한 맛을 영화는 파헤쳐 간다. 코믹 장르를 등에 업고 응당 과장된 전개를 펼쳤으리라는 짐작 뒤안에는 ‘접대 골프의 실체가 저럴까’ 싶은 의구심도 떨굴 수 없는 영화였다. 로비는 부정부패와 관련되어 있는 경우, 형사법 처벌 그리고 특정범죄 가중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금품, 향응, 그 밖의 이익을 받거나 받을 것을 약속한 자 또는 제3자에게 공여하게 하거나 이를 약속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과 천만 원 이하의 벌금. 이 경우, 병과할 수 있다.’ 이 처벌이 너무 약해서 영화 ‘로비’가 만들어졌을까? 백제예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