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일상에서 소소한 의미를 찾는 인디 영화의 신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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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일상에서 소소한 의미를 찾는 인디 영화의 신선함
김태양 감독 ‘미망’
  • 입력 : 2025. 01.06(월) 17:34
김태양 감독 ‘미망’. 영화사 진진 제공
김태양 감독 ‘미망’ 포스터. 영화사 진진 제공
지난 주는 너무도 충격적인 슬픈 연말이었다. 연초에 민주광장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국화꽃 한 송이를 놓으며 제주항공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국화꽃 옆에 함께놓인 자동차 장난감이 울컥 눈물을 솟게 했다. 어린 희생자를 위한 어떤 마음씀이 느껴졌다. 고인들의 영면을 빌며 남은 자들의 고통에 그 어떤 위로도 닿지 못할것만 같은 아득함에 절망감이 엄습해 들었다. 어둡고 슬픈 마음을 어찌하지 못한 채 길 건너편 독립영화관을 찾았다. 이끌리는 영화 타이틀 ‘미망’이 왠지 남은 자의 슬픔을 대변해줄 것만 같아서.

막상 스크린을 대하고 보니, 영화 ‘미망’은 예상과 다르게 로맨스 장르라 할 수 있었다. 일상에서 바로 옆에 있는 누군가의 얘기인 듯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있을 법한 얘기였다. 차 한잔 앞에 두고 소소하게 얘기를 나누듯 영화는 그렇게 풀어가고 있었다. 영화는 세 파트로 나뉘어 있다. 소제목으로도 사용되는 미망(迷妄), 미망(未忘), 미망(彌望)의 연계. 첫 번째 미망(迷妄·사리에 어두워 갈피를 못 잡고 헤맴)에는 여자(배우 이명하)가 을지로3가역 인파 사이에서 길을 헤매고 있다. 그러다 옛 연인(배우 하성국)을 재회하는 신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자연스레 광화문 거리를 걸으며 그 시절에 나눴던 소소한 얘기를 이어간다. 광화문 광장에 있는 이순신 동상이 칼을 오른손에 쥐고 있는 건 왼손 잡이라서가 아닐까라는 둥의 사소한 얘기다. 어릴 적 연애가 뭔지 잘 몰라서 헤맸던 그 시절처럼. 그러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치고 종각역에 닫자 성숙한 자세로 헤어지는 인사를 나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미망(未忘·잊으려 해도 안 잊혀짐)이다. 여자는 자신을 좋아하는 회사직원(배우 박봉준)이 있지만 막상 그가 자신에게 관심을 표했을 적에는 왠지 그 남자가 떠올려진다는 것. 잊으려 해도 잘 안 잊혀지는 옛날의 그 남자가. 세 번째 에피소드는 미망(彌望·멀리 넓게 바라보다). 친구의 장례식, 교외의 사찰에서 다시 재회하게 된 그 남자. 택시를 모는 다른 친구 덕에 서울까지 동승하며 그 시절 광화문의 단골 카페가 그대로 남아 있는지도 알 수 없을 그곳에 가슴 떨리며 함께간다. 변함없는 카페 사장님의 다정함과 변함없는 냉장고 위치며 누구나 노래할 수 있는 기타가 있는 아주 조그마한 카페. 그렇지만 시간이 변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하는 ‘걱정 말아요, 그대’의 가사마냥 서로의 달라진 상황에 따라 서로의 가는 길을 응원해 준다는 것으로 에피소드를 마무리한다.

과거의 연인을 다시 마주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누구나 옛사랑에 대한 추억과 기억이 있지만, 그 사람을 다시 만난다 해서 반드시 행복한 길로 가라는 법은 없다. 사람이 성숙되고 그때의 의견충돌이 숙성되었다 해도 썩 그리 달라질 리가 없다는 것이 더 일반적일 것이다. 영화에서처럼 잠시 설렌다 해도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밖에 없는 터라 각자의 길을 택해 가는 것이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상황이 답인 것처럼.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세상에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변하지 않은 것이 두드러지는 것은 변함이 많은 것이 훨씬 많아서이지만, 절대 변하지 않는 것도 있는 법이라 생각이 많아진다. 독립영화는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카메라 워킹, 배우의 입모양과 사운드가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는 어색함도 관객에게는 어렵지 않게 캐치가 된다. 이름나지 않은 생경한 얼굴의 배우들…. 그렇지만 어딘가 모를 신선함에 독립영화를 응원하게 된다. 영화 ‘미망’은 선이 분명하거나 카테고리가 크지 않은 스토리 라인을 갖고 있다. 일상에서 소소한 의미를 찾는, 그런 의미가 있는 인디 영화의 신선함에 장기하와 얼굴들의 인디 음악이 플러스 되어 매력을 더하고 있었다. (백제예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