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김명선>형수님의 공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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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김명선>형수님의 공덕비
김명선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광주전남지부 실장
  • 입력 : 2024. 07.08(월) 18:10
필자는 고향이 목포시 서산동 달동네다.

집 앞에는 큰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우리는 구술나무라고 불렀다.

가을이면 노랗게 익은 구술이 떨어진다. 먹을 수 없다.

대추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했다.

이제는 고향을 떠난지 40년이 넘었다.

오랜만에 고향집을 한번 찾아가 보자

처음에 게이꼬 집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면 모퉁이에 기남이 할머니 점방이 있었다 기남이 할머니 나이가 그때 몇 살쯤 되었을까 항상 늙게 보였다.

골목길을 두 번 돌아가면 마당이 넓은 성일이네집 성일이 할머니는 월남전에서 전사한 작은아들 ”경호야“를 부르면서 마른 울음을 자주 토해냈다 그럴때마다 온동네가 요란했다.

다시 올라 문표네 아짐도, 매자네 아짐도 “니오냐”면서 반기는 금심이 큰엄마도 오른 어깨에 커다란 통나무 하나를 매고 가쁜숨을 몰아쉬며 걸어가는 동네 수정이 형도 이제는 모두 가버린 그리운 사람들이다.

비틀거리며 구술나무 집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인철이 형 또 술 마셨다고 동생들의 싸늘한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타깝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미워했을까 후회스럽다. 그리고 너무 보고싶다.

구술나무집 변소는 왜 그렇게 자주 터져서 마치 나의 치부를 온 동네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처럼 고개를 숙여야 했을까.

장마철이며 뒷 고랑은 왜 그렇게 자주 막혀서 홍길네 삼촌의 손길을 빌려 그날은 없는 돈으로 달걀 반찬으로 점심준비를 하는 우리 엄마 속을 상하게 했을까.

어느 추운겨울 학교가기 위해 양말을 찾아도 제짝이 없어 짝짝을 신고 갔던 기억도, 비 내리는 아침 우산이 없어 책가방을 머리에 이고 달리기 선수처럼 달리던 기억도, 한여름 건축 설계사무소 실습 출근길 여름 바지가 없어 형의 두꺼운 겨울 바지를 입고 또 입었던 기억들은 세상을 살면서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 디딤돌이었다는 것을 알았고 어려움에 닥쳤을 때 요술 주머니 하나씩을 꺼내 듯 그 기억들로 방패를 삼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79년 늦은 봄. 보리밥 한덩이 씩을 둘러 앉아 점심으로 때울 때 “큰병인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복수 찬 배를 안고 형과 수정이형이 함께 병원진단을 받고와서 아버지가 하신 말이다.

아버지는 진짜 몰랐을까 알고도 그렇게 말했을까.

얼마 후 자식들 곁을 영원히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병을 치유 할 수 있다는 어떤 사람 말을 듣고 일본종교 남묘호랑개교를 밤늦게까지 처절하게 외치는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옆에서 함께하던 나는 눈물이 가려서 밖으로 뛰어 나왔다.

다음날 버스를 타고 옥암리 입구에서 내려 4년 전 먼저 가신 엄마 산소를 찾아 세상과 형들을 원망하면서 많이 울었다.

약국에 가서 간에 좋다는 알부민주사 가격을 물어보니 8만원이라고했다 당시 건축설계사무소에서 받은 내월급은 6만원이었다 나에게는 큰돈이어서 포기했다.

그 뜨거운 여름 아버지는 알부민주사 한대를 못맞고 엄마곁으로 가셨다.

한 달뒤 나는 하사관학교에 입대했다. 이제는 산날보다 그분들 만날 날이 더 가까워져 생각이 많이 난다.

이런 아픔과 힘든 시간들은 나와 형제들 조카들까지 강하게 만들었다 싸움터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가르침을 주었고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길잡이가 되었다.

때로는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형을 원망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형 나이도 많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형이 가장 잘한 일은 형수를 우리 가문호적에 올린 것이다.

또 동생들과 조카들이 옆길로 새지 않도록 버팀목 역할을 한 것이다. 그리고 조카들의 인간성을 바르게 가르친 일이다.

형수는 어린 나이에 형을 만나 다 쓰러진 집안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만삭의 몸으로 무거운 생선통을 머리에 이고 행상을 하느라 목포 어판장을 새벽부터 늦게까지 돌아다니면서 추운겨울과 더운여름 계절의 감각을 잊은체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피 눈물나는 고생을 하셨다.

그 결과 시동생들을 전부 결혼시켜 잘 살고 있고, 자식들 3명을 훌륭하게 키워내셨다. 구술나무집 입구에 공덕비 하나 세워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그곳에 구술나무가 있을까 구술은 열렸을까

뜨거운 여름이면 구술나무 그늘에서 한줄기 바람을 기다리던 그때가 그립다.

모기가 없어서 마당 한구석에서 자리하나 펴고 누워 잠들던 그때가 오늘따라 더욱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