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기고·박형호>컬러풀 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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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 기고·박형호>컬러풀 신안
박형호 신안부군수
  • 입력 : 2023. 06.21(수) 12:44
박형호 부군수
“무슨 박쥐이름이 이래. 붉은박쥐가 뭐야! 뭐 좋은 이름없어요?. 다시한번 찾아보세요.”

국장이 결재를 반려한다. 함평군으로 보낼 희귀동물인 붉은박쥐 보호구역 지정에 대한 보고였다.

“아니 본래 학명이 붉은박쥐인데 날 보고 어떡하란 말인지” 당황했다. 박쥐가 동굴 속에선 붉은색으로 보이지만 야외에서 찍힌 사진엔 황금색이다. 어릴적 만화영의 주인공인 황금박쥐가 생각났다. 결국 붉은박쥐 옆에 일명으로 황금박쥐를 첨가, 결재를 마쳤다. 그 덕분에 지금은 붉은박쥐보다 황금박쥐로 더 잘 알려졌다. 20년 전 전남도청이 광주 충장로에 있던 시절이다. 그때 누구나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네이밍 해 준 분이 고영길 해양수산환경국장이다.

함평은 이 컬러 네이밍을 잘 활용했다. 당시 가치로 28억원이란 거금을 들여 황금박쥐 모형을 만들었다. 15년이 흘러 지금은 금값만 5배로 커진 140억이란다. 금이 좋긴 좋은가 보다. 올 나비축제 기간 동안 황금박쥐 전시관엔 100억원대 황금박쥐 조형물을 보려는 관광객들이 쇄도 했다. 붉은색을 황금색 컬러로 네이밍을 바꾼 결과다.

요즘도 컬러마케팅에 올인하는 지자체가 있다. 신안군이다. 시작은 이렇다. 안좌면 박지도 김매금 할머니의 소망이 “살아생전 두 발로 걸어서 육지로 나오고 싶다”였다. 할머니의 소식을 접한 신안군은 반월도와 박지도를 잇는 목재 연결다리를 놓았다. “어렵사리 다리는 연결했는데 어떻게 하면 많은 관광객이 섬을 찾아올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섬 전체에는 보라(purple)색인 왕도라지와 꿀풀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이 점을 착안해 섬 전체를 보라색으로 물들여보자고 뜻을 모았다. 목교, 마을지붕, 담장은 물론 보라색 꽃이 피는 라벤더, 접시꽃, 버들마편초로 가꿨다. 할머니 할아버지 팬티도 보라색을 입었다는 얘기가 있다. 이런 열정 덕택에 반월박지도는 전국 핫플레이스가 됐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 ‘세계최우수 관광마을’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다.

신안군청 로비엔 이 지역 안좌출신 김환기(1913∼1974)화백의 작품 ‘영원의 노래’가 설치돼 있다. 한국 추상미술 선구자이며 한국 미술품 중 가장 비싸게 거래된 10개 작품 중 9개가 김화백의 작품이다. 이 중 ‘우주’는 우리나라 최초 100억대를 넘어선 131억원에 거래됐다. 그의 호 수화(樹話)는 ‘나무와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수화의 DNA가 신안군에 이어졌을까. 섬 곳곳 우람한 숲정원을 만들었다. 한 그루 나무를 심더라도 숲이 되고 그늘이 되는 큰 나무를 심었다. 대표적으로 도초 팽나무숲이다. ‘이상한변호사 우영우’에서 본 그 나무다. 남해안을 다 뒤져 100년된 742본의 팽나무를 찾았다. 나무를 심을 때도 전문가에 자문을 구했다. “배수가 안되고 소금기가 많은 뻘밭에 나무를 심으면 뿌리가 썩어 고사된다”는 의견을 주며 말렸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방법을 찾았다. 심을 곳 10리 전 구간을 물빠짐이 좋은 흙으로 뚝방을 쌓고 수분공급을 위해 스프링클러를 나무위쪽까지 설치했다. 그 아래엔 보라색 수국으로 덮었다. 멀리서 보면 ‘담양의 관방제림’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산림청에서도 이 조성사례와 생육상을 높게 평가해 ‘모범도시숲’이란 인증서를 증정했다.

도초 팽나무 숲은 시작에 불과하다. 신안군은 ‘1섬에 1정원’ 조성을 군정목표를 삼았다. 식물정원은 무지개 빛 중 빨강 노랑 파랑 보라색 정원을 만들었다. 빨강은 병풍도 맨드라미, 노란색은 선도의 수선화, 파란색은 도초 수국, 보라색은<> 퍼플섬이다. 무지개에는 없는 하얀색은 장산에 ‘화이트정원’을 만들어 ‘칼라 섬꽃 신안’을 보여 줄 계획이다.

대형 수목정원은 도초 팽나무 숲정원 외 임자도 붉은 색 ‘홍매화 정원’이 있다. 백양사 고불매와 화엄사 홍매가 고고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임자 대광해수욕장 홍매는 광할한 규모의 단아함과 정갈함을 전해준다. 아직 일반인에겐 알려지지 않은 시크릿가든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태산목의 ‘매그놀리아 정원’과 향기가 은은해 치유효과가 높은 ‘은목서 치유 숲길’을 증도에 만들었다. 전국 어싱길은 황토길을 걷지만 이 은목서 치유숲길은 부드러운 모래밭을 맨발로 걷는다. 파도가 치면서 ‘소금기가 있는 신선한 음이온’을 무한 공급한다는 건 덤이다. ‘바닷가에서 술을 마시면 취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염기성 음이온 때문이다. 많은 나무를 심다보니 제주와 전국의 오래되고 귀한 나무는 신안으로 모여 들었다. 주민들이 우스게 소리로 ‘군수님! 인자 나무 그만 심읍시다. 섬이 까라 앉것소!’라며 웃는다. 각자 숲은 크기나 가치로 봐서 기네스북에 등재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유럽 정원을 정형식 프랑스정원과 자연풍경식 영국정원으로 나눈다. 정형식 정원은 좌우대칭을 중심으로 꽃과 작은나무를 배치한 주변에 익숙한 정원이다.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관리측면에서 보면 규칙적인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많은 예산을 들여야 한다. 반면 풍경식 정원은 시야가 트인 잔디밭에 큰 나무와 주변 경관을 숲길을 이용 정원으로 끌어들인 차경기법을 사용한다. 신안 정원은 관리비용이 적게 드는 풍경식 숲정원을 택했다. 주변 갯벌과 바다풍광이 있어 굳이 가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숲정원 성공엔 관계 공무원의 노력과 희생이 있다. 이들은 의식도 진취적이고 긍정적이다. “섬에 수백억원짜리 건축물을 짓는 것보다 아름드리 섬 숲정원을 만드는 게 신안에 더 가치가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신규 채용도 행정보다 일반기업에서 근무한 토목과 녹지조경 등 경력자를 대상으로 선발했다. 숲정원 조성·관리하는 녹지직 공무원만 43명이다. 광역 시·도와 전국 시·군·구와 비교해도 최다 규모다. 성실은 기본이다. 이른 새벽 정기선을 타고 숲을 둘러보고 출근하는 직원도 있다. 예술가 기질도 장착했다. 수화 김환기 화백이 사용한 점화의 번짐기법을 활용하는 느낌이 든다. 이를테면 1004개 섬에 조성된 정원 하나 하나를 ‘점’으로 보고 10리길 숲길을 선으로 연결해 궁극적으로 세계최대 규모 ‘섬 국가정원’의 큰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그렇다. 단언컨대 이들의 열정과 작은 힘이 신안의 미래를 이끈다. 신안이 ‘인구소멸지역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라고? 판단이 틀렸다. 이들이 있는 한 소멸이 아닌 ‘컬러풀 불멸 신안’이 될 것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