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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78> 삼겹살·소주·고추장… 그 참을 수 없는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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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78> 삼겹살·소주·고추장… 그 참을 수 없는 유혹

뉴욕, 뉴욕, 뉴욕 - 뉴욕 속의 작은 한국

게재 2022-06-09 16:48:42
맨해튼 한인상가거리. 차노휘
맨해튼 한인상가거리. 차노휘

음식이라는 정체성

장기간 해외에 머물다보면 한국 음식이 그리울 때가 있다. 2018년 12월 말, 스쿠버다이빙 다이브마스터가 되기 위해서 이집트 다합에서 두 달 정도 머물렀을 때였다. 출국할 때 혹시 몰라서 김치를 조금 싸가긴 했지만 며칠 만에 없어졌다. 그곳에서 비빔밥과 육개장을 요리하는, 이집트 청년이 운영하는 아시안 식당이 있었다. 가격은 한국과 별 차이가 없는데 가끔 먹으면 한국음식의 그리움을 달랠 수가 있었다. 어느 날, 오전 다이빙을 끝내고 비빔밥을 먹으러 갔을 때였다. 음식 속에 한 뭉텅이 고양이털이 있는 게 아닌가. 사장이 새 비빔밥을 다시 내주었지만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무슬림들은 고양이를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식당 어디나 길고양이들이 어슬렁거리지만 쫓아내지 않는다. 다만 손님이 싫어하면 종업원이 물분무기를 주고는 고양이를 향해 뿌리라고 말한다. 그 사장의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식당하면 고양이털이 연상되어서 나는 발길을 끊어야했다. 귀국하기 전까지 돼지고기를 제외한 인도카레나 스테이크 혹은 생선 스튜 등을 먹다가 집으로 향하는 아시아나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으로 비빔밥을 받았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포장된 고추장을 한 개 더 달라고 했을 정도였으니까. 사이드로 따라오는 반찬도 싹쓸이 했다. 정신없이 먹고 옆 테이블을 보니, 그 손님은 절반이나 남긴 것이 아닌가. 그 남은 음식까지 해치우고 싶은 충동이 어찌나 강한지, 참느라 힘들었다.

나는 적응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자칭하면서도 음식 앞에서는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뉴욕에서 만난 재미교포3세 또한 언어보다는 음식이 핏줄과 더 연결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말은 전혀 하지 못한 그는 조부모가 살아계실 때 저녁마다 한국음식을 먹어서 그런지 가족과 떨어져 서부에 있는 모 대학에 진학했을 때에도 한국 식당으로 식사를 하러 가야했다고 말했다. 그때마다 가족과 강하게 연결된 자신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맨해튼 한인상가거리. 차노휘
맨해튼 한인상가거리. 차노휘

다민족 도시인 뉴욕은 다양한 식당이 즐비하다. 카페콘레체와 토스트로 아침을 가볍게 먹었다면 점심식사로는 에티오피아 식당에 갈 수도 있고 저녁에는 그리스나 태국요리를 주문할 수도 있다. 물론 한국식당도 한국슈퍼마켓도 있다. 막걸리나 소주도 살 수 있다. 이렇듯 이민을 간다는 것은 몸만 가지 않는다. 그 문화까지도 함께 건너간다. 특히 먹거리는 그 생명력이 강하다. 그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정체성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공간을 공유한다.

맨해튼 한인상가거리. 차노휘
맨해튼 한인상가거리. 차노휘

뉴욕 속의 작은 한국

약 50년의 한인 이민 역사를 가지고 있는 뉴욕과 뉴저지일대의 한인들은 적어도 3개의 한인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제일 먼저 생긴 한인타운은 퀸즈 보로(Queens Borough)의 플러싱(Flushing) 지역의 한인타운이며, 뉴저지의 버겐 카운티(Bergen County)에도 포트리(Fort Lee)와 팰리세이드 파크(Palisades Park)에 2개의 한인타운을 형성했다. 또한 맨해튼 브로드웨이(Broadway) 지역은 한인 집단 거주지가 아닌 한인 상업 지역만을 형성했다. 뉴욕에서 이 네 군데를 방문하면 한인들을 제일 많이 볼 수 있으며 한국 손님을 주로 겨냥한 많은 한인 가게들을 볼 수 있다. 부동산업체, 의사사무실, 회계와 변호사 사무실 그리고 식당 순이다.

맨해튼 한인상가거리. 차노휘
맨해튼 한인상가거리. 차노휘

이중 플러싱 지역의 한인타운은 미국 동부 지역에서 가장 오래되고 크다. 1970년대 말부터 플러싱 한인타운과 상업 지역이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1980년 후반부터 플러싱 동쪽에 있는 베이사이드 지역으로 한국 이민자의 거주지와 상업 지역이 연결되어서 '플러싱-베이사이드 한인타운'이라고 부른다. 한국어 간판을 가진 수백 개의 한국 가게가 있고 노인들을 도와주는 복지 기관도 많이 있어서 영어를 못하는 한국 노인들이 별 불편 없이 살아 갈 수 있다. 또한 다른 민족 집중 거주 지역처럼 한인 상업 지역을 형성해 미국인들의 시선을 끈다. 이곳 한인 상업 지역에 있는 천여 개의 한인 가게가 한국어 간판을 달고 한국 음식이나 다른 한국 문화 상품을 주로 판매하기 때문에 한국 이민자들에게는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할 수 있고 비한국계 손님에게는 한국 문화 상품을 소개할 수 있기에 한국 문화를 위해서 중요하다. 특히 이곳에 집중해 있는 한국 식당과 한국 슈퍼마켓은 미국인에게 한국 음식과 한국 식품을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나 또한 재미교포 1.5세대 지인들을 만나기 위해서 그곳에 있는 식당에 갔다. 맨해튼에 있는 한국인 식당 '더큰집'에서 유기농 쌈밥(2인 기준, $42.95)을 며칠 전에도 먹었다. 플러싱-베이사이드 한인타운에 있는 '통3겹구이'는 한국인 사장 그리고 베트남과 조선족 종업원들이 서빙을 하고 있었다. 더큰집과 달리 손님 또한 한국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통삼겹($25.99)이나 우삼겹($26.99)의 가격은 별 차이가 없었다. 흑돼지 삼겹살($27.99)이 좀 더 비쌀 뿐이다. 소주 한 병 가격이 13.95달러였다.

한국에서 먹던 대로 나는 삼겹살에 소주와 맥주를 주문했다. 중학교 때 이민을 와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있는 미군부대에서 근무를 했다는 뉴욕경찰출신 1.5세대 A는 소주를 좋아했다. 같은 뉴욕 경찰 출신 1.5세대 B는 뒤늦게 한국말을 배웠다고 했는데 수준급이었다. 그렇게 셋이서 한국에 있는 집 근처 허름한 삼겹살 식당에서 여느 직장인들과 다름없이 퇴근하고 조촐하게 삼겹살에 소맥을 마시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고기를 다 구운 뒤에는 솥뚜껑 고기판에 밥과 콩나물 그리고 고추장을 넣고 비볐다. 미국 시민권자인 그들은 "Korean"-American이었다. 그들의 정체성을 밝힐 때 'Korean'이 접두사처럼 늘 앞에 붙어야했다. 그들은 한국인이었다. 차노휘〈소설가, 도보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