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자위권 천명 전 발포… 계엄군 성폭행으로 출산도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 사회

자위권 천명 전 발포… 계엄군 성폭행으로 출산도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대국민 보고회
5월21~24일 개인당 실탄 560발
광수 지목 ‘김군’ 실제 인물 확인
북한군 침투설은 허위로 결론

게재 2022-05-12 17:56:18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12일 대국민 보고회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광수1호로 지목된 김군의 실제 인물 차복환 씨가 발언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12일 대국민 보고회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광수1호로 지목된 김군의 실제 인물 차복환 씨가 발언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1980년 5월 광주에서 저지른 계엄당국의 만행과 인권유린 실상을 확인하고 북한군 침투설에 대해 허위라고 결론 내렸다.

12일 조사위는 대국민 보고회를 열어 △발포명령 체계 △민간인집단학살 △계엄군에 의한 성폭행 △5·18 관련자 강제징집 △진압작전 투입된 계엄군과 경찰 피해 현황 등을 발표했다. 특히 평범한 가장으로 살아가고 있는 차복환 씨가 광수1호로 지목된 김군의 실제 인물임을 확인하고 공개했다.

●5·18 광주역 발포… 여단장 현장지휘

조사위는 먼저 5월20일 광주역 일대에서 집단 발포가 이뤄졌는데, 이는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5월21일 오후 7시30분에 지시한 자위권 보유천명 이전에 발생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조사위는 당시 제3공수여단장 최모씨가 권총 3발을 공중에 발사하는 등 현장지휘가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그간 광주역 발포는 박모 대대장 등이 시위대 차량을 저지하기 위해 차량 바퀴에 권총을 발사했다는 것과 사망자 4명, 부상자 6명이 발생했다는 등의 내용만 확인됐다. 그러나 조사위는 계엄군 58명의 진술을 통해 최모 제3공수여단장의 현장 지휘가 있었고, 주택가와 상가에도 발포가 이뤄졌으며, 알려진 사실보다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조사위는 "최모 여단장이 무전으로 발포 승인을 요청했다는 무전병의 진술을 바탕으로 현장지휘관의 독자적 판단에 의한 발포가 아니라 별도의 명령계통에 의해 광주역 집단발포가 있었는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5월21일부터 24일까지 계엄군 개인당 실탄 560발과 수류탄이 지급됐고 광주시민 대상으로 확인사살까지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며 "자위권 보유천명 이전에 이뤄진 발포였다는 점에서 별도의 명령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광수 1호 실제 인물… 평범한 가장

그동안 숨진 것으로 알려져 온 '김군'은 5·18 당시 광주 남구 송암동에서 계엄군에 희생된 1963년생 김종철씨로 42년 만에 신원이 밝혀졌다.

조사위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김군'의 실제 인물은 확인 결과 생존한 차복환씨"라고 밝혔다.

그동안 숨진 줄로만 알았던 김군은 보수논객 지만원씨가 북한군으로 지목한 이른바 '광수 1번'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광수 1번으로 알려진 사진 속 김군이 바로 나'라는 결정적 제보가 5·18기념재단에 접수되면서 광수 1번 논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조사위는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사진 속 인물이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차씨와 김군 사진을 비교분석하는 한편, 추가 증언도 확보했다.

조사위는 "당시 현장에서 사진을 촬영한 이창성 기자와 차씨와의 현장 동행조사를 통한 영상채증과 진술, 그리고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 제작진 등을 다각적으로 면담해 숨진 김군의 실제 신원을 최종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차씨는 조사위와 동행한 현장조사에서 "'광수 1호' 논란처럼 사실이 아닌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 마음에 걸렸다"며 "사실을 밝히기 위해 직접 금남로를 찾았었다"고 말했다.

●7공수여단 병력 성폭행 만행

조사위는 계엄군에 의한 부녀자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 주장과 계엄군의 증언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 사건의 피해자는 이미 사망했고, 사건 현장에 함께 있었던 증인은 피해자가 해당 사건으로 아이를 출산한 사실을 진술하기도 했다.

조사위는 "사건 현장에는 7공수여단 병력이 광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야간 숙영을 했고, 이 과정에서 인근 유흥가와 주택가 등을 수색한 사실은 복수의 현장 계엄군들의 진술을 통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조사위는 1980년 5월 이후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5·18민주화운동 참여자들을 강제징집 시키고 삼청교육대에 보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특히 대학생의 경우 특수학변자로 분류해 보안사령부가 별도 관리했다. 피해자들은 동향관찰, 의식순화 교육을 받는 등 녹화사업에 강제 편입됐다.

조사위는 "전두환과 노태우는 이미 사망했고, 정호용, 이희성 등 당시 내란집단의 핵심인사들은 진술을 거부하거나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다"며 "진술을 확보해야 할 44명의 핵심인사들이 조사를 거절하는 등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조사위는 12일 조사활동에 착수한지 2년을 맞았으며 21개 직권조사 과제를 선정 그 하위과제 325개에 대한 조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별개로 216건의 개별 진상규명 신청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핵심 인사 등의 사망과 증언 기피 등으로 조사 달성율은 전체적으로 50% 선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12일 대국민 보고회를 열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12일 대국민 보고회를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