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76> "시간은 모든 존재를 탄생시키고 소멸시킨다"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차노휘의 길위의 인생
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76> "시간은 모든 존재를 탄생시키고 소멸시킨다"
뉴욕, 뉴욕, 뉴욕 박물관의 도시 뉴욕시티, 자연사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 입력 : 2022. 05.12(목) 16:14
  • 편집에디터

1층 28.65m의 푸른 고래 . 차노휘

'꿈'이 만들어낸 박물관

이런 곳에서 하룻밤 머물러 보는 것은 어떨까. 아프리카 코끼리 부대가 달리고 코끼리의 조상인 워렌 마스토돈(Warren Mastodon)이 진흙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높이 15m인 바로사우로스(Barosaurus)가 발밑에 있는 어린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천적인 알로사우루스와 한 판 승부를 벌이는가 하면 <쥬라기공원>에서 보던 4.5m 높이에 15m 길이인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육식 공룡 티라노사우루스(Tyrannosaurus)가 먹잇감을 찾기 위해 눈을 희붐하며 활보하는 그런 곳? 이것이 좀 시시하다면 '인도의 별'이라 불리는 563캐럿의 사파이어나 31톤에 달하는 세계 최대 운석 아니하이트를 찾아나서는 모험이라면? 우주 대폭발(빅 뱅)이나 지진이 일어난다면?

정말 그런 곳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가 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당신이 어린이라면 가능하다는 말이다. 미국 뉴욕주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자연사박물관은 6~13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오후 5시 45분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 한 달에 한 번 각종 모험을 즐길 수 있는 투어를 운영한다. 그 이름은 'A Night the Museum Sleepover'. 관람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시간, 새로운 시간이 펼쳐지는 곳. 죽어있던 것들이 살아나는, 시공간을 초월한 존재와 현상을 만나고 접할 수 있는 곳. 영화 <박물관이 살아 있다>가 괜히 스크린으로 옮겨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 미국자연사박물관을 둘러본다면 단박에 알아챌 것이다.

자연사박물관입구. 차노휘

'자연사 박물관'이라는 이름은 영어의 'museum of natural history'를 번역한 말 그대로 '자연에 대한 박물관'이라는 뜻이다. 'history'는 역사라는 뜻뿐 아니라 지식, 기록, 이야기, 경험, 탐구 등을 함축적으로 뜻하기 때문에, 자연사 박물관은 '자연의 역사'를 넘어 자연에 대한 전반적인 자료를 다루는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연간 3백만 명이 찾는다는 미국자연사박물관은 자연 서식지와 동식물의 생태를 보여주는 입체 및 실물 모형 제작과 현지 탐사 장면의 전시 분야를 개척한 박물관으로도 꼽힌다.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부친인 테오도르 루스벨트 시니어(Theodore Roosevelt Sr., 1831~1878)와 금융가 J.P.모건 등 20인이 함께 자연과학의 연구·지식 보급과 진보에 기여할 것을 목적으로 1869년 4월 6일에 설립하였다. 실은 한 자연과학자의 '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앨버트 빅모어(Dr. Albert S. Bickmore)는 하버드 대학에 다닐 때부터 뉴욕에 자연사 박물관을 설립하자고 수년간 줄기차게 로비했고 마침내 루스벨트 등 유력 후원자들과 함께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었다.

1층에서 코로나 백신 주사를 맞는 사람들. 차노휘

시간의 거대함

미리 인터넷에서 기본 관람 외에 특별관과 쇼까지 모두 예매한 나는 하루 일정을 잡고 '캐슬(castle)'이라고 불리는 고딕양식 박물관으로 입장했다. 자연사 박물관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이곳은 실제로 하루를 다 투자해도 부족할 정도로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그래서 실내 지도는 필수다. 종이 지도 대신 스마트폰에 디지털 지도를 다운 받아 놓았지만 입장하자마자 이것저것 생각할 것도 없이 승강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갔다. 제일 인기가 높은 공룡 전시실부터 둘러보고 싶어서였다.

입구부터서 길이 12m, 높이 6m의 공룡이 입 벌리고 발 올리며 나를 맞아주었다. 실은 나는 공룡에 대한 호기심을 여전히 놓지 못하고 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한때 이 세상을 지배했던, 거대한 그들의 모습이 아니다. 그들이 사라지고 난 이후의 시간이다. 그 시간은 고고학자의 손을 거쳐 뼛조각들이 제 형체를 완성해가면서 빛나는 과거를 돌이켜보게 하지만 역시나 시간 앞에서는 모든 존재가 동등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시간은 모든 존재를 탄생시키고 소멸시킨다. 아니 소멸된 것을 다시 소생시킨다. 어떠한 존재이든 차별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부여하지만 그 시간은 일정하다. 다음 존재에게도 그 만큼의 시간을 주어야하기 때문이다. 한때 욕망으로 빛났던 인간들. 이들이 사라지고 나면 어떠한 존재들이 이들의 흔적을 복원해줄까.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 또한 인간적인 욕망일까.

나는 시간을 거슬러 1만 1000년 전에 살았던 맘모스 앞에 선다. 맘모스의 거대함 앞에서 시간의 거대함을 본다. 너무 거대해서 무한하며 무한하기에 되레 무의미할 정도이다. 무의미와 무관하다는 듯한 힘찬 내 발걸음은 3층 모아이 석상 옆에서 오랫동안 머문다. 2층 포유류관 아프리카 코끼리 부대 앞에서는 이들의 질주하고픈 심박동을 느끼며 1층 천장에 매달려 있는 28.65m에 달하는 푸른 고래 아래에서는 등지느러미로 물살을 가르고픈 고래의 꿈을 꾼다. 마침내 플라네타리움 상영관에 앉아서 를 볼 때에는 돔으로 된 천장 스크린에서 쏟아지는 별들이 나를 우주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한다. 드디어 내가 우주와 한 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애초부터 한 몸이었다고 지나가는 말투로 내 속의 내가 말을 건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