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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데려간 군경… 남은 건 가난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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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아버지 데려간 군경… 남은 건 가난뿐"

한국전쟁 전후 전남 민간인 희생 관련자 인터뷰 (4)
사망신고도 제대로 못한 김수호씨
“아버지 한 풀지 못해 눈 못감아”
진화위 2기 조사사건 장성 포함

게재 2021-12-08 16:47:31
한국전쟁 전후 군경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김수호 씨가 아버지 사진을 가리키며 회상하고 있다.
한국전쟁 전후 군경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김수호 씨가 아버지 사진을 가리키며 회상하고 있다.

광주 서구의 한 임대주택에서 사는 김수호(81) 씨의 식탁에는 약봉지들이 한 가득하다.

홀로 사는 김씨는 지난해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부터 거동이 무척 불편해졌다. 일을 할 수 없어 한 달에 60여만원 남짓 나오는 노령연금과 기초생활비로 생활하고 있다.

몸만 불편한 것이 아니다. 마음 속에도 늘 묵직한 돌이 들어차 있다. 팔십, 노인의 속 깊은 곳에 아버지의 한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10살 무렵, 아버지는 갑자기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사건은 경찰의 방문에서부터 시작된다. 장성 삼계면의 외딴 시골에 살았던 김씨 가족에게 어느 겨울 경찰 2명이 찾아왔다. 골짜기 외딴 집이라 인민군의 작전기지라고 오인을 샀던 것이다.

아버지가 끌려가고 며칠 뒤, 함께 조사를 받았던 주민 8명이 인근에서 총살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여린 고사리 손으로 아버지의 주검을 산에 묻었다. 배우지 못한 무지로 아버지의 사망신고도 제대로 못 했다.

"참 옛날이라 남의 집 머슴살이도 하고,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지. 장성에서 더 살 수가 없었어. 첩자 아들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무시 받고… 광주로 와서 살겠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러."

서러운 세월을 보내며 어느새 팔순이 된 김씨는 2년 전부터 진실화해위원회 2기가 출범한다는 소식에 진실 규명 신청을 준비해왔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증명할 수 있는 보증인을 찾고 오래된 세월 속 퍼즐의 조각들을 맞춰 사연을 적어 내려갔다.

긴 기다림 끝에 지난 8월 출범한 진실화해위원회 2기로부터 진실 규명 조사 개시 결정 통지문을 받았다.

김씨는 "구체적인 일정이 정해지지 않아 아직 조사와 관련해 연락을 받지 못했다"며 "기다림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조사 과정이 얼마나 길어질지 잘 모르겠다. 법원에 피해보상금 결정까지 받으려면 꽤 길어질 텐데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직이 "진실 규명이고 보상이고…. 다 떠나서 마지막 자식 된 도리는 하고 가고 싶어. 아버지 만나면, '고생했다' 한마디 해줄란가 모르지"라고 중얼거렸다.

김씨에게 한국은 항상 잔인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 잔인함은 여전히 끝이 나고 있지 않다. 그는 언제 나올지 모를 진실규명 결과 때문에 편히 눈감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런 김씨의 기다림이 언제 끝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장성군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은 1949년부터 1952년까지 장성 일대에서 인민군과 빨치산 토벌작전, 부역혐의자 색출 작전 과정 중 적법한 절차 없이 체포 구금 등을 통해 100여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이다.

이번 진실화해위원회 2기에서 6차 조사개시 사건으로 장성이 포함됐다. 진실화해위원회 2기에 접수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은 광주를 비롯해 전남 22개 시군이 모두 포함됐으며 60%가 전남 피해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장성군이 추산하고 있는 한국전쟁 전후 장성 민간인 희생자 수는 1만600여명에 이른다. 이중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은 1만여명, 공권력에 희생된 수는 600여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앞서 진실화해위원회 1기에서 진실규명 판정을 받은 피해자는 197명이다.

장성군 유족회는 2기 진실규명 판정에 따른 보상금을 모아 추모탑 건립을 군에 건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