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가지고 싶은 높은 문화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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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한없이 가지고 싶은 높은 문화의 힘"
노병하 사회부장
  • 입력 : 2021. 11.03(수) 16:01
  • 노병하 기자
노병하 사회부장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필자가 20대였던 시절. 우리를 휘두른 것은 서양의 거친 '롹'이거나 화려한 '댄스 팝'이었다. 마이클잭슨을 비롯 본조비부터 메탈리카까지 수많은 '팝'과 '롹'의 향현 속에서 영향을 받았고, 그들의 문화에 열광하며 술을 마셨다. '롹'의 역사를 줄줄 읊고 팝 스타의 사생활도 안주거리가 됐다.

그때 한국은 광란의 90년대보니 서태지와 아이들을 비롯한 수많은 힙합과 댄스음악들이 날마다 얼굴을 내밀었다. 늘 신나는 음악이 거리에 가득했고 모든 이들이 1900년대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이 음악은 순전히 국내용이었다.

새천년이 열리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이 작은 나라는 월드컵 4강에 올랐다. 세계인이 깜짝 놀란 일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우리가 선진국, 강대국이 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문화적 영향에 있어서 서양인의 눈에 우리는 동북아시아에서 일본, 중국에 이어 세 번째에 불과했다.

서양에서는 사무라이나 닌자나 쿵후 등이 동양의 이미지였고, 우리는 좋게 말하면 그저 중국과 일본의 가운데 낀, 낮춰 말하면 문화적, 역사적 속국 쯤 어디였다.

시간이 흘러 2021년이 됐다. 세상이 이상(?)해졌다.

전세계가 우리가 만든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시청하고 이를 대중의 주류문화로 흡수하며 언론에서 분석하고 있다. 달고나를 각 나라 예능에서 만들고 '무궁화 꽃이 피어습니다'를 외친다. 세계가 우리를 상대로 몰래 카메라라도 찍는 것 같다.

이 뿐인가. 그 이름도 찬란한 방탄 소년단!

불과 20년전까지만 해도 한국가수가 빌보드 차트 50위권 안에 든다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물며 1위라니 그저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고 치부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냥 1위도 아니다. 발매가 되자마자 바로 1위로 직행 한다. 이것은 서양의 팝스타들도 쉽게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일이다.

더욱이 이 멋진 청년들이 어떤 공연에서 아리랑 메들리를 불렀는데, 세상에나! 유튜브에서 서양의 청소년들이 아리랑에 맞춰 BTS의 춤을 커버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처음엔 필자도 "말도 안돼. 외교부에서 지원해준 거야?"라고 의심할 정도였다.

덧붙여 한국에 공연을 온 팝스타는 무조건 다시 온다고 한다. 왜냐고? 한국 관객들의 미친 떼창에 감동 받아서다. 마치 '너는 얼굴만 보여줘. 노래는 우리가 할게' 그 자체다.

이 미친 떼창은 영상으로 보고 있는 필자마저도 당혹스럽게 한다.(물론 필자도 공연에 가면 떼창을 한다. 민족 DNA다) 수많은 스타들도 한국의 떼창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필자는 에미넴이 머리위로 하트를 그리는 모습에 "신종 욕인가? 네 머리를 가르겠다는 뜻인가"라며 당황해 했고 (그를 아는 사람은 다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브릿팝의 정수인 그룹 '오아시스' 노엘 갤러거가 한국에 와서 "이 곡은 서울에서만 연주할 거야"라며 'Live Forever'를 불렀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부르기 힘들다는 이유로 본토에서도 부르지 않는 곡이다. 심지어 내 생전에 노엘 갤러거가 이 노래를 라이브로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점에 울컥했을 정도다.

그래, 세계가 이상해졌다. 소리 소문 없이 우리는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바뀌었고 지난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는 우리나라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했다. 그것도 만장일치였다.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의 지위 변경은 유엔무역개발회의가 설립된 1964년 이래 최초의 일이다.

이를 두고 감동을 받는 것에 혹자는 국뽕이다 뭐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은 반도에서 만들어진 문화가 전세계에 퍼지고 있다는 것. 윤여정 배우가 오스카 상을 받았고 한국영화가 아카데미 최고상을 수상하는 이런 순간. 당신은 꿈 꿔 본 적이 있는가. 꿈이어도 눈물 겹도록 감동스러운 순간들을 우리는 매일 경험하고 있다.

김구 선생님이 1947년에 썼던 백범일지 '나의 소원'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BTS가 발언해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중략)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우리는 군부독재와 맞서 싸웠고, 잘못된 정부와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직접 내렸다. 투표를 통해 정당하게 정권을 바꿨고 잘못된 것에는 홀연히 맞서 싸워 왔다. 전세계가 주목하는 방역 모범국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필자에게 대한민국은 항상 자부심을 주는 나라다. 이제 자부심의 위에 우리의 문화가 얹어졌다. 너무나 대단하고 눈물겨워서 뭐라 말할 수 없다.

그저 이 나라가 지금처럼 앞으로도 더욱 부흥하는 문화를 바탕으로, 국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세계 선진국의 하나로서 성장해주길 바라마지 않을 따름.

지난 몇 년간의 대한민국은 욕할 것도 많고 분노도 수시로 자아냈지만 그럼에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안겨 주기도 했다. 그렇기에 위드 코로나를 맞아 이 자리에서 모든 이들에게 그저 감사드린다.

노병하 기자 bhn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