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학살 끝내 사죄없이… '역사의 죄인' 노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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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학살 끝내 사죄없이… '역사의 죄인' 노태우
10월 26일 숙환으로 사망 ||회고록 “시민들 유언비어 현혹” ||오월단체 “사죄없는 용서 없어” ||아들 사과 불구 지역민들 냉랭
  • 입력 : 2021. 10.26(화) 17:09
  • 김혜인 기자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서거했다. 그는 지병으로 오랜 병상 생활을 해왔다. 최근 병세 악화로 서울대병원에 입원에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눈을 감았다. 사진은 1989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교황 요한바오로2세 방한 행사에 참석한 모습. 뉴시스

마지막 눈을 감을 때까지 끝내 오월영령에 대한 사죄는 없었다.

13대 대한민국 대통령이자 군사정권의 마지막 주자이며 광주학살 원흉 중 한 명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사망했다. 향년 89세.

노 전 대통령은 1979년 전두환과 함께 12·12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신군부 핵심 세력이었다. 이후 전두환 정권의 이인자로 자리매김한 뒤 당시 여당인 민정당 대표에 이어 13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노 전 대통령은 1980년 5월 학살 주범 중 한 명이다.

그는 신군부의 핵심으로 전두환과 함께 민주화운동에 나선 광주 시민에게 총구를 겨눴다. 1993년 퇴임 후 1995년 비자금 사건 연루, 5·18 강제 진압과 12·12 군사 반란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징역 17년형과 추징금 2600억여 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1997년 김영삼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전씨와 함께 석방됐다.

그는 광주시민에게 절대 사과하지 않았다.

되려 지난 2011년 발간한 '노태우 회고록'에서 5·18에 대해 "광주 시민들이 유언비어에 현혹된 것이 사태의 원인이었다"고 적었다. 또 5·18을 '광주사태'라고 표현하고 "서울과 달리 광주에서는 시민들이 군 무기고를 약탈하고 유혈 충돌이 빚어지는 등 사태가 급속히 악화됐다"며 5·18을 왜곡·폄훼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가 지난 4월21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국립 5·18민주묘지관리사무소 제공

그의 아들인 노재헌 씨가 지난 2019년부터 꾸준히 광주를 방문하고 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했음에도 지역민들의 감정이 쉽사리 풀리지 않는 이유다. 당시 두 전직 대통령과 핵심자들의 직계가족 중 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5·18 강제 진압에 사과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사망과 관련 광주·전남 지역민들과 오월 관계자들은 "사과라도 하고 가지 그랬냐"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광주 용봉동에 거주하는 곽모(29) 씨는 "이제 가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만 이럴 거면 광주시민에게 사과라도 하고 떠나지 그랬냐"며 "두 눈 뜨고 잘 사는 것보다 차라리 이게 속 시원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 전 대통령의 아들인 재헌 씨의 사과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사죄하려는 노력은 인정한다"면서도 "사과에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오월극 '애꾸눈 광대 시리즈'를 제작한 이지현 씨는 "노 전 대통령이 5·18과 관련해 반성의 기미가 있다면, 아들을 통해서라도 공식 사과를 하게끔 논의할 수 있었다. 결국 사과와 용서 없이 가서 씁쓸하고 안타깝다"면서도 "아직 기회는 있다. 노태우 회고록의 잘못된 부분을 정정하는 일부터 시작해 이제 가족, 자녀 세대가 나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오월 관계자들은 분노의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명자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역사의 죄인들이 사죄 없이 그냥 가버렸다. 현재 전두환도 몸이 안 좋고 노 전 대통령은 사망했다"면서 "사과 한마디 듣고 싶었는데 너무 화가 난다"고 답했다.

이 관장은 재헌씨의 광주 방문에 대해 "광주를 방문한 것에 진정성을 느낄 수 없다"면서 "5·18 진상규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다면 그의 행보는 말 그대로 '쇼'에 불과하다"고 딱 잘라 말했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사죄 없는 용서는 없다. 5·18 피해자와 희생자는 학살 책임자인 노태우를 용서할 수 없다. 그가 진정한 사죄 없이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며 "그가 사망했다 하더라도 5·18 진상규명 과정은 끝나지 않는다. 노 전 대통령 개인이 5·18의 진상을 다 가지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실체를 밝혀내는 과정은 계속될 것이다"고 말했다.

조 상임이사는 이어 "노 전 대통령 본인이 짊어지고 있는 죗값 역시 그의 사망과 관계없이 역사적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용서받지 못하고 세상을 뜬 부분에 대해서는 안타깝지만, 역사의 심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혜인 기자 kh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