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1980년 5월, 광주 남구는 처절한 피신처였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 사회

"1980년 5월, 광주 남구는 처절한 피신처였다"

광주기독병원서 5·18 남구 포럼
옛 도청·금남로 아닌 남구 재조명
기억 복원 등 민주주의 의미 새겨
광주기독병원 간호부장 증언 등

게재 2021-05-11 17:53:58
11일 광주기독병원 제중홀에서 '5·18민주화운동의 양림동'을 주제로 한 공개 토론회가 개최됐다. 최영태 전남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전용호 작가, 홍인화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연구실장 등이 참석했다.
11일 광주기독병원 제중홀에서 '5·18민주화운동의 양림동'을 주제로 한 공개 토론회가 개최됐다. 최영태 전남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전용호 작가, 홍인화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연구실장 등이 참석했다.

"1980년 5월 '양림동'이라는 공간은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과 저항의 공간, 기억저장소입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남구 양림동을 재조명하는 공개 토론회가 열렸다.

5·18 주요 항쟁지인 옛 전남도청과 금남로 일대가 아닌 남구 지역을 재조명해 항쟁 당시 다른 장소를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으로 평가됐다.

광주 남구 등은 11일 광주 남구 광주기독병원 1층 제중홀에서 '5·18민주화운동의 양림동'이라는 주제로 2021년 5·18 남구 포럼을 개최했다.

토론회는 최영태 전남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됐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공저자인 전용호 작가, 홍인화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연구실장이 발제하고, 항쟁 당시 광주기독병원 간호부장으로 근무했던 정순자 씨의 증언으로 이어졌다.

●'목숨'을 나눈 광주기독병원

1980년 5월21일, 석가탄신일 휴일로 대부분 병원은 문을 닫았지만 기독병원은 정상 근무 중이었다.

당시 200병상, 의료진·직원 200여명 규모의 작지 않은 병원이었음에도 계엄군의 발포로 총상을 입은 부상자들을 감당하기에 병실은 한없이 부족했다.

당시 기독병원 간호부장을 맡은 정순자 씨는 "휴게실, 복도, 대합실, 분만실 등 병원 모든 공간을 활용해 매트리스를 깔고 부상자를 치료했었다"며 "간호사들이 나서서 헌혈하고 잠을 청하지 못할 정도로 정말 바쁘게 일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기독병원의 의료진과 직원들은 모두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당시 병원 내 무료 진료를 하고 있었다.

당시 기독병원 진료기록실 담당자였던 고은호 씨의 증언에 따르면, 계엄군에 의해 희생당한 수백 명의 환자가 다녀갔지만 진료기록부에는 72명으로 기록돼있다.

전용호 작가는 "기독병원의 옛 명칭인 제중병원(대중을 구제하는 병원)의 의미처럼 가난한 환자를 위해 무료로 진료를 해오던 전통이 있다"며 "'수납'보다 '치료'가 먼저였을 것이다. 그래서 진료 기록 등이 남겨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림동, 그리고 외국인 선교사

양림동은 의병운동, 3·1운동, 학생독립운동 등 한국 근현대사 핵심 사건의 산증인이다. 그곳에는 기독병원, 호남신학대학교, 그리고 외국인 선교사들이 있었다.

발제자인 홍인화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연구실장은 1980년 5월 광주에 있었던 외국인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발표를 진행했다.

'광주 항쟁에 대한 기억'을 작성한 원진희(진 웰치 언더우드) 선교사, 광주5·18청문회에서 헬기 기총소사를 증언하고, '광주 증언록 내가 겪은 광주, 80년 5월'을 펴낸 배태선(아놀드 피터슨) 목사,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의 통역을 맡은 인요한(존 리턴) 선교사 등을 되돌아봤다.

홍 실장은 1980년 5월 낯선 이방인이었지만 누구보다 광주를 사랑했던 찰스 베츠 헌틀리(Charles Betts Huntley) 선교사에 가장 초점을 뒀다.

헌틀리 선교사는 1965년 한국 선교사로 파견됐다가 안식년을 맞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에 다시 들어온 그는 1969년 9월부터 광주기독병원 원목으로 선교 사역을 시작했다.

광주에 정착하며 지역 사람들과 하나 되기 위해 '허철선'이라는 한국 이름을 만들었다. 항쟁 당시 허 선교사는 광주의 참상을 세계 곳곳에 알린 위르겐 힌츠페터 독일 기자 등 외신 기자의 통역을 돕고, 자신의 집을 피신처로 제공하기도 했다.

최용수 광주기독병원장은 "광주기독병원은 5·18 당시 민주화운동의 현장이었다. 41년 전의 민주화운동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며 "이번 포럼이 5·18의 진실을 규명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데 일조할 수 있었으면 한다. 광주기독병원의 '생명 나눔 정신'이 5·18과 함께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