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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남도트로트 연대기, 김정호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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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남도트로트 연대기, 김정호로부터

게재 2021-03-25 11:09:35
'하얀나비' '이름모를 소녀' '작은새' 등 가장 한국적인 포크를 구사했다는 평가를 받은 가수 김정호(1952~1985)
'하얀나비' '이름모를 소녀' '작은새' 등 가장 한국적인 포크를 구사했다는 평가를 받은 가수 김정호(1952~1985)

"내가 가면 너도 갈래 저 멀리 푸른 하늘 아래로/ 내가 울면 너도 울고 따라 갈래 저 바람 속을/ 보이잖니 새파란 드넓은 하늘/ 떠오르는 둥근 해가 저 멀리서 반긴다./ 가야한다 너와 나는 푸른 하늘 아래로~" 세간에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곡, 김정호의 '푸른 하늘 아래로'이다. 사뭇 경쾌한 리듬, 통통 튀는 멜로디가 선율악기와 리듬악기들을 채근한다. 금방이라도 산노루 떼들이 나타날 듯한 분위기다. 마치 완숙한 봄날 더 이상 땅에 머무르지 못해 언 땅 박차고 오르는 새싹들 같다. 부지불식간에 창공으로 튀어 올라 계곡 가득해지는 안개와 같다. 봄비 한 번에 연록의 색으로 갈아입는 언덕과도 같다. 흑인음악의 계보로 따지면 셔플(Shuffle)에 가깝다. 이 리듬을 엿가락 빼듯 늘여놓으면 이른바 블루스(Blus) 리듬이 된다. 마냥 따뜻하고 경쾌할 줄만 알았더니 그것이 아닌 모양이다. 따지고 보니 셔플의 연대는 아프리카 흑인뿐 아니라 인류 문명의 고대로 거슬러 오른다. 차라리 삼소박(여늬박을 세 개로 분절한 음, 서양음악에서는 삼분박이라고 함) 민요 사례를 찾는 편이 나을 듯싶다. 남인도의 롱드럼 연주에서 중앙아시아의 토속 리듬까지, 동아시아 소수민족들의 민요에서 우리의 풍물가락까지 그 범주는 넓고도 깊다. 삼채가락을 두드리거나 자진모리를 연주하는 격이라고나 할까. 4박자 계열로 포장되거나 위장되어 있어 그 내밀한 율격을 알아차리기가 쉽지는 않다. 이날치 밴드가 '범내려온다'를 부르면 그것이 전통 판소리 '범내려온다'로 인식하는 것과 같다. 전통판소리 범내려온다는 엇모리 장단의 쩔룩거리는 리듬인데 비해 이날치 밴드의 노래는 4박 계열의 고르게 정돈된 노래다. 하지만 알앤비가 휭크, 디스코, 소울 뿐 아니라 가스펠, 흑인들의 영가까지 포괄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리듬의 규칙이나 창법의 갈래만을 들어 섣불리 장르를 규정하기는 어렵다. 서론이 길어졌다. 같은 리듬 같은 선율을 노래해도 김정호의 노래는 무엇인가 다르다. 그것이 무엇일까? 우수와 애수, 진한 감성, 구절구절 마치 울음이 베어 나오는 듯한 이 느낌들, 그 배경에는 사실 암울하던 시대, 땅에 발을 딛고 서있기도 힘들었던 어떤 이들의 단말마들이 있다.

하얀나비, 허밍과 흥그레의 행간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을/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갈 임인데/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말아요/ 음~ 음~" 이 곡은 세간에 잘 알려져 있다. 콧소리를 동원해 선율을 엮어가는 것을 이른바 허밍(humming)이라 한다. 콧노래 혹은 흥얼거리거나 벌이 윙윙거리는 데서 온 말이다. 남도의 전통민요에 이름을 매길 때 흥그레타령이라고 했던 이유도 비슷하다. 자신의 신세를 콧노래처럼 흥얼흥얼거리며 타령조에 얹은 노래라는 뜻이다. 주목할 것은 이 흥그레타령이 태백 이동의 아라리처럼 한강 이남의 토대 소리라는 점이다. 하고 많은 노래들이 있지만 이 노래가 갖는 무정형의 리듬과 선율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아마도 김정호의 노래가 이런 토대적 운율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창법 하나로 아니 음유시의 어법 하나로 어찌 1970년대 한국 가요계의 지각변동을 가져왔겠는가. 그에 대한 찬사는 이미 넘칠 만큼 쏟아졌다. 나도 2018년 오월 본 지면을 통해 할아버지 박동실과 김정호를 다룬 바 있다. 그의 핏줄이나 집안 내력은 그 칼럼으로 갈음한다. 분석도 다양하지만 그의 창법에 귀 기울였던 사람들이 많다. 미국식 대중음악이 보편화되고 정착되던 시기, 마치 고향에서 올라온 절친처럼 한국식 어법과 창법을 가지고 한국 가요계를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이때 트로트와 팝의 시장 점유율이 8:2 정도였다. 이른바 뽕짝이 대세였던 시대, 포크-팝의 시대가 열리면서 이 판도가 바뀌게 된다. 한 대수, 송창식, 양희은, 서유석, 이장희, 박인희 등 수많은 싱어송 라이터들이 이 전환의 물꼬를 텄다. 단연코 그 중심에는 김정호가 있었다. 나는 이 시기 김정호의 창법을 궁상스런 남도창법, 육자배기와 남도소리를 바탕 삼은 소리라고 얘기해왔다.

남도트로트 연대기를 기획하며

학자는 모름지기 일어난 문화현상을 해석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방기하면 직무유기다. 특히 나 같은 전통문화 기반의 연구자들은 이 문제들을 허투루 여기기 십상이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수준의 전통미화론 수렁에 빠져있으면서도 마치 그것이 문화의 뿌리를 캐는 일로 착각한다. 후대의 지속가능한 연대를 생각지 아니 하고 당대의 이익만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내세우는 관념이나 철학이나 혹은 유물이나 전거들이 당대의 이데올로기를 위한 소재로 소진된다.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전국을 강타한 트로트 열풍을 여실히 조망하고 혹은 분석해야 할 이유일 것이다. 지금도 이 열풍은 주자들을 바꿔가며 이어진다. 무대를 바꾸기도 하고 매개를 바꾸기도 하며 때로는 장르를 혼융하며 시대를 소환해 낸다. 나는 이 현상을 몇 가지로 분석하여 제시해오고 있다. 시대를 환기하는 감성은 묻지 마라 갑자생에서 지금의 세대까지 이른바 시대정신을 들어 해명했다. 혹은 거슬러 올라가 이름도 빛도 없이 살다 가셨던 이 땅의 민중들 특히 어머니들의 쓰여지지 않은 행간들을 주목해왔다. 거기에는 흥그레타령이 있고 육자배기가 있으며 판소리며 가곡이며 시조들이 빼곡이 들어있다. 내가 제기했던 남도트로트는 예컨대 조선팝이니 한국적인 소울이니 하는 문화 새롭게 읽기에 해당한다. 남도민요와 판소리 창법으로 부르는 트로트라고나 할까. 발라드 문법의 포크팝 계열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송가인에 대해서는 두 번에 걸쳐 분석을 시도해봤다. 이제는 일명 남도트로트 연대기, 김정호를 거쳐 이제 내 시선은 김태연을 향하고 있다.

남도인문학팁

김정호의 소울 창법

몇 가지 특징들이 있다. 소리를 꺾는다. 이른바 '쿠세(일본어, 안 좋은 습관이라는 뜻)'를 활용한다. 곧이 내지 않고 밀어내거나 흔들거나 꺾는 활용을 말한다. 민요나 판소리에서는 이를 타루친다고 표현한다. 이들 모두 음의 장식 즉 시김새의 범주에서 설명할 수 있다. 사실 판소리에서는 발바리성이니 노랑목이니 해서 금기하던 창법들이다. 하지만 트로트 여신으로 등극한 송가인, 열 살 천채 김태연에 이르기까지 이 창법을 절묘하게 활용한다. 어깨를 들어 올렸다가 탁 내리치면서 첫음에 강세를 준다. 뱉어냈다가 이내 소리를 삼킨다. 불필요한 시김새를 활용하지 않는다. 소리의 낭비가 없다. 상청에서는 마치 판소리가 그러하듯 통성으로 내 지른다. 김정호가 구사했던 창법들이다. 한국식 소울 창법이다. 적어도 김정호의 노래는 판소리나 민요 창법을 설명하거나 해석하는 방식으로 독해되어야 한다. 실제 그를 발라드 문법의 포크-팝 계열 뮤지션이 아니라 육자배기 민요 계열의 남도창 혹은 남도 트로트 계열의 뮤지션으로 묶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들은 소리를 온 몸에 실어낸다. 목청으로만 하는 노래가 아니다. 흉중의 심호흡을 토해내는 정도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온 몸으로 한다. 한 몸 불살라 노래한다. 김정호 노래는 구슬프다. 울음의 연대기라고나 할까. 이 울음은 어디서 왔을까. 그리고 어디로 흘러갈까. 내 시선은 이 울음이 온 곳과 또 가야할 길을 바라보고 있다.

포크의 전설 김정호(1952~1985) 메모리 콘서트 포스터. 뉴시스
포크의 전설 김정호(1952~1985) 메모리 콘서트 포스터.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