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에세이·최성주>'옹색한 생활' 북한 외교관들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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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에세이·최성주>'옹색한 생활' 북한 외교관들의 민낯
최성주 고려대학교 특임교수·전 주 폴란드 대사||26)北, 해외공관 지원 빈약
  • 입력 : 2021. 03.08(월) 13:17
  • 편집에디터
최성주 고려대학교 특임교수·전 주 폴란드 대사
평생을 외교관으로 지내는 동안 해외에서 북한 외교관들과 종종 마주친 적이 있다. 해외 근무 북한 외교관들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안보상황에 따라 한국 외교관들을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달라진다. 지난 2006년~2017년 6차례 핵실험으로 유엔 안보리 제재 등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이 계속 가중되던 시기에 북한 외교관들의 자세는 지극히 경직됐던 걸로 기억한다.

필자가 북한 외교관과 처음 조우는 90년대 초반 세네갈에서 근무할 때다. 당시 세네갈 주재 북한 대사는 비교적 조용한 사람이었는데 외국 대사관 리셉션에서 만난 필자에게 먼저 말을 건네기도 했다. 90년대 후반 오스트리아에서 근무할 당시 필자는 개도국 협력을 관장하는 국제기구 이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지원사업의 문제점을 기구사무국에 공식 제기한 바 있다. 이사회가 끝난 후 북한 외교관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친 필자에게 "비엔나에서 가족과 온전하게 지내려면 말조심하라"며 대놓고 협박했다. 필자도 즉각 맞대응 했음은 물론이다. 그 반면, 당시 오스트리아 주재 북한 대사는 김광섭이었는데,'김씨 왕조' 집안의 사위인 김 대사는 사실상 은둔하며 지낸 것으로 기억된다.

2000년대 중반 브라질 근무 시절에도 북한 외교관과 마주칠 기회가 있었다. 외국 대사관 리셉션에 참석한 북한 외교관들은 음식을 먹지 않고 대개 주류코너에서 위스키를 마신다. 평소 서양 위스키를 접하기가 어렵기 때문일 게다. 필자가 왜 음식은 안 먹느냐고 물으니 대뜸 "남조선에서는 남의 잔칫집에 가서 그저 밥만 먹습네까?"라고 퉁명하게 대꾸한다.

브라질 주재 북한 외교관들은 주말에는 통상 시내 호수에서 낚시한다. 시간을 보내면서 나름의 식자재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해외에서 북한 외교관들은 경비 절감과 상호감시 목적으로 숙소에서 단체로 숙식한다. 어느 주말, 필자가 식료품을 사기 위해 동네 슈퍼마켓에 들렀더니 북한 외교관 부부가 채소를 사고 있었다. 그런데 토마토 몇 개를 살까 말까 몇 차례 망설이다가 결국 포기하고 돌아서는 것이었다. 충격적인 장면은 이들이 식품을 몇 개 구입한 후 40도가 넘는 한낮 무더위 속에 슈퍼 카트를 밀면서 숙소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는 거다. 필자는 개인차량으로 이동하면서 이를 목격했다. 며칠 후 브라질 대통령의 외교보좌관을 만난 자리에서 이 얘기를 전해줬더니 그는 북한의 사정이 그렇게 어렵냐며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최근 폴란드 대사로 근무할 당시 현지 학술연구소 주최 동북아 지역안보 세미나에서 북한 대사와 함께 참석했다. 필자는 북한의 핵실험이 핵무기확산방지조약(NPT)에 대한 정면 도전이므로 북한을 계속 압박하고 제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미나가 끝난 후 북한 대사는 왜 그리 몰아세우냐면서 필자를 비난한다. 필자는 북한의 불법행위가 원인이니 '결자해지'하라고 되받는다. 북한 김정은의 숙부 김평일은 필자가 부임하기 전에 폴란드 주재 대사로 장기간 근무한 바 있다. 김평일은 2017년 초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맹독성 화학무기인 VX에 의해 암살된 후 두문불출하다 귀국했다.



70년대 중반까지 남북한 외교관계 수립국가는 서로 비슷했다. 한국의 고속성장과 88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계기로 남북한 간 체제경쟁은 사실상 끝났다. 2019년말 현재 한국의 국내총생산(GDP)과 무역총액은 북한보다 무려 54배 및 322배 차이가 난다. 북한은 안보리 제재와 악성 경제난으로 직원봉급 외 해외공관에 대한 예산지원을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코로나19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북한 외교관들은 외국의 외교관들과 교류할 처지가 못 된다. 폴란드에는 20개 아시아 국가 대사들이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오찬을 교대로 개최하면서 친목을 도모하고 정보도 교환한다. 필자도 한국 대사관저에서 수차례 오찬 모임을 주최한 바 있다. 북한대사는 이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다. 예산이 쪼들리니 추후 자신이 오찬을 주최해야 하는 부담 요인을 원천차단하는 거다. 기본적으로 본국의 경제력은 외교관에게 가장 든든한 뒷배다. 같은 민족인데도 북한 외교관들은 공산주의 체제와 지도자의 정책실패로 외국에서 옹색하게 지내고 있다. 북한 지도자가 핵미사일 개발을 포기하고 민생을 챙기겠다는 전략적 결단을 내리길 바란다. 핵무기와 미사일은 북한의 밝은 미래를 결코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