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기 좋은 곳?… 탈선 현장 된 동네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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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술 마시기 좋은 곳?… 탈선 현장 된 동네공원
비행청소년들 모여 흡연하는 장소로 변질||불빛 없어 어두컴컴… 사람 발길 끊긴 곳도||코로나 여파로 식당 닫자 공원서 음주 즐겨||“가로등 설치라도 해줬으면” 인근 주민 불안||市 “예산 교부 후 민원 많은 곳부터 정비 예정”
  • 입력 : 2021. 01.21(목) 17:28
  • 김해나 기자

20일 오후 9시께 시민이 광주 남구 봉선동의 한 근린공원 의자에 앉아 캔 맥주를 마시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보건·휴양·정서 생활 향상을 목적으로 광주지역 곳곳에 조성된 공원이 관리 미흡으로 청소년들의 탈선 현장으로 변질하고 있다.

상당수의 공원이 가로등이 없거나, 있어도 꺼져 있고 공원 내 운동 기구도 파손되면서 주민들의 이용이 줄어들자, 청소년들이 술, 담배를 즐기기 위해 찾는 것이다.

이른바 '건물에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전체 유리창이 다 깨진다'는 '깨진 유리창' 현상이 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20일 오후 9시30분께 광주 북구 두암동의 한 공원.

명칭이 '어린이 공원'인 이곳은 가로등이 켜지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바로 옆 아파트 가로등에서 희미하게 불빛이 스며 나왔지만, 공원을 비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공원에는 운동 기구 설치돼 있었지만, 앞에 있는 사물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어두운 탓에 이를 이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구를 살펴보니 발을 굴려 이용하는 기구의 발판은 부서져 있었다. 공원 옆 공중화장실의 각 칸 변기는 모두 용변으로 막혀 있었다.

박미소(28) 씨는 "퇴근 후 집에 갈 때면 공원을 지나가는 데 음침하기 짝이 없다"며 "미끄럼틀, 운동 기구 등이 있어 낮에는 이용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밤에는 폐허나 다름없는 곳이다. 가로등 불빛이라도 있으면 좋겠건만 공원은 언제나 암흑이다"고 말했다.

이어 "한 번은 너무 급해서 공중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놀라 자빠질 뻔했다. 변기는 모두 막혀 있고 화장실 불도 켜지지 않았다"며 "구에서 운영하는 공원인 만큼 체계적인 관리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오후 10시30분께가 되자 어두운색의 옷을 입은 학생 네 명이 모였다. 그들은 화장실 건물 옆에 붙어 몸을 숨기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이들은 익숙한 듯 흡연을 마치고 옷에 섬유 탈취제로 추정되는 스프레이를 마구 뿌리고 헤어졌다.

초등생 아들을 둔 정모(40)씨는 "아이가 늦은 시간에 다니는 건 아니지만, 절대 공원 앞을 지나다니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며 "어둡고 음산한 느낌까지 들어서 오후에 아들이 집에 올 때 데리러 나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날 같은 시간 광주 남구 봉선동의 한 공원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늦은 시간이 아님에도 공원을 이용하는 시민을 보기 어려웠다. 수많은 가로등 중 일부만 켜져 있어 이용하기에는 꺼림칙한 느낌을 줬다.

일부 시민들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지만, 공원을 이용하기보단 통행을 목적으로 하는 이들이었다. 다만 공원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술을 마시는 이들은 몇 있었다.

이들은 익숙하게 인근 상점에서 구매한 캔맥주와 과자를 먹으며 1시간가량 머물렀으며, 수다를 이어가는 도중 여러 차례 흡연도 했다. 근린공원으로 지정된 이 공원은 각 구청에서 관리·감독하는 금연구역이다. 당연히 이들의 공원 내 흡연은 불법이다.

공원을 가로질러 길을 지나던 시민 김모씨는 "저녁에는 공원을 이용하기 무섭다"며 "불량해 보이는 청소년들의 모임 장소로 이용되는 분위기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도 대동소이했다. 산책·운동을 목적으로 이용하는 시민들보단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고 있는 청소년들이 더 자주 보였다.

주민 김대평(63)씨는 "코로나로 인해 외부활동이 줄어들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산책 겸 공원을 이용하려 한다"며 "저녁 시간에 공원에서 술판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를 관리하는 사람은 없다. 혹시나 해코지를 당할까 봐 공원 이용이 점점 꺼려진다"고 말했다. 이어 "저녁에 단속이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낮마저 공원 내에서 흡연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럴 때면 '그냥 관리를 안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과 관련해 광주시는 각 구의 공원은 각 자치구에서 관리·담당하지만, 회의를 통해 관리 방향을 잡아보겠다는 입장이다.

광주시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어린이 공원은 구청에서 관리하고, 근린공원 역시 구청에 업무를 위임한 상태다"며 "현재 각 자치구에 예산을 나눠 주고 있어 예산이 지급되는 대로 각 자치구에서 민원이 많은 곳 등 급한 곳 먼저 관리를 시작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시 내에 공원이 많기 때문에 예산만으로 관리에 한계가 있기도 하다"며 "곧 각 자치구 공원 관련 부서와의 회의를 통해 관리·단속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20일 광주 북구 두암동의 한 공원에 설치된 운동 기구의 발판이 부서져 있다.

20일 광주 북구 두암동의 한 어린이 공원은 가로등이 켜져 있지 않아 어두컴컴한 모습을 하고 있다.

김해나 기자 min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