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선생님"… 어린이집 교사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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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우리도 선생님"… 어린이집 교사의 눈물
학부모 폭언에도 호소할 곳 없어||공짜 노동 등 노동법 위반 다수||"실태조사로 보호장치 마련해야"
  • 입력 : 2020. 10.29(목) 17:24
  • 양가람 기자
지난 7월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실에서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 주최로 진행된 '2020 상반기 보육교사 노동실태조사' 결과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괴롭힘 없는 어린이집 촉구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세종시의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였던 A씨는 자녀가 아동학대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학부모로부터 1년 6개월 넘게 폭언·폭행을 당했다. A씨는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까지 당했지만,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학부모가 시청에 해당 어린이집 민원을 계속 냈고, 원장의 부탁 끝에 A씨는 어린이집을 그만둔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비단 세종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광주에서도 어린이집 교사에 대한 학부모들의 갑질이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사례는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어린이집 교사들은 억울한 상황에 몰리더라도 보호받지 못하는 건 물론 기본적인 노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감정노동·학부모 등쌀·원장 눈치까지

지난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도봉갑)은 '어린이집 교사의 폭언·폭행 등 폭력 피해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어린이집 교사 10명 중 3명은 폭언과 폭행 등 폭력 피해를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했다. 폭력 가해자는 '원아의 부모'(42.9%), '원장'(34.7%) 순이었다. 가해자가 주장하는 폭력 원인은 '아이가 다쳤기 때문'(17.8%), '아동학대가 의심된다'(13.2%) 순이었다.

더욱 문제인 것은 폭력 피해를 겪어도 대다수 교사들(66.6%)이 '달리 조치할 방법이 없어 참고 넘겼다'고 답한 부분이다. '휴직, 퇴직 또는 이직한 경우'도 13.1%였다.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등 정부기관에 민원'을 신청한 경우는 1.2%, '경찰에 신고한 경우'는 0.5%에 불과했다.

교사들의 소극적인 대책은 이들을 지켜줄 관련법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유치원은 '교육', 어린이집은 '보육'으로 분류돼 교사의 처우와 복지가 다르다. 교사의 권리 역시 유아교육법에만 명시돼 있고, 영유아보육법에는 따로 없다. 올해 들어서야 영유아보육법에 '보호자가 폭행 시 퇴소를 시킬 수 있다'란 조항이 추가됐지만, 학부모의 부적절한 행동에 따른 절차를 명시한 것 뿐이다.

●노동환경 허술하고 하소연 창구 부재

현실적으로도 어린이집 교사가 억울함을 토로할 방법이나 창구는 없다.

김가희 전국보육교사노조 광주지회장은 "보건복지부에 상담·신고전화가 있지만,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전화해도 뭘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반면 민원이 접수되면 시에서 조사가 시작되면서 어린이집 운영에 타격을 입게 된다. 원장 입장에선 사태가 터지면 시시비비를 가리기 보다는 덮기 급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여태 보육의 많은 문제들이 표면화 됐지만, 구조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다. 대부분 교사 개인의 인성 문제로 치부된 탓"이라고 덧붙였다.

광주시청은 공정하게 행정처분을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시청 출산보육과 관계자는 "(학부모로부터) 민원이 접수되면 사실 진위 파악을 위해 나가서 조사를 한다. 하지만 아동학대 민원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이나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민원인 한 명의 말만 듣고 행정처분을 내리는 경우는 없고, 양 측 입장을 다 취합해서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어린이집 관계자의 말은 좀 다르다.

광산구 모 어린이집 관계자는 "시청에서 조사가 나오면 엄마들 사이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다. 그러면 곧바로 아이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억울함이 밝혀진다해도 한번 입은 피해는 복구되기 힘들다"고 말했다.

●"노동법 손보고 보호장치 마련해야"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할까?

이 문제에 대해 어린이집 교사들은 '보육 교사의 기본권 보장'을 최우선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가희 전국보육교사노조 광주지회장은 "사실 보육 교사들은 노동시간, 급여 등 기본적인 것들도 보장받지 못한 탓에 부모 갑질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보육 현장에선 휴게시간 내 공짜노동부터 월급을 돌려주는 페이백 관행 등 노동법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사 한 명이 돌봐야 하는 아이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도 나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보육교사 한 명당 돌봐야 하는 아이 수는 0세가 3명, 1세가 5명, 2세가 7명, 3세 아동은 15명에 달한다. 업무의 강도가 지나치게 높은 반면 처우는 상당히 박하다는 것이다.

공공연대노동조합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보육교사의 처우개선을 촉구했다.

최순미 공공연대노동조합 보육교직원노조 위원장은 "보육현장에는 정말 많은 아동학대 의심 사례들이 있다. 그때마다 보육교사들은 죄인 취급을 받으며 사과하고 무릎 꿇고, 온갖 욕설과 수모를 당한다"면서 "보육교사들이 더 이상 죽지 않도록 보건복지부는 보육교사 인권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어린이집 교사에 대한 보다 세부적인 피해실태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산하 7개 공공기관 대상 국정감사에서 "어린이집 교사에 대한 폭언·폭행 문제는 보육현장의 고질적 문제"라며 "억울하게 상처를 입거나 무고를 당하는 교사가 없도록 복지부 보육실태조사 시 세부조사를 해야한다. 또 무고함이 확인된 교사에게는 치유를 위한 유급휴가를 제공하는 등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