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은 도시의 동네서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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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은 도시의 동네서점 이야기
  • 입력 : 2020. 10.29(목) 13:22
  • 박상지 기자

대만 학생들이 서점에 앉아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AP/뉴시스

환상의 동네서점

배지영 | 새움 | 1만3000원

대형 서점이 지역 서점을 제압한 시대다. 이런 세상에서 30년 넘게 꿋꿋이 살아남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특별한 서점이 있다. 전북 군산에 있는 '한길문고'다.

언젠가 여름, 주차해놓은 자동차가 둥둥 떠다닐 정도로 폭우가 쏟아졌다. 사람들은 10만 권의 책과 함께 완전히 물에 잠겨버린 한길문고로 달려갔다. 하루 100여 명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한 달 넘게 힘을 보탰다. 온갖 오폐물이 뒤엉킨 서점을 말끔히 치워준 시민들 덕분에 한길문고는 기적처럼 다시 문을 열었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서점을 지키려 애썼던 걸까.

1987년 한길문고가 '녹두서점'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등장했을 때, 중고등학생, 시위 나온 대학생, 직장인은 새로 생긴 서점을 약속 장소로 잡았다. 데모 나갈 때 책가방을 맡아준 서점, 한없이 책을 읽고 있어도 눈치를 주지 않던 서점, 용돈을 모아서 처음으로 사고 싶었던 책을 산 서점, 마술사가 되고 싶어서 마술책을 읽었던 서점,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며 임신과 출산 잡지를 샀던 서점, 아무 때든 좋다고 모임 공간을 내준 서점 등 한길문고에는 군산시민들의 추억이 새겨져 있었다. 군산시민들에게 한길문고는 다정한 이웃이자 속 깊은 친구였다.

신간 '환상의 동네서점'은 이 낭만적인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는 10대부터 70대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이면서 길을 만들어가는 것처럼 한길문고에는 책을 사고파는 곳을 넘어 사색과 소통의 공간이 됐다.

'동네서점 상주작가'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작가회의가 주관하는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 덕분에 생긴 직업이다. 서점에 상주하는 작가에게 4대 보험과 월급을 주고, 작가는 문학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자리를 만든다.

'환상의 동네서점'은 저자가 한길문고 상주작가로 일한 이야기다. 크리스마스에 열린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는 어린이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1시간동안 엉덩이를 떼지 않고 책을 읽은 어린이에게 최저시급이 인쇄돼 있는 한길문고 도서·문화상품권이 선물로 주어졌다.

"어른들이 참여하는 대회도 열어주세요. 먹고사는 일에 정신없어서 1시간 동안 책 읽는 게 진짜 힘들거든요." 어른들의 성화에 어른들을 위한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도 열렸다. 뿐만 아니다. 지역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었던 작가 강연회, 읽고 쓰는 사람들을 위한 고민 상담소, 심야 책방, 디제이가 있는 서점, 마술 공연, 200자 백일장 대회, 에세이 쓰기 모임 등 한길문고에는 방문자들의 추억이 겹겹이 쌓여가고 있다.

배지영 저자는 "에세이 쓰기 모임의 회원들은 글을 쓰면서 좀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며 "사소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못나 보일 때도 많은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게 됐다. 이 책은 '읽는 나'와 '쓰는 나'를 발견한 사람들이 성장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