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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강한 승부사 기질로 '초일류 기업 삼성' 일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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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이건희, 강한 승부사 기질로 '초일류 기업 삼성' 일궈내

▶이건희 회장은 누구
1987년부터 2대 회장 역임
리더십·집념으로 삼성 도약
시가총액 390조·40배 늘려
TV·스마트폰 세계 1위 달성

게재 2020-10-25 16:07:09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사진은 2010년 CES 2010 참관 당시 모습. 삼성전자 제공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사진은 2010년 CES 2010 참관 당시 모습. 삼성전자 제공

25일 향년 78세로 별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선친인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 창업주 별세 이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지난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고(故)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일곱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난 이 회장은 출생 후 어린 시절 부친의 고향인 의령에서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부친인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대구에서 '삼성상회' 운영에 전념하느라 자녀를 돌볼 여력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호암이 이건희 회장을 만나는 일은 일 년에 한두 차례에 불과했다고 한다.

부산사범부속초등학교 5학년이던 1953년에는 선진국을 보고 배워오라는 부친의 권유로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이 회장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로 진학했고, 1965년 3월 일본 와세다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했다.

1966년 9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과정을 수료한 후에는 서울대 응용미술과에 재학 중이던 홍라희 여사와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 경영 일선에 뛰어든 것도 이맘때, 1966년 9월이다. 이 회장은 그해 10월 동양방송에 입사한 뒤, 1968년 주식회사 중앙일보·동양방송 이사를 거쳤다. 1970년대에는 하이테크 산업 진출 모색을 위해 미국 실리콘밸리를 누볐고, 1978년 삼성물산주식회사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삼성그룹 후계자로서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애당초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을 예정이었던 형인 고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호암의 눈밖에 나면서 이 회장이 후계자로 낙점됐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사진은 1980년 정계최고 경영자 전지 세미나 당시 모습. 삼성전자 제공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사진은 1980년 정계최고 경영자 전지 세미나 당시 모습. 삼성전자 제공

1987년 12월 이병철 창업주 별세 이후 그룹회장에 취임한 고인은 1993년 신경영선언을 통해 초일류 삼성의 기틀을 닦기 시작했다.

이 회장의 성격 중 두드러진 부분은 조용하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강력한 리더십이다. 젊은 시절부터 현재까지 잃지 않는 침묵 속에서 배어나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승부사 기질로 거함 삼성을 흔들림 없이 항진하게 만든 원동력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평소 사장단 회의에서 말을 별로 하지 않았으나, 한 가지 사안에 대해 따지기 시작하면 상대의 밑천이 드러날 때까지 몰아세웠다. 아침에 시작한 회의가 밤까지 이어지거나, 한 사람을 상대로 마라톤 질문을 쏟아내기도 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남다른 리더십과 집념으로 삼성을 키웠다. 1987년 당시 1조원이던 시가총액을 2012년 390조원대로 40배나 성장시켰고, 총자산 500조원의 외형을 만들었다.

이건희 회장의 손을 거친 삼성은 2006년 글로벌 TV시장에서 일본 소니를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고, 애플을 따라잡고 스마트폰 시장 1위를 달성했다. 삼성전자가 카피캣의 오명을 씌운 애플을 추월하는 데도 고인의 집념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메모리 반도체를 포함해 20여 개의 삼성 제품을 글로벌 1위로 등극시킨 이 회장은 한국 재계의 거목으로 칭송받으며 집중받았지만, 각종 수사로 홍역도 치렀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특검 조사를 받아야 했으며, 특검팀에 의해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되자 2008년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등을 발표했다.

이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재계·체육계 건의로 단독 사면된 이 회장은 2010년 경영 일선에 복귀했고 조직 재정비와 삼성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헌신했다.

'가족 빼고 모두 바꾸자'는 신경영 선언으로 삼성그룹을 세계적인 그룹으로 도약시킨 이 회장은 2014년 5월 10일 오후 자택에서 갑자기 호흡 곤란 증세가 나타나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으로 옮겨졌고,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심장마비가 와 심폐소생술을 받았다.

이후 심장기능을 포함한 신체기능은 정상을 회복해 입원 6개월 무렵부터 안정적인 상태로 하루 15∼19시간 깨어 있으면서 휠체어 운동을 포함한 재활치료를 받아왔으며 최근까지 자가호흡을 하며 지낸 것으로 알려졌으나 6년 5개월간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25일 결국 유명을 달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