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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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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대

게재 2020-10-22 16:37:11
이기수 사진
이기수 사진

높은 산에 서리가 내리니 바야흐로 고구마 계절이 돌아왔다. 농촌 출신이라면 고구마와 관련된 추억 하나씩은 있을 게다. 어릴적에는 종자(씨앗)를 쓰지 않는 고구마 재배 과정이 색달라 기억에 생생하다. 겨우내 보온해서 보관한 튼실한 것을 골라 씨고구마로 삼아 이듬해 봄 묘상(苗床)에 묻어 심으면 싹이 나온다. 이 싹을 잘라 밭 이랑에 꽂으면 뿌리를 내린다. 이 뿌리 일부가 땅속에서 커져 덩이뿌리인 고구마가 되고 가을 서리가 내리면 수확한다.

20대 때까지는 삶아먹고 구워먹던 덩이 고구마가 전부인 것으로만 알았다. 짧아진 입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대학생 시절 고구마 대의 식재료로서의 진가를 터득했다. 고구마 대는 고구마 줄기로서 여름철 가장 왕성한 성장세를 보인다. 이때 고구마 대를 끊어 고구마김치와 볶음 등 여름철 밑반찬을 해먹는다. 배추와 무김치와는 사뭇 다른 맛과 부드럽게 아삭이는 식감이 최고다. 하지만 이 오묘한 맛을 즐기기 위해서는 고구마 줄기 껍질을 벗거야하는 인내가 필요하다. 효과적인 껍질 벗기는 방법은 심장모양을 한 잎사귀쪽 줄기 끝 부위를 꺾는 것부터 해야 한다. 운 좋으면 한번에 껍질이 벗겨진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드문만큼 줄기 중간 부위를 다시 한번 꺾어 벗기거나 줄기 하단부를 꺾어 반대쪽으로 벗겨내면 말끔하게 작업을 마칠 수 있다.

최근 우연히 TV를 통해 인기 요리가 백종원 씨가 재래시장에서 고구마 대 껍질을 벗기는 상인과 대화하는 장면을 보면서 고구마 대에 대한 추억이 되살아났다. 그 후 농협 하나로 마트에서 고구마 대를 직접 구입했다. 하지만 매장에 나와 있는 상품은 대부분 기대 이하였다. 겉모양부터가 시원찮아 보였다. 줄기는 붉은색을 띠고 제법 굵어야 하는데도 희멀건한데다 굵기도 가늘었다. 당연히 줄기 껍질 벗기기가 사나웠다. 하지만 한 시간 가량 공을 들여 요리한 고구마 대 볶음은 올 여름 잊을 수 없는 맛으로 기억됐다. 제철이 지났지만 실망하기는 이르다. 삶아서 말린 건조 고구마 대를 넣어 갈치, 병어 조림을 해먹으면 이 또한 별미이기 때문이다.

올 여름 집중호우와 잦은 태풍 발생으로 고구마 대 작황이 나쁜 것이 아쉬웠다. 이처럼 기후 위기는 개인의 식탐의 즐거움을 빼앗고 인류의 식량 자급에도 지대한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에 나서야 할 당면 과제다. 고구마는 농약을 치지 않고도 재배가 잘 되는 친환경 농작물이자 잎과 줄기, 뿌리 중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훌륭한 먹거리다. 이기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