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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의 노란 깃발, '페스트(pest)'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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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의 노란 깃발, '페스트(pest)' 발생

(69) 노란색과 시대

게재 2020-09-15 13:28:38

색채와 중세

16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은 잉카(Inca)에서 금을 찾아냈었고, 남미에서는 금이 너무 흔하여 금가루로 목욕을 한다는 족장이 있었으며, 그는 엘도라도(El Dorado)로 '금을 뒤집어쓴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중세의 보헤미아(Bohemia, 현재는 체코)는 유럽에서 금이 가장 많은 나라였고, 가장 금이 많았던 강은 라인강이다.

중세에는 사람의 기질을 4가지 색으로 구별하였다. "노랑은 화를 잘 내는 다혈질의 색이다."

중세에는 노랑이 멸시받는 자의 색이었다. 특히 유대인은 멸시의 대상이었으며, 12세기부터 노란 모자를 쓰고 다녀야 했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년~1546년)는 유태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노란 고리를 보고 거지와 유대인임을 안다."

1445년 함부르크(Hamburg) 복식 규정에 따르면, 창녀들은 머리에 노란 수건을 썼다. 1506년 라이프치히 법은 창녀들에게 노란 망토를 입을 것을 명했고, 또한 이탈리아 메란(Meran)의 창녀들은 노란 구두끈을 사용했다.

독일의 남부 프라이부르크(Freiburg)에서는 미혼모들에게 노란 모자를 쓰도록 강요했다. 이교도들에게도 처형장에서 노란 십자가를 목에 걸어 주었다. 빚을 진 채무자들은 노란 원을 옷에 달고 다녀야 했다.

그러나 중세기 회화에서 금은 천상의 빛을 상징한다. 1500년까지 성스러운 주제는 늘 금 바탕에 그림을 그렸다. 러시아 성화는 오늘날까지도 금 바탕에 그림을 그린다.

중세문학에서 노랑은 섹슈얼리티(sexuality), 시적으로 표현하자면 '사랑의 결실'이 상징되었다. 오래된 부활절 풍습에 의하면, 처녀가 구혼자에게 부활절 노란 계란을 선물하면 그것은 승낙의 표시였다.

배빗(Babbitt)은 그의 저서인 빛과 색의 원리(Principles of Light and Color, published by the author, East Orange, N. J., 1896.)에서 빅토리아 왕조시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빅토리아 왕조시대(1837년~1901년 영국의 전성기를 말함)에는 노란 창유리를 사용하였다. 빛은 바깥세상의 찬란함을 드러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찬란하다. 빛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므로 진리를 말하는 자이며, 폭로하는 자이다.

선박에서 노란 깃발이 휘날리면 전염병이 발생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에 배를 격리시킨다. 중세시대에는 도시에 노란 깃발을 달아 페스트(pest)가 발생했음을 알렸다.

바로크의 양식은 우연과 자유분방함이 강조되나 최소한의 질서와 논리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이 양식은 많은 곡선과 많은 장식성을 강조하며, 많은 금색이 사용되었다."

현재진행 중인 코로나 바이러스19 사태에 대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들이 노란색 점퍼를 입고 설명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노란색은 질병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꿈해몽에 있어서, 노랑이 나타나는 꿈은 어떤 사람에 대한 미움과 강한 자기주장을 암시한다. 노란빛의 과일이 나타나는 꿈은 단체기관이나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 끝나게 됨을 암시한다. 특히 지체 장애인의 몸에서 노란빛이 나타나는 꿈은 사업상 크게 소문날 일이거나 문상갈 일이 생기는 것을 암시한다. 노란색의 동물이 나타나는(본) 꿈은 임기 웅변을 잘하는 것을 암시한다.

문화예술 기획자/ 박현일(철학박사 미학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