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은 왜 거리로 나섰나… 의료파업 깊어지는 '갈등의 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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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건강
의사들은 왜 거리로 나섰나… 의료파업 깊어지는 '갈등의 골'
의료계 파업 이틀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의대증원·공공의대 설립 등 4대 의료정책 입장차 극명 ||의료계 “근시안적 발상” 정부 “코로나19 타개 불가피” ||시민들 “국민 목숨 담보한 파업 vs 의료 질 저하 걱정”
  • 입력 : 2020. 08.27(목) 17:39
  • 조진용 기자
27일 전남대병원 전공의(1학년)가 의료파업 원인이 기재된 안내판을 들고 있다.
의료계의 총파업이 길어지고 있다. 27일로 이틀째다. 코로나19 확산이 예사롭지 않은 상황에서 맞이한 의료계 파업에 대한 시선은 엇갈린다.

정부가 업무개시 명령을 내리고,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원칙적인 법 집행을 지시한 상태다. 하지만 집단 휴진에 나선 의료계의 의지도 강하다. 정부와 의료계의 타협의 쉽지 않아 보이는 현실이다.

●총파업 핵심 쟁점은

쟁점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4대 '의료정책'에 대한 이견이다.

△10년간 의과대학 정원 4000명 증원 △의료인력 확보를 위한 공공의대 설립 △한방 첩약의 급여화 △원격 비대면 진료 허용 등이다.

의대 증원 정책은 의사 수 부족과 지역 간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추진하는 정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가 근거다. 정부는 대한민국 2018년 기준 국내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는 2.4명(한의사 포함)으로, OECD 평균 3.5명에 한참 미치지 못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공공의대(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은 지역의료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으로 구상됐다.

첩약은 여러 가지 다른 한약 제제를 섞어 탕약으로 만든 것을 의미하는데, 첩약의 급여화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한약에 대해 일부 보험을 시범적으로 적용하는 사업이다. 한의학은 과학적으로 효능이 검증되지 않은 부분이 많으므로, 철저한 평가와 분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올해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전화 처방이 한시적으로 허용됨에 따라 정부는 원격 비대면 진료를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보고 육성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진료의 기본 원칙은 '대면'이며, 지금은 코로나19 라는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섣불리 결정하기보다는 추후 재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의료계 "일방 추진·근시안적 방안"

의료계 입장은 정부와 다르다. 이번 파업에서 조선대병원 전공의 대표를 맡은 이호종(진단검사의학과 4학년)씨의 반박이다.

그는 정부가 OECD 통계를 들어 현재 대한민국 의사 수가 부족하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의료 접근성 수치를 통해 반박했다.

이 전공의는 "해외의 경우 전문의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평균 2개월가량 걸리는 반면 우리나라는 전문의 3~4명에게 진료받는 것이 하루면 가능하다"면서 "OECD 통계를 봐도 우리나라는 국민 1인당 연간 외래진료 횟수가 16.9회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다. 문제는 의사 수 부족이 아닌 분배의 불균형"이라고 꼬집었다.

공공의대 신설에 대해서는 무분별한 선발 등 공정성이 현저히 훼손될 여지가 높다고 지적했다.

이 전공의는 "부산에서 시행 중인 '김복동 장학금' 제도의 경우 대부분 시민단체 자녀들이 혜택을 누리고 있는데, 이는 추천제의 해악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며 "공공의대도 마찬가지로 도지사나 시민단체 추천 입학제 등 다양한 입시전형이 생겨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우려가 크다"고 했다.

의료 질 저하와 세금 낭비도 이유로 들었다. 이 전공의는 "현재도 코로나 불황으로 개인 의원의 개·폐업이 반복되고 있는데, 의사 면허만 늘어날 때 악순환이 반복될 것은 자명하다"며 "이른바 사무장 병원도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이어 "공공의료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결국 세금이 필요한데, 앞서 제대로 운영하지도 못하고 문을 닫은 진주의료원 사례처럼 제대로 된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국민의 혈세만 태우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이 아니라 의료 현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돼야 한다고도 했다.

이 전공의는 "중요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왜 의료계의 의견을 먼저 수렴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라며 "의사 수 부족을 이유로 들며 인력을 늘리고 병원 시설을 확장하는 것보다 코로나19를 대비하기 위한 '감염전문병원'을 설립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전남도 "열악한 지역 의료 개선"

전남도는 의료계와 다소 상반된 입장이다. 열악한 의료환경 때문이다.

전남지역은 현재 의료 공백이 심각하다. 전남은 65세 이상 고령인구(21.9%) 비율이 전국 1위로 의료 수요가 많지만, 1만명당 의사 수는 25.3명으로 전국 평균(29.7명)보다 4명 이상 적다.

전남의 감염성질환·관절염·간질환·치주질환 유병률도 전국 1위, 당뇨병은 전국 3위다. 65세 인구 비율(21.9%)도 전국 평균(14.8%)보다 무려 7%포인트 높다.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전국 응급의료취약지 99개 시·군 가운데 19개 시·군(17%)이 전남에 몰려 있다.

전남 내 사람이 살고 있는 섬 276곳 중 의료기관이 없는 섬도 166곳(60%)에 달한다. 도내 유인도서는 276곳으로 17만3000명이 거주하고 있지만, 의료기관이 없는 곳은 166곳(60%)이다.

정부의 의사 정원 확대를 전남도가 바라는 이유다. 전남도는 그동안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의과대학이 없다는 점을 들어 의대 정원확대를 통한 의대 설립을 요구하고 있다.

강영구 전남도 보건복지국장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를 통한 전남 의대 설립은 지역 간 의료 격차를 해소하려는 취지"라면서 "어제부터 진행 중인 의료계 총파업을 중단하고 의료환경이 열악한 전남이 처한 처지를 헤아려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시민들, 불편함 속 찬반 논쟁

시민들도 엇갈린 시각이다.

김명섭(46·서구 풍암동)씨는 "올 한 해 코로나19 때문에 의료계가 심하게 고생하고 있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면서도 "하필 하루에 수십명씩 확진자가 터지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파업까지 대대적으로 일어나 많은 사람이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고 했다.

이모(36·여·동구 사직동)씨는 "사상 초유의 코로나19 대유행 사태를 볼 때, 정부의 공공의료 확대 정책이 마냥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면서 "국민의 생명을 먼저 생각해야 할 의료인들이 본연의 임무를 내팽개치고 거리로 나온 것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도박을 벌이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정모(28·서구 금호동)씨는 "오죽하면 의사들이 이 시기에 환자들을 내버려 두고 밖으로 나왔을까 싶다. 정부 정책을 봐도 단편적인 내용일 뿐 구체적인 실행안이라든지 차후 예상되는 효과나 부작용에 관한 고찰은 없다"고 지적했다.

또 "서로 충분한 합의를 통해 정확히 어떤 점이 부족한지 제대로 아는 것이 우선"이라며 "미래 세대인 우리 아이들이 낮은 의료 서비스에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 확충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조진용 기자 jinyong.ch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