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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당금애기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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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당금애기의 노래

게재 2020-08-12 13:23:21
당금애기 공연 포스터-2019 국립무형유산원
당금애기 공연 포스터-2019 국립무형유산원

심청가의 올라가는 중 흥보가의 내려가는 중

"중 올라간다. 중 하나 올라간다. 다른 중은 내려오는디 이 중은 올라간다. 저 중이 어디 중인고, 몽은사 화주승이라. 절의 중창 하랴하고, 시주집 내려왔다. (중략) 죽장을 들어 메고 이리 끼웃 저리 끼웃 끼웃거리고 올라갈제 한 곳을 살펴보니 어떤 사람이 개천 물에 풍덩 빠져 거의 죽게 되었구나." 익히 알려진 판소리 심청가의 '중 올라가는 대목'이다. 판본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강의 서사는 비슷하다. 가사 중의 개천물에 빠져 죽게 된 어떤 사람은 심청의 아버지 심학규다. 심청을 기다리던 중 더듬더듬 문밖으로 나갔다가 개천물에 빠져버린 상황이다. 심청전이라는 거대 서사는 곽씨부인의 죽음과 심청의 출생으로부터 시작하지만 봉사가 물에 빠지는 장면, 중이 올라와 구하는 장면 등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수상한 복선(伏線)은 반복된다. 판소리라는 노래로 변환된 이후에도 리듬이나 선율의 변별을 통해 암시는 확장된다. 신격이나 기이한 캐릭터의 등장에 사용한다는 엇모리장단이 그 중 하나다. 흥보가에도 중이 나와 집터를 잡아주는 광경이 묘사되는데 엇모리장단을 사용한다. 다른 점은 흥보가의 중은 내려오고 심청가의 중은 올라간다는 점뿐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흥보가의 흥보는 지상의 어떤 존재로, 심청가의 심청은 천상의 어떤 존재를 암시한다고나 할까. 판소리의 중요한 패트런(후원자)이었던 조선후기 양반들의 기호 때문이기도 하지만 난해한 한문 투의 사설, 중국 고사의 원용 등 우리 같은 서민들은 이해하기 힘든 용어들이 즐비하다. 그나마 장단과 선율에 얹어 이면을 그려주니 다행이랄까.

심청가 중타령에 나타난 암시와 복선(伏線)

몇 가지만 짚어본다. 몽은사(夢恩寺)라는 사찰 이름부터 심상찮다. 문자 그대로라면 꿈속의 은혜, 꿈속의 사찰이다. 통상 은혜를 입은 절이라고 풀이한다. 화주승(化主僧)이야 걸식을 토대 삼은 비구(比丘, 남자승려) 탁발승의 일원이니 특별한 해석이 필요치 않겠지만 사찰의 중창(重創)이라는 코드도 재건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암시다. 어떤 사건이나 건물을 헐기도 하고 고쳐서 새롭게 짓는 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마외역(馬嵬驛)은 중국 섬서성의 지명이다. 당나라 현종이 안녹산의 난을 맞아 피난을 가면서 어쩔 수 없이 양귀비 곧 양태진(楊太眞)을 죽인 곳이다. 고사를 인용한 심학규의 상황 설정, 이 또한 암시로 읽어야 한다. 주목할 것은 화주승의 행색이다. 벼슬한 중이 쓰는 굴갓을 썼다거나 도가 높은 스님이 짚고 다니는 육환장(六環杖)을 들었기 때문이다. 비범한 도사 혹은 천계의 인물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심청의 인당수 희생과 연꽃 환생에 이르기까지 암시와 복선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심청가에서 화주승으로 묘사된 이 캐릭터는 어디에서 비롯된 인물일까?

흥보가의 도승(道僧)에서 무속의례 제석(帝釋)까지

"중의 뒤를 따라 간다. 이 모롱 지내고 저 고개를 넘어서서 고봉정상 두루봉에 저 중이 가다가 접붓 서며 이 명당을 알으시오. 천하지제일강산 악양루 같은 명당이니 이 명당에다 님좌병향오문으로 대강 성주를 하였으면 명년 팔월 십오일에는 억십만금 장자가 되고 삼대 진사 오대 급제 병감사가 날 명당이니 그리 알고 명심하오." 박봉술 바디 흥보가 중 집터잡이 대목이다. 신재효가 정리한 사설로 재구성된 예들은 더 풍부하다. "감계룡 간좌곤향 탐낭득 거문파 반월형 일자안에 문필봉 창고산이 좌우에 높았으니~" 풍수적으로 재물과 벼슬을 잉태하는 명당터를 한자어 투성이로 장황하게 읊어나간다. 심청가의 화주승이 심봉사를 물에서 살려내고 종국에는 눈을 뜨는 대목의 복선으로 기능하는 캐릭터임에 반해 흥보가의 중은 도승으로 출현하여 명당을 점지해주는 캐릭터로 기능한다. 훨씬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이라고 할까. 하지만 무속의례에 나타나는 중은 명당터를 비롯하여 대궐 같은 집을 지어주고 벼슬도 하게 해주며 온갖 이승의 복락을 만들어주는 존재로 등장한다. 이 중이 제석천(帝釋天)이고 이 신격이 등장하는 거리가 제석굿이다. 이들을 종합해보면 제석신앙이 불교적인 신으로 출발하여 민속신앙으로 수용되고 가신신앙과 접맥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흥보가의 도승이나 심청가의 화주승을 제석에 비유하는 이유는 이런 확장된 제석의 서사 때문이다. 그렇다고 제석이 도도하고 고고한 위치에 좌정한 것만은 아니다. 저자거리에 나오게 되면 구겨지고 비틀어져 희화화된다. 불교가 배척되었던 시대 탓도 있겠지만 판소리와 무속의례, 가신신앙까지 두루 포획하고 있는 불교적 제석이 내동댕이쳐진다. 당금애기를 매개 삼는 민요 중타령을 통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민요 중타령과 당금애기

"동냥왔네 동냥왔네 산골의 중놈이 동냥왔네/ 동냥이사 안 내리마는 줄 이가 없어서 몬 주겄네/(중략) 왜 우리가 이러다가 애기를 배며는 어쩔것네/ 애기배면 여려운가 뒷동산천 올라가서/ 벅누눈을 긁어다가 정술에다가 타묵으며는/ 속절없이도 떨어지네." 임동권이 수집했던 남해지방 중타령의 한 대목이다. 비슷한 버전들이 또 있다. "동냥왔네 동냥왔네 산골 중이 동냥왔네/ 동냥은 있네만은 줄 이 없어 몬주겄네/ 울어매는 장에 가고 울아부지 들에 가고/ 우리올캐 친정 가고 우리오빠 처가가고(중략) 청우에라 섰던 중이 달라든다 달라든다/ 못방으로 달라듬서/ 우리 둘이 이러다가 아가 배면 우쩌겄네/ 딸이라도 놓거덜랑 물이라꼬 이름짓고/ 아들이라 놓거덜랑 산이라꼬 이름짓게/ 산에 가서저 부르니 물이 와서 대답하고/ 물이라꼬 저 부르니 산이 와서 대답하네." 이 무슨 상황인가? 스님이나 중이란 호명은 어디로 날아가고 중놈이라는 상스런 호칭이 난무한다. 시주를 나온 땡중이 혼자 집을 지키는 소녀를 농락하는 장면을 그리기 때문이다. 민요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퍼져있는 맏딸애기(당금애기를 부르는 호칭 중 하나) 노래 중 일부다. 류경자는 그의 글 「무가 <당금애기>와 민요 '중노래, 맏딸애기류'의 교섭양상과 변이」(한국민요학 제23집)에서 민요 중타령을 인용하며 이렇게 분석한다. "현실에 기반을 둔 민요는 신화와는 다른 세계이다. 신화적 기반이 없거나 약화된 상황과 마주쳤을 때, 민요는 신화의 서사구조를 그대로 수용할 수 없게 되며, 자신들이 당면한 현실에 이끌림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외양상 신화와는 서사구조가 전혀 다른 파격적인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파격 치고는 상당히 난해하다. 중의 농락 혹은 소녀와의 음탕한 정사를 노래한 것일까? 하지만 중타령이 제석의 계보를 잇는 신화에서 파생되었음을 주목하면 현상적인 노랫말만으로 이면을 톺아보기 어렵다. 불교의 쇠락과 중에 대한 비하가 기표라면 그 안에 숨은 보다 근원적인 기의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금애기가 동쪽으로 오신 까닭

아들 아홉에 딸이 없던 한 가정에서 딸 낳기를 기도하던 중 얻은 딸 이름을 '당금애기'라 짓는다. 당금애기가 자라 소녀가 되었을 때 마침 부모와 오라비 등이 출타하게 되어 집에 혼자 남게 된다. 그때 서역에서 불도를 닦은 스님이 당금애기를 찾아와 시주를 청하였는데, 이러저러한 에피소드를 거쳐 소녀가 잉태를 하게 된다. 서역에서 오신 스님이라니. 혹시 달마가 동쪽으로 오신 까닭과 관계된 것일까? 영화로도 만들어져 유명해진 조주스님의 문답 중 하나가 연상된다.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동쪽 당나라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뜰 앞의 잣나무'라고 대답한다. 선문선답이니 이해하기 힘들다. 어쨌든 집에 돌아온 가족들은 당금애기가 스님의 씨를 잉태한 사실을 알고 지함(地陷, 큰 구덩이) 속에 가두거나 쫓아낸다. 열 달 후 당금애기는 세 쌍둥이를 출산하게 된다. 이후 아비 없는 자식으로 놀림 받던 삼형제는 일곱 살이 되자 당금애기와 함께 서천국으로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서천국은 표면상으로는 인도라는 나라를 말하지만 서쪽하늘이라는 불교적 혹은 토착신앙적 세계관으로 풀이해야 한다. 어떤 절에 다다르니 한 스님이 친자 확인 시험을 한다. 종이옷 입고 청수에서 헤엄치기, 모래성 쌓고 넘나들기, 짚북과 짚닭 울리기 등이 그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고 스님과 세 아들의 피가 합쳐지는 것을 통해 친자임을 확인하게 된다. 이후 아들들에게 신(神)의 직분을 부여하여 제석신이 되었고 스님과 당금애기는 승천하였다. 오늘날 전국에 분포하는 무속의례 제석굿의 전거가 여기에 있다. 다시 주목할 것은 당금애기의 서사를 신화코드로 읽어내야 한다는 점이다. 맏딸애기가 중의 씨를 받아 잉태했다는 가십(gossip)거리가 아니라, 당금애기가 낳은 삼중제석이 성주오가리, 성주단지 등 조상신의 자격으로 좌정하게 된 행간까지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환인(桓因)으로 인식하기도 했던 제석천보다 그 컨텍스트를 장식하는 당금애기 서사에 귀를 기울일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욕망의 배후에는 드라마로 영화로 그리고 각종 SNS에 범람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당금애기 이야기 또한 수많은 의례와 문학과 예술을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있다. 이야기는 늘 당대의 욕망 혹은 소망을 숨겨둔다. 우리는 지금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은밀한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남도인문학팁

당금애기 설화의 이미저리

당금애기 이야기는 60여 편의 각편이 있다. 그만큼 다양하다. 지역에 따라 시주 스님이 하룻밤 자고가면서 딸아기가 구슬 세 개를 품에 받는 꿈을 꾸고 잉태하는 버전, 시주를 받아가지고 나가면서 딸아이에게 쌀 세 톨을 먹게 하거나 손목을 잡고 혹은 머리를 만져 잉태하는 버전 등으로 각양각색이다. 맏딸아기가 토굴에 감금되어 그 안에서 잉태하는 사례도 있다. 제주도의 경우는 삼형제가 과거를 봤다가 중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낙방하고 여차여차하여 무제(巫祭)를 받는 신이 되기도 한다. 처한 환경에 따라 종속된 신앙체계나 종교에 따라 스토리를 취사한다. 이들을 종합해보면 단군신화나 주몽신화와 아주 유사하다는 점을 눈치 챌 수 있다. 천상의 양(陽)과 지상 음(陰)의 교합, 지함 혹은 토굴 등 동굴이나 알을 통한 출산과 성장 스토리가 키워드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지극한 비유와 상징을 통한 잉태와 출산 혹은 탄생에 이르는 구도여행이다. 우리나라 무속의 양대 신화인 오구굿의 바리데기, 나아가 세경본풀이의 자청비까지 유사한 이야기 구성이다. 심청가에서 물에 빠진 심봉사를 구출하는 장면, 흥보가에서 명당터를 잡아주는 도승, 심지어 저자거리에서 맏딸애기를 유혹하여 잉태시키므로 민중들의 비난 대상이 되는 땡중의 이미지까지 그 안의 알고리즘은 사실 다르지 않다. 이 이야기는 초상 마당에서 벌어지는 다시래기굿과 판소리, 무속의례의 제석굿, 각종 문학과 예술행위들을 횡단하며 다시 태어남과 거듭남이라는 거대 이미지를 재구성해내고 있다.

삼불제석 무신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삼불제석 무신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송순단 선생의 제석굿(고깔이 제석을 상징하기 때문에 제석굿에서는 고깔을 써야한다)
송순단 선생의 제석굿(고깔이 제석을 상징하기 때문에 제석굿에서는 고깔을 써야한다)
진도씻김굿 중 송순단 선생의 제석굿
진도씻김굿 중 송순단 선생의 제석굿
해남 이수자 선생의 제석굿
해남 이수자 선생의 제석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