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침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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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부침개
  • 입력 : 2020. 08.02(일) 18:09
  • 박상지 기자
길어지는 장마 탓에 불쾌지수도 연일 '최고치'다. 불쾌지수는 대략 세 단계를 거치면 정상수준을 회복할 수 있다. 먼저 제습기와 에어컨을 같이 돌린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만남은 아예 취소하거나 미룬다. 빗소리를 음악삼아 부침개 재료를 준비한다.

'비오는 날 부침개가 땡기는 것'은 의학적으로나, 영양학적으로 분명한 이유가 있다. 후텁지근한 환경에서 짜증이 나면 인체의 혈당이 떨어지는데, 혈당치를 높여주는 식품으로 전분이 가득한 밀가루 요리가 제격이라는 것이 의학적 근거다.

영양학적 측면은 더욱 설득력 있다. 부침개의 원료가 되는 밀가루에는 아미노산과 비타민 B1·B2 성분이 풍부한데, 이 성분은 항우울제 역할을 하는 '세로토닌'을 구성하는 주요 물질이다. 그래서 밀가루를 먹으면 신진대사가 활발해 지면서 일시적으로 기분이 풀리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의학적, 영양학적 근거가 아니더라도, 비오는 날엔 무조건 부침개를 먹어야 한다. 빗소리와 구별할 수 없는 지글거리는 튀김소리가 재미있고, 기름에 반죽을 올리자마자 퍼지는 고소한 기름 냄새는 젓가락질을 유도한다. 가장 환상적인 부침개를 맛보려면 그 순간을 잘 참아내는 게 중요하다. 맛있는 부침개는 겉이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야 하는데, 센 불에서 반죽을 한번 튀겨낸 다음 중약불에서 서서히 익히면 이른바 '겉바속촉'부침개를 맛볼 수 있다.

장마로 국내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는 난리통에 한가롭게 부침개를 떠올리는 건 왠지 철없다. 물폭탄으로 변한 장마의 원인이 기후변화에 있기 때문이다. 장맛비에 의한 물난리는 재난 대응 문제를 넘어 기후위기에 전세계가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다행히 세계 각국은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탈석탄 로드맵'을 실천하는 분위기다. 프랑스는 2023년, 영국은 2025년, 캐나다는 2030년까지 석탄발전소를 폐지하기로 했는데, 한국 정부의 행보는 이상하다 못해 수상하다. '한국판 뉴딜'에 탄소중립 사회 실현을 위한 '그린뉴딜'을 포함시켰다는데 여전히 국내에선 석탄화력발전소를 건립 중에 있고, 해외에서는 인도네시아의 석탄발전에 투자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이젠 장마철의 부침개에서 '겉바속촉' 대신 '표리부동'이 떠오를 것 같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