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단의 이야기꾼'이 풀어낸 현대판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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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화단의 이야기꾼'이 풀어낸 현대판 낙원
부산출신 최석운 작가 해남서 개인전||8월25일까지 행촌미술관서 '이마도_ 낙원으로부터'||전남문화재단 레지던스 결과보고전
  • 입력 : 2020. 07.26(일) 16:41
  • 박상지 기자

최석운 작 '대파를 안고있는 여자'

붉은 황토에 박힌 파들이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다. 알록달록한 대파 꽃 사이에 자리잡은 까치 한쌍의 모습이 정겹다. 부산출신 최석운 작가는 행촌문화재단의 이마도 작업실을 둘러싼 파밭에서 늦도록 자란 파들이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을 처음 보았다고 한다. 꽃 핀 파는 이미 쓸모를 잃어 농부에게는 버려진 자식같다지만, 그림 속 파들은 자랑스럽고 위풍당당한 모습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화조도'다. 파꽃과 무꽃을 새들과 함께 그려 넣은 현대판 화조화에서는 작가의 기지가 엿보이며 그림 보는 재미를 더한다.

1980년대 후반 활동을 시작한 최석운 작가는 이 시대 소시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온 작가로 꼽힌다. 그간 선보여왔던 '파리 잡는 남자' '에어로빅' '고추 따는 노인' '지하도' '옥상' 등의 작품에서는 최 작가가 일상에서 본 사람과 주변 풍경이 고스란히 녹아져있다. 일그러진 얼굴로 노래방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는 양복 차림의 남자('노래 부르는 남자')처럼 친근하면서도 한편으론 민망하고, 우스꽝스럽고, 처연한 풍경으로 재현됐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우리 시대의 모습이다.

'현대판 풍속화'로 이름을 알려온 최석운 작가가 오는 8월25일까지 '이마도(二馬島)_낙원(樂園)으로부터'를 주제로 해남 행촌미술관에서 전시를 갖는다. 이번 전시는 '전남문화재단 창작레지던스 결과보고'전으로 최 작가가 해남 이마도에서 작업한 최근작 30여점을 감상할 수 있다.

최 작가는 지난 해 7월부터 해남군 문내면에 있는 작은 섬, 임하도에 있는 이마도작업실에 입주해 작업을 해왔다. 이마도작업실은 행촌문화재단 행촌미술관이 지난 2014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창작레지던시로 그 동안 서용선, 이종구, 김주호 등 60여 명의 작가들이 거쳐 가며 작품 활동을 펼쳤다. 지난 2018년부터는 전남문화재단 공간연계형창작사업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이번에 전시될 작품들은 최석운 작가가 임하도에 거주하는 동안에 작업한 최신작들이다.

그림 속에는 작가가 이곳에서 경험한 자연물과 인물 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달빛이 비추는 유채꽃 무더기 아래 얌전히 쉬고 있는 강아지들, 배롱나무와 동백꽃, 까치와 고라니가 노니는 풍경, 갓 수확한 듯 싱싱한 대파를 안고 미소 짓는 여자와 동백꽃이 프린트된 바지를 입고 물고기를 든 남자 등이다. 임하도 바다에서 건져 올린 보리숭어는 작가의 식탁에 올랐다가 그림이 됐다.

그 동안 이마도작업실에서 머물며 작업한 감상에 대해 최석운 작가는 "일상이나 주변에서 소재를 구하는 나로서는 옮겨진 작업실 주변의 새로운 환경에 흥분한다. 그리고 그 장소에 가지 않았더라면 못 그릴 그림을 그리게 된다"며 "이마도작업실은 낭만적인 고립을 느끼는 유배지 같다. 거칠지만 예술가의 긴장과 감성의 날을 세울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마치고 양평에 있는 작가의 본래 작업실로 돌아갈 계획이다.

한편 행촌문화재단 이마도작업실의 이마도라는 이름은 작업실이 위치한 임하도(해남군 문내면 예락리 소재)의 옛 지명이다. 바닷물이 빠지면 갯벌을 따라 건너 갈 수 있는 육지에 거의 인접한 섬이었으나 지금은 연륙되어 있다. 민가는 있지만 마을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운 작고 조용한 섬이다. 섬 중심부 언덕 위에 교실 두 칸과 부속실이 전부인 초등 분교와, 후에 해남종합병원 수련원으로 지은 부속건물을 작업공간으로 사용 중이다. 넓은 운동장과 언덕 아래 오솔길이 바다에 닿고 서북쪽을 면한 바다에는 작은 해변이 있어 해송사이로 낙조가 특히 아름다운 곳이다.

최석운 작 '화조도'

최석운 작 '화조도_무꽃'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