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29> 시대를 역행하는 21세기 술탄 에르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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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위의 인생
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29> 시대를 역행하는 21세기 술탄 에르도안
※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 입력 : 2020. 06.18(목) 13:05
  • 편집에디터

29-1. 갈라타 다리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1. 아타튀르크와 다른 정책들

현대 터키를 말할 때 아타튀르크 대척점에 있는 현재 대통령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gan)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에르도안을 그 나라에서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구속될 수도 있다. 이 글은 여행하면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종합해서 이방인이 내가 정리한 글이다).

에르도안은 21세기 술탄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54년 생. 이스탄불 빈민가 출신. 신학 전공. 이슬람교 이맘(Imam)이었다. 종교인에서 정치인이 되었다. 정치 초에는 인기가 좋았다. 초인플레이션 국가였던 터키를 화폐 개혁을 단행함으로써 암흑계의 돈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등 근대화에 기여를 했다. 이스탄불 시장을 시작으로 총리를 10년 동안 했다. 의원 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바꾸고는 16년째 터키 수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타튀르크는 서방 지향 정치를 했다. 북대서양 조약기구 나토에 가입하면서부터 군사 정보도 미국과 협력했다. 대표적으로 한국 전쟁 때 세계적인 규모의 군대를 파병했다. 한국 전쟁 참전 희생자 수도 세 손가락에 들 정도로 많다(여행하면서 현지인을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친척 중 누구누구가 한국전쟁에서 전사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마다 미안했다).

에르도안은 정반대 정책을 펼쳤다. 아랍과 러시아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점점 세속화에서 종교화로 변신하고 있다. 그 몇 가지 실례가 있다. 첫째, 히잡 착용 금지를 해제시켰다.

에르도안이 히잡 착용 금지를 해제한 그 다음날 탁심광장 근처에서 여성 경찰이 히잡 위에 경찰모를 쓰고 근무한 모습이 대서특필된다. 아타튀르크는 히잡 쓴 여성을 절대 언론에 노출시키지 않았다. 여성들을 종교와 인습에서 해방 시켜 전문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독려하는 차원이었다. 하지만 현재 영부인은 한번도 히잡을 벗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여하튼 터키에서는 에르도안 집권 시기에 맞춰 태어난 지금의 10대가 된 학생들이 주로 히잡을 많이 쓰고 다닌다. 거리에서 보더라도 3~40대 여성들은 착용하지 않았다.

둘째는 탁심광장에 2년 전부터 사원을 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탁심광장은 아타튀르크 동상이 있는 터키의 근대화를 상징하는 장소이다. 유명한 비즈니스호텔뿐만 아니라 주요 관광지, 레스토랑, 상점 등이 몰려 있다. 경제의 중심지이다. 만약 모스크가 완성되면 하루에 다섯 번 첨탑에서 기도하라는 아잔 소리가 울러 퍼질 것이다. 인근 상점은 모든 음악을 꺼야 한다. 술도 마시면 안 된다. 바와 클럽은 자연스럽게 영업을 접어야할 것이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국가를 종교화하는 것에 나쁘다고만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점점 사회가 보수화(종교화) 되면서 경제가 타격을 받는 것은 물론 사람들을 정치와 멀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즉, 우민화 정책을 편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2. 우리에게는 '알라'가 있다.

2018년 리라 환율이 폭락한 적이 있다. 하루 만에 반 토막 나더니 그 뒤로도 쭉쭉 추락했다. 50원까지 떨어지자 온 국민은 IMF가 올 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했다. 그때 에르도안이 이렇게 연설을 했다. "저들에게 '달러'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알라'가 있다."

내가 이스탄불에서 머물렀던 아파트 호스트는 에르도안 연설 중 위 대목에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도대체 21세기 대통령이 할 수 있는 말이니? 요즘 시대에 종교에 매달려서 나올 것이 뭐가 있냐고?

터키는 160조 규모의 카타르 경제지원을 받아 가까스로 환율이 200원까지 올라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미국과는 관세 전쟁을 한다.

터키에서 애플사의 스마트폰을 사려면 150~200만 원 정도는 주어야 한다. 외국에서 산 것을 허가 신청을 받는다고 해도 세금 폭탄을 맞아야 한다. 2020년부터 휴대폰에 구글 탑재를 금지했다. 네덜란드와도 사이가 좋지 않다. 한국에서 부킹닷컴으로 예약한 숙소를 현지에서 연장하려고 한 적이 있다. 호텔 매니저가 터키에서는 아예 부킹닷컴 사이트에 접속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고 했다. 관광 수입이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인데도 말이다.

에르도안은 아타튀르크가 구축해놓은 근대화에 반하여 다시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3. 터키에서의 군사 쿠데타란?

우리나라와는 달리 터키 국민들은 군인을 존경한다. 아타튀르크 후예이기 때문이다. 아타튀르크는 생전에 군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살아있으면 나를 사랑하니깐 내 정책에 잘 따라 현대적으로 발전하겠지만 내가 죽고 나면 분명히 누군가가 왕정복고를 하려고 할 것이다. 이슬람 사회로 다시 돌리려고 할 것이다. 군인들아, 만일 터키의 정치인들이 다시 나라를 종교화하려고 하면 너희들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그 사람을 가두고 너희들의 자리로 돌아가라."

실제 왕정복고와 종교화를 시도하는 몇몇의 수장을 감금한 적도 있다. 군인들은 국민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정치인들과만 싸웠다.

4년 전에도 군사 쿠데타가 있었다. 하지만 에르도안을 상대로 한 쿠데타는 실패로 돌아갔다. 실패 후 에르도안은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령 선포 이래 지금까지 자신을 반대했던 모든 사람을 가두었다. 만 명이 넘은 공무원이 직위 해제되고 정치 수용소는 정치범들로 차고 넘쳤다. 경제인들까지 모조리 잡아넣었다. 그야말로 에르도안의 천국으로 만들었다(에르도안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자신의 독재를 구축하기 위해서 일부러 쿠데타를 일으켜서 실패하게 만들었다는, 일종의 쇼였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현재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이라 공식적으로 조사를 해서 나온 결과가 아니다. 10년이나 20년, 그가 죽고 나면 밝혀질 거라고들 언론들까지 입을 모은다).

의심할 여지없는 독재 정치를 하고 있다. 양심 있는 많은 정치인들이 등을 돌렸다. 부정부패 또한 심각하다. 주요 요직에 친인척들이 앉아 있다. 어떤 이는 내려오고 싶어도 총살 당할까봐 내려오지 못한다고 말할 정도다. 당연히 지지율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2019년 치러야할 대선을 2018년으로 앞당겼다. 내가 한 번 더 대통령에 당선되면 계엄령을 풀어주겠다, 라고 말했다. 계엄령 아래 치른 대선에서 52%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2019년 지방선거에서는 터키 5대 대도시를 다 뺏겼다.

조금이라도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세계가 돌아가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에르도안을 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계엄령 때 알차게 자신이 독재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놓아 당분간은 집권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는 일반적인 평가가 있다.

아타튀르크 영광 위에 21세기 술탄이라고 불리는 에르도안이 집권하고 있는 터키의 관문인 이스탄불 공항에 나는 2020년 1월 27일 16시에 드디어 발을 딛는다.

※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29-2. 시장 사람.

29-3. 길거리 과일 가게.

29-4. 시장 사람 2.

29-5. 갈라타 다리에서 본 갈라타 타워.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