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숨을 못쉬겠다"…그들은 왜 분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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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나도 숨을 못쉬겠다"…그들은 왜 분노하는가
▶‘조지 플로이드’ 시위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사회 전반 만연한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폭발’||우리 사회 약자 향한 차별 등 구조적 모순 관심 필요
  • 입력 : 2020. 06.02(화) 19:01
  • 양가람 기자
 경찰관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숨지자 미국 전역에서 차별에 저항하는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수자 혐오'와 '차별'을 시위 확산의 원인으로 꼽으면서,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등 구조적 모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경고다.

 ● '조지 플로이드'는 예전에도 있었다

 지난달 25일, 미국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 시에서 비무장 흑인 용의자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숨졌다. 경찰은 체포 과정에서 9분간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눌렀고, 플로이드는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를 외치다 사망했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거세진 '인종차별'로 분노했던 흑인사회는 플로이드 사건을 계기로 폭발했고, '숨을 쉴 수 없다'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했다.

 '숨을 쉴 수 없다'는 구호는 6년 전에도 있었다. 지난 2014년 12월 뉴욕, 불법 담배 판매 혐의를 받던 흑인 남성 에릭 가너는 백인 경찰과의 대치 중 목에 졸려 숨졌다. 그는 숨지기 전에도 '숨을 쉴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시위대는 6년이 흐르는 동안 미국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며 분노했다.

 미니애폴리스시에서 시작된 시위는 미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그 과정에서 경찰이 최루탄으로 평화행진하던 시위대를 자극해 일부 시위대가 차량이나 가게를 파손·방화하는 등 폭력적인 양상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 '코로나19' 경제적 위기에 혐오 더해져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선진국' 미국의 참혹한 민낯이 드러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평상시 보이지 않던 허술한 보건 시스템과 사회적 안전망이 코로나19로 고스란히 노출됐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는 미국의 허술한 보건시스템을 여실히 보여줬다. 미국에서는 의료장비 부족은 물론 치료비가 없어 죽어나간 사람들이 속출했다. 현재까지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는 10만명이 넘었다.

 부실한 사회적 안전망 등으로 인한 대량실직 사태는 미국 시민들의 분노를 더욱 키웠다. 4000만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인종 차별과 혐오도 시민들의 분노를 부추겼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급격하게 인종차별과 소수자 집단에 대한 혐오가 늘었다. 특히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차별과 혐오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시위대 중 일부는 "경찰이 공원에 모인 백인들에게는 마스크를 나눠주면서, 유색인들에게는 공권력을 내세워 지침 준수를 강요했다"고 말했다.

 시위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에도 문제가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31일 트위터에 "안티파(극좌파)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할 것"이라고 쓰면서, 전국에서 일어난 시위를 이들 세력이 주도하고 있다고 규정했다. 이는 시위단의 분노를 격화시킨 계기가 됐다.

 ● '희생양'이 된 사회적 약자들

 미국 사태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강하다.

 전문가들은 재난 등 사회적 혼란이 심해질 때면 사람들은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는다고 지적했다. 이태원 클럽 발 코로나 19 감염사태가 대표적이다.

 정상양 광주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재앙이 닥치거나 경제적 침체에 접어들면 '스케이프 고트(scape goat·희생양)'를 찾으려는 심리가 가장 먼저 작용한다"며 "이태원 클럽을 방문한 성소수자들이 비난을 받은 것처럼, 재난 국면에서 복지의 1차적 대상자인 장애인,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된다"고 했다.

 한국의 구조적 문제도 미국과 유사하게 드러날 수 있다고도 했다. 코로나19라는 재난 특수성이 드러나지 않던 구조적 모순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는 이야기다.

 정상양 교수는 "사실 미국 내 인종차별 문제는 굉장히 오래 그리고 깊게 존재해왔다. 마틴 루터 킹 등장 이후부터 표면적으로 인종차별과 혐오, 배제가 누그러진 듯이 보였을 뿐"이라며 "이번 미국 시위는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트리거(trigger·방아쇠)'가 돼 그동안 쌓여온 인종차별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라는 재난의 특수성도 이번 사태의 배경 중 하나다. 정 교수는 "코로나19는 복지 선진국에 대한 시민들의 환상이 깨진 계기가 됐다"며 "미국 건강보험 혜택을 못받는 시민이 전체의 10% 가까이 되고, 그들은 병에 걸리면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는다"고 했다.

 정 교수는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코로나19는 콜센터나 배송업체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급격히 확산돼 왔다"며 "노동 뿐 아니라 복지 등 사회 곳곳에서 감춰져 있던 것들이 빠르게 분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결국은 혐오와 배제, 차별의 문제"라며 "차별금지법 제정 등 법 제도적인 정비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토대' 위에서 시민들의 인식과 사회적 분위기를 바꿔나가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 우리 사회의 '조지 플로이드'

 '조지 플로이드'는 미국에만 있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도 인종차별과 혐오로 고통받는 소수자들이 많다.

 지난 3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한국사회의 인종차별 실태와 인종차별철폐를 위한 법제화 연구' 보고서는 차별·혐오 문제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주민 당사자 338명과 공무원·교원 등 324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 결과다.

 이주민 응답자 68.4%, 공무원·교원 응답자 89.8%가 '한국에 매우 또는 조금 인종차별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국적 불문 응답자 대부분이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한국 사회에서 인종차별이 종교차별(49.7%)이나 성차별(74.1%)보다 만연해있다고 봤다.

 보고서는 '민주사회의 보편적 권리가 이주민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처럼 한국인과 이주민 간 위계적 구분이 당연하다고 인식하는 것은 인종차별적 의식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정일 광주외국인노동자센터 사무국장은 "외국인 범죄는 내국인 범죄에 비해 발생 빈도가 적다는 점이 경찰 측 자료에 의해서도 확인됐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작은 사건·사고도 외국인 노동자가 얽혀 있으면 언론의 타깃이 되고, 부정적 보도는 다시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준다"며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이 이 정도에 머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위는 한국사회의 인종차별적인 인식이 이번 코로나19 국면에서도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공적마스크 5부제'는 건강보험 미가입 유학생과 이주노동자 등 100만여 명의 생명·건강권을 보호하지 못했고, 그들의 상당수는 무급휴직이나 이직을 강요당했다.

 이정일 사무국장은 "사실 코로나로 인한 가장 큰 문제는 고용허가제의 굴레 속 미등록 이주노동자"이다며 "미등록자 양산을 막고 그들의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해 줄 수 있는 노동허가제가 절실한 상황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그들을 소외시키는 게 뭔가를 성찰하고, 제도적으로 고쳐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