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이계송>미국의 흑인시위와 인종주의, 그리고 다문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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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이계송>미국의 흑인시위와 인종주의, 그리고 다문화 사회
이계송-재미기고가||산업 이전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 큰 박탈감||흑인 상대로 한 분풀이 잦은 마찰 원인으로||한인동포 ‘피해’…한흑 우호증진 노력 필요|| 외국인 차별대우 국가 도덕성에 큰 상처로
  • 입력 : 2020. 06.02(화) 19:12
  • 편집에디터
왜 흑인시위사태가 잊을만 하면 다시 일어날까. 노예제도의 원죄와 인종주의에 뿌리가 있음은 자명한 일이지만, 좀 더 구체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면 사태의 전모가 뚜렷해진다.

우선 두가지 측면을 보자. 하나는 미국의 백인과 흑인은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와 흑수저의 차이가 있다. 이는 부자가 더 큰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더 가난해지는 자본주의 경쟁시스템에 획기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다. 가난을 대물림 받은 흑수저의 절망은 여기에서 생긴다. 도저히 어찌해보지 못하는 젊은 흑수저는 범죄와 마약에 빠지게 된다. 미국이 안고 있는 최대의 사회문제다.

또 하나는 경제의 세계화가 이뤄지면서, 하나의 예로 멕시코 노동자의 임금이 미국의 1/6이면서도 미국 노동자의 질과 별 차이가 없어졌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그동안 미국 백인노동자들이 누렸던 배타적 이점이 사라지면서 그들이 무용지물이 됐다. 미국의 산업벨트가 해외로 이전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미국 산업의 공동화로 가장 피를 본 사람들이 백인 노동자들이다. 상대적으로 금융 등 서비스산업이 발전되면서 화이트칼라 백인들의 임금은 비교적 가파르게 큰 폭으로 상승했다. 반면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두려움과 박탈감은 엄청났다. 이를 자극해서 집권한 사람이 바로 트럼프다.

미국의 소요사태는 국가 안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과 국경을 넘어 블록화 되고 세계시장으로 통합돼 가는 경제와의 모순과정 속에서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백인들은 2등 국민인 흑인을 자발적으로 돌볼 마음의 여유가 생겨나기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이들 백인 루저(loser)들은 오히려 자기들 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흑인들을 상대로 분풀이하는 일이 잦아졌고, 이들 간에 잦은 마찰은 이미 예정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종주의자 트럼프가 미국 역사상 최악의 리더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불행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폭동시위 때마다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인종이 있다. 바로 재미 한인동포들이다. 왜 그런가. 1980년대 이후 한인 이민자들이 급증하면서, 재미동포들이 이민생활을 위해 진출한 분야가 흑인뷰티사업이다. 원래 유태인의 가발가게를 인수하면서 시작했다. 흑인들은 머리칼이 다른 인종과 달라 헤어관련 뷰티제품은 생활필수품이며 고액 구입자들이다. 재미동포들은 지난 40여 년 동안 흑인들이 사는 곳이면 어디든 곳곳에 뷰티상점을 오픈하고 장사를 해왔다. 현재 재미동포들이 운영하는 상점은 6000여 개에 달한다. 이제 민족사업으로 키워가자고 할 정도로 대단히 성공했다. 3500만 흑인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뷰티 유통시장의 70% 이상을 한인동포들이 장악하고 있으니 말이다. 상점 규모 역시 100-400평, 대형상점들이 다수이며 흑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이다. 이런 흑인소요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흑인들에게 가장 만만한 상대로 마음 졸이는 사람들이 재미한인동포들이며 실제로 큰 피해를 당한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됐던 곳, 미네소타에서도 한인운영 뷰티상점 세 곳이 완전 털리고 방화까지 당했다.

"너희들도 한인 이민자들처럼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을텐데, 못 사는 것은 너희들 책임"이라는 말로 흑인들의 좌절과 분노에 걸핏하면 백인들이 기름을 끼얹는다. "그러면 한인 이민자들의 반만큼도 일하지 않으면서 (백인 너희들이) 잘 사는 이유는 뭐냐?"는 항변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모범 소수민족'이라는 백인의 입발린 소리에 넘어가 백인이 된 것으로 착각하고 흑인을 업신여기는 우리 동포들이 없지 않다. 유감이며 사실이다. 흑인들이 피흘려 싸워 성취한 덕택으로 비교적 쉽게 자리잡고 성장하고 있는 재미 한인동포들은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있다. 반성해야할 일이다.

물론 그간 한인들은 여러 폭동사태를 겪으면서 한-흑 우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소위 '커뮤니티 리턴', '커뮤니티 아웃리치' 같은 아이디어를 통해 흑인학생 장학금 지급, 가난한 흑인들을 위한 무료 미용 지원 같은 일들을 끊임없이 해오고 있다. 흑인 정치가들을 지원하는 일도 하나의 예다. 예전보다는 흑인 고객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 것만은 사실이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방화와 약탈, 심지어는 권총강도 사건으로 희생을 당하면서 오랜 세월 일군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어버리면서까지 한인 뷰티사업가들은 나름대로 흑인 슬럼가에 활기를 불어넣은 일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현재 30여개의 대도시 도심에서 시위와 폭동이 최고조로 달하고 있다. 평화시위로 의사를 표시하면 되지 왜 불을 지르고 약탈까지 하는가 비판한다. 물론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왜 폭력사태가 날때만 심각성을 깨닫는가? 그간 막강한 힘을 가진 주류백인사회 리더들이 진지한 관심과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찾는 적극적인 노력을 했는가 부터 반성해 봐야 하지 않을까. 당분간 흑인들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간 사상자와 공공 및 개인의 재산피해를 얼마나 줄일 것인가는 정치가와 시민운동가들의 노력에 달려 있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들을 폭도로 몰아가며 군대를 동원 총을 쏘겠다는 위협을 하고 있다. 그의 경솔한 발언이 분노에 더 불을 지르고 있다.



흑인들 대부분은 심성이 착하다. 그들은 서로 돕고 사는 인정 많은 사람들로 한인들과 비슷하다. 백인들에게 차별 당하면서 그간 정치적인 면에서는 대단히 성공을 거뒀다. 그들은 많은 단체들을 결성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지위를 높이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시위는 이들 단체들이 주도한다. 물론 과격파와 온건파가 있다. 폭동은 과격파가 시위를 당연한 행사처럼 주도하면서 군중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면서 일어난다. 온건파는 협상을 통해서 이를 수습해 간다. 지난 경험으로 보면 정해진 수순이다. 조만간 정치적 협상이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문제는 또 발생할 것이다.



당장은 다가오는 선거에서 트럼프와 같은 인종주의자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더불어 새로운 리더들이 등장, 장기적으로는 글로발리즘 정책을 다시 회복시켜 가면서 탈락한 사람들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결국 지구촌 모든 인종이 평화와 복지를 함께 누리도록 전 세계가 진보의 확대를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과 일본 등 몇몇 예외적인 국가들을 제외하면 단일민족국가는 별로 없다. 민족·인종·언어·종교 등의 차이로 갈등과 투쟁의 요인을 안고 있는 나라가 9할이 넘는다. 다민족국가에서 구성원의 질적 차이와 수적 우열은 인륜성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현대국가는 자유와 평등, 국민적 통합과 일체성을 최고의 이념으로 한다. 여기서 제일 큰 비극은 인종을 비롯한 여러 그룹이 갖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차이를 차별할 수 없다는 당위성을 저버릴 때 국가존립의 정통성의 위기가 온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대우도 국가의 도덕성에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수가 250만 명에 이른다고 들었다. 생산요인으로 인력은 추상적 개념처럼 들리지만, 피와 살, 인격을 갖춘 250만명에 대해 정부는 당연히 보편주의 원칙에 입각해 한국인과 똑같은 법적보호와 인격의 존중을 보장하지 않으면 안된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