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후원(後園)·임효경>여행을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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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칼럼
배움의 후원(後園)·임효경>여행을 떠나요
임효경 완도중 前 교장
  • 입력 : 2025. 07.15(화) 16:51
  • 여행을 다녀오니, 더 새롭다. 더 고맙다. 더 기대된다.
임효경 완도중 前교장.
푸른 언덕에 배낭을 메고/ 황금빛 태양 축제를 여는/ 광야를 향해서 계곡을 향해서/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가수 조용필이 부르는 이 노래는 내가 애창하는 곡 중의 하나다. 이 노래를 부르면 자연스럽게 몸과 다리가 리듬을 탄다. 가슴이 뛴다.

또한 한비야가 쓴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은 내 가슴을 뛰게 했던 책들 중 하나다. 그녀가 쓴 모든 책을 섭렵하면서 그녀의 생각에 공감하고 그녀의 행보를 응원했다. 닮고 싶다고. 나도 그렇게 한번 용기를 내고 싶다고. 혼자서, 걸어서, 전쟁터도 마다하지 않고, 가슴이 뛰는 곳으로 나아가는 그녀를 동경했다.

옛날 어르신들이라면 참 팔자 사납다 할 것이다. 얌전히 앉아 집안일 살피며 편하게 살아가는 것보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거친 아이들과 줄다리기하듯 늘 긴장하며 살아가는 것을 선택했으니 말이다. 늘 길 위로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 내 삶의 일부다.

퇴직 후,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로 더 바빠진 일상 속에서 빼놓지 않고 보는 TV 프로그램이 ‘세계 테마 기행’이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애쓰며 하루를 보낸 나에게 위로를 주고 또한 가슴이 아직 뛰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참으로 넓고 다양한 세계 나라들 중에서 유난히 눈에 들어오고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대자연이다. 인간들의 솜씨나 작품도 감동을 주지만, 인간들이 따라잡을 수 없는 작품들, 하나님 지으신 그 모습 그대로 대자연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탄식과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TV 그 한정된 공간에 갇힌 그곳 풍광에도 내 눈이 빠져들어 간다. 사막과 초원과 밤하늘의 은하수, 호수들과 거대한 산맥들 그리고 그 꼭대기의 만년설과 빙하들. 나는 어느새 갇히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세상을 가보고 싶어진다. 혹시 인간들의 호기심과 욕심으로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면서.

여행을 다녀왔다. 코카서스 3국,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의 대자연을 보고 왔다. 9박11일 3개국을 도는 단체 여행이었다. 주마간산이려니 했다. 하지만 소박한 나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코카서스산맥 줄기 끝에 위치한 이 나라들의 색다른 문화를 맛보았다. 특히 대자연이 준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불의 땅’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는 일명 ‘바람의 도시’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볼 때, 먼지와 누런 땅들의 연속이었건만, 바쿠 시민들 바로 옆에는 거대한 카스피해가 있었다. 막대한 천연가스와 석유 매장량을 자랑한다. 오일 머니로 부유해지는 그들은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불타는 도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순수한 그들의 눈과 친절한 미소는 기대 이상이었다. 도시 이곳저곳에서 어린 학생들이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사랑해요~!!”라며 환영을 해줬다.

아르메니아는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나라다. 수많은 침략과 학살을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는 사람들과 자연, 유서 깊은 교회, 성당과 수도원이 있었다. 노아의 방주가 걸쳐져 있었던 영산(靈山) 아라랏산(5137m)이 그들을 지켜주고 있었다. 투르크족으로부터 100만명 이상 민족 대학살을 당했을 때, 많은 국민이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 디아스포라의 극한 고통과 슬픔을 이겨내며 살아가지만 성공한 인물들이 많다. 조국을 돕고 후원하는 손길이 끊이지 않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나라, 아르메니아.

조지아의 구다우리는 알프스 못지않은 푸름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늘과 곧 맞닿을 것 같은 위세의 카즈벡산(5047m)은 만년설을 이 여름에도 간직하고 있다. 그 산맥들 사이 트루소밸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풍광이었다. 비가 살짝 내린 후, 키 낮은 수많은 꽃들이 거칠고도 광활한 대지에 융단을 깔아놓고 있었다. 걸어서 5시간 트래킹 코스로 전 세계 도보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이라지만, 아무런 시설도 없을 뿐 아니라, 날씨가 허락하지 않으면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곳이란다. 시간이 부족해 걸을 수 없는 우리들이 타고 갈 사륜구동 지프차가 만들어놓은 거친 울퉁불퉁 길이 있을 뿐이었다. 날씨의 요정 도움으로 한 시간 동안 짙푸른 초록바탕에 빨강, 노랑, 하양 다양한 색의 꽃들로 수놓은 평원을 걸을 수 있었다.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온천 웅덩이에서는 100m 수심에서 뿜어 나오는 뽀글뽀글 광천수가 우리를 반겨줬다. 가히 하나님의 천국, 파라다이스가 이러하리라.

그래, 가길 잘했다. 떠날 땐 용기가 필요했지만, 역시나 후회는 없다. 여행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다리가 떨려서 갈 수 없을 수도 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돌봐야 할 식구도 있을 수도 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을 떨쳐버리고 나가는 것은 참 큰 용기다. 지난번 남미 한 달간 여행은 모두가 인정해 주었다. 39년 퇴직 기념이니 어서 다녀오시라고, 참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고. 응원과 후원을 받으면서 발걸음도 가볍게 떠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주변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떠났다. 나 혼자 중얼거렸다. 지난번 남미 여행 다녀오고 나의 일상이 고마워서 흥얼흥얼 콧소리도 내지 않았는가? 이젠 그 단물이 빠져서 자꾸 일상이 짜증스러워. 내가 스스로 떠나지 않으면, 곧 박제가 되어버릴 것 같은데 어쩔 것인가? 아직 심장이 살아 뛰며 나가라고 요구하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내 아들들도 어머니 다리가 떨려 집에 있어야 하는 상황을 원하지는 않겠지. 씩씩하고 당당하게 신발 끈을 묶고 나서는 어머니를 다행이라고 여기리라. 자신들도 내 나이가 되면 알게 되리라. 아, 울 어머니가 우리를 도우셨구나. 호기심을 가지고 나가서 더 넓은 안목을 챙겨가지고 오는 할머니가 더 필요했었구나 하면서.

여행을 다녀오니, 더 새롭다. 더 고맙다. 더 기대된다.
여행을 다녀오니, 더 새롭다. 더 고맙다. 더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