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문화Ⅱ> 2. 부엌과 음식을 담은 실감콘텐츠, VR 쿡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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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획
아시아의 문화Ⅱ> 2. 부엌과 음식을 담은 실감콘텐츠, VR 쿡북
베트남 다문화가정 이어 고려인의 부엌, 음식문화 실감콘텐츠 개발||심효윤 아시아문화원 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원
  • 입력 : 2020. 05.28(목) 17:06
  • 편집에디터

하노이 외곽 메린 구역의 식사 준비 모습.광주대학교×아시아문화원 컨소시엄 제공

지난여름 전라남도의 한 동네에서 벌어진 사건이 이렇게까지 우리 프로젝트에 영향을 미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2019년 전라남도 무안에서 베트남 출신의 아내를 무차별 폭행한 30대 남성이 구속되었다. 무안군은 바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sia Culture Center, 이하 ACC)이 있는 광주와 매우 가까운 지역이다.

한국인 남편이 아내를 구타하는 폭력적인 영상은 인터넷을 통해 세상에 공개됐고, 뉴스로 전파되면서 온라인 검색포털에서 실시간 이슈로 올랐다. 영상을 본 국민들은 쇼크에 빠졌다. 다시 한번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와 '인종차별'에 관한 문제가 불거졌다. 당사자 간의 갈등에 대해서 깊게 이해할 수는 없으나, 폭행의 시발점이 베트남 음식 때문이라는 걸 기사에서 알 수 있었다. 정리하면 남편이 아내에게 베트남 요리를 그만하라고 했는데, 베트남 음식을 계속 밥상에 올렸다는 이유로 구타를 가했다고 한다.

베트남 음식이 먼 타국까지 와서 왜 이렇게 박한 평가를 받아야 했을까. 한 개인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개발도상국 출신자들의 역사와 문화를 비하하는 게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건 아닌가 반성해야 한다. 천년 고도(古都)에서 생활하는 '하노이안(Hanoian)'의 자부심을 존중해야 하고, 유구한 역사와 풍미가 담긴 베트남의 음식문화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값진 유산인 것을 알아야 한다. 베트남만의 유산이 아닌 아시아의 위대한 유산이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한 데 대해 ACC도 자유로울 수 없다. ACC는 아시아 문화예술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해서 조성된 기관이다. 그런데도 인근 지역에서 이러한 슬픈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ACC가 소외된 시민들에게도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를 누릴 기회를 조금 더 활발하게 제공했더라면 하는 반성이 든다.

국내 다문화가정 100만 명의 시대이다. 행정안전부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8년 광주광역시는 2만1393명 전라남도는 4만6658명이다. 간과해서는 안 될 수치다. 그리고 광주광역시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8년 광주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중에서 베트남 국적자가 4948명으로 제일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중국 4473명, 한국계 중국인 1503명보다 높은 수치다. 이에 따라 아시아문화연구소(이하 연구소)는 베트남 출신의 다문화가정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연구소는 다문화사회의 갈등 문제를 어떻게 문화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이를테면 프로젝트 수행차 방문했던 다양한 가정에서, '부엌'이 집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는 공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요리하고, 음식과 담소를 함께 나누는 소중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부엌이 죽으면 그 가정의 화목도 함께 사라지게 된다. 집밥의 진정한 의미를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는 실감콘텐츠를 제작한다면, 어쩌면 다문화가정과 정서적 교감과 유대가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였다.

실감콘텐츠 개발을 위해서 연구소는 광주대학교 사진영상드론학과와 함께 컨소시엄 사업단을 구성했다. 기관과 대학이 교육 협력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건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이 전담하는 '콘텐츠원캠퍼스 구축운영'사업의 덕택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는 인재 양성이 목적인 프로젝트 프로그램으로, 문화·예술 분야에 뉴미디어 기술을 융합하면서 교육 패러다임 변화의 요구에 발맞춰 운영했다.

작년 여름부터 학생들은 7개월이라는 여정 동안 광주·전남지역에 거주하는 베트남 이주민들의 부엌살림을 조사했고, 반대로 베트남 현지에도 방문해서 하노이 중산층 가정의 부엌을 기록했다. 비엣족뿐 아니라 북부 지역의 다양한 소수민족의 전통 부엌에도 찾아가 식재료를 분석하고, 조리과정을 기록하며 구슬땀을 흘렸다.

학생들은 식재료의 구매과정(장보기)부터 조리과정, 식사까지의 모든 단계를 현장에서 촬영했다. 마치 친구의 집에 초대받은 것처럼 부엌도 구경하고, 집밥을 함께 먹는 느낌이 들도록 VR 영상콘텐츠를 구현했다. 또한, 평소 요리하는 음식은 무엇이고,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그리고 장은 주로 어디에서 보는지 등 일상에 관한 인터뷰도 병행하였다.

예를 든다면 나주 삼영동에 거주하는 탄씨와 함께 집 근처의 아시아 마트에서 장도 봤고, 온라인에서도 베트남 식재료를 쉽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이제 베트남 음식을 요리하는 게 쉬워졌다고 한다. 현지에서 주로 먹는 빵이나, 라이스 페이퍼, 바나나잎, 연유도 살 수 있고, 베트남 설음식인 반쯩도 구매할 수 있다.

한국에서 산모가 출산할 때 미역국을 먹듯이, 베트남에서는 말린 생선, 삶은 샬롯과 각종 야채, 파파야 수프로 조리한 몽저라는 돼지족발을 먹는다는 것도 알았다. 몽저는 모유량을 늘리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해서, 베트남 출신의 산모들에게는 꼭 필요한 음식이다.

한편, 광주 용봉동에 사는 유학생 부부인 반 띤씨의 집에서는 냉장고 속에 고이 간직한 죽순이 기억에 남는다. 베트남에 계신 어머니께서 손수 보내주신 것이다. 죽순은 가까운 담양에서도 구할 수 있지만, 한국의 죽순은 대체로 얇고 속이 비어 있다고 한다. 그에 비해 베트남 죽순은 조밀하고 두꺼워서, 특히 닭고기 죽순 국수를 만들면 그 맛이 일품이다. 타지에서 힘든 유학 생활을 보내고 있는 부부에게 고향 음식 한끼는 큰 힘이 된다.

VR 쿡북 프로젝트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선정되었다. 1차 사업이 다문화가정의 부엌과 살림살이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제작했다면, 2차 사업은 한인 디아스포라(중앙아시아 고려인)의 초국가적 이동에 따른 음식문화를 살펴볼 예정이다. 즉, 소외된 '이방인의 부엌'을 주제로 담은 실감콘텐츠 시리즈를 제작할 계획이다.

특히 올해에는 광주의 고려인마을(광산구 월곡2동)을 집중적으로 조사할 예정이다. 이곳에는 2000년대 초반부터 고려인이 유입하기 시작했고, 최근 4~5년 전부터 가족 단위의 이주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2019년은 그 수가 대폭 증가해서 현재 약 7000여 명의 고려인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 사업단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부엌이라는 공간에 관해서 관심을 두고, 동시대 아시아인들의 다양한 부엌살림과 식문화, 전통적인 음식 보관법 등을 조사하면서 지역마다 전해 내려오는 삶의 지혜를 기록하고자 한다. 더욱이 다문화사회의 갈등이나, 한인 동포를 위한 모국의 역할, 그리고 이들을 향한 관심과 지원 등의 주제는 학생들에게 인문학적인 성찰의 기회가 되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실천적인 교육이 될 것이다.

ACC VR360 전시 플랫폼. 광주대학교×아시아문화원 컨소시엄 제공

베트남 가정식 한상. 광주대학교×아시아문화원 컨소시엄 제공

아시아 마트에서 구입한 베트남 식재료. 광주대학교×아시아문화원 컨소시엄 제공

반 세오를 요리하는 탄씨. 광주대학교×아시아문화원 컨소시엄 제공

넴란을 함께 요리하는 반 띤씨 부부. 광주대학교×아시아문화원 컨소시엄 제공

심효윤 아시아문화원 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원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