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스포츠영웅 프로레슬러 김일 현충원에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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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스포츠영웅 프로레슬러 김일 현충원에 잠든다
손기정·서윤복 이어 5번째 국립묘지 안장||주특기 '박치기'로 국민에게 즐거움 선사
  • 입력 : 2020. 05.21(목) 17:04
  • 도선인 기자

1960년대 '박치기 왕'으로 이름을 날린 국민영웅, 전직 프로레슬러 故 김일 선수가 22일 오전 11시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잠든다. 故 김일 선수는 은퇴 후 레스링 후유증으로 인해 2006년 10월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프로레슬러 1세대로 꼽히는 故 김일 선수는 1963년 세계레슬링협회(WWA) 태그 챔피언, 1964년 북아메리카 태그 챔피언, 1965년 극동 헤비급 챔피언, 1966년 도쿄 올 아시아 태그 챔피언, 1967년 WWA 헤비급 챔피언, 1972년 도쿄 인터내셔널 태그 챔피언에 올랐다. 특히 '박치기'를 주특기로 내세워 어려웠던 시절 많은 국민들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안겼다.

김일 선수가 한창 활동하던 1960~1970년대는 한국 프로레슬링의 전성기였다. 일본에서 활약했던 역도산, 박치기왕 김일, 거구의 몸으로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했던 이왕표까지 프로레슬링 경기가 있는 날이면 사람들은 동네에 한 두대 뿐이었던 흑백TV 앞에 모여 환호하고 열광했다.

지금은 육지로 연결된 고흥 거금도 섬마을에서 태어난 김일은 마을에서 알아주던 씨름꾼이었다. 힘이 세고 다부졌던 그는 우연히 일본 잡지에서 본 재일교포 프로레슬링 선수인 역도산을 보고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후 김일은 피눈물나는 훈련을 거듭하며 역도산의 제자가 된 뒤 1963년 미국에서 열린 세계레슬링협회(WWA) 헤비급정상에 올라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특히 '왕 주걱턱'이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안토니오 이노키를 상대로 한 경기는 지금까지도 전설로 남아 있다. 반칙을 주로하던 외국 선수와 혈전을 벌이면서 막판 박치기로 전세를 뒤집는 순간은 모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환호했다.

하지만 김일은 당뇨와 만성신부전증으로 오래 병원 신세를 지다 2006년 10월 26일 77세를 일기로 고단한 삶을 마감했다.

1994년 국민훈장 석류장, 2000년 체육훈장 맹호장, 2006년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다. 2018년에는 대한체육회의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으로 헌액됐다.

국가보훈처 국립묘지 안장대상심의위원회는 지난달 2일 한국 체육 발전에 공헌한 업적을 인정해 故 김일의 국립현충원 안장을 최종 승인했다.

故 김일 선수의 국립묘역 안장은 2002년 故 손기정(육상 마라톤), 2006년 故 민관식 전 대한체육회장, 2019년 故 서윤복(육상 마라톤), 故 김성집(역도) 이후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으로는 다섯 번째다.

대한체육회는 사회 전반의 체육 가치 향상과 체육인 자긍심 고취 등을 위해 '한국체육 진흥 유공자 국립현충원 안장'을 지원하고 있다.

1960년대 '박치기 왕'으로 이름을 날렸던 국민영웅 김일 선수가 링에서 상대 선수를 제압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제공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