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광장·천세진>백화점의 탄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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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광장·천세진>백화점의 탄생처럼
천세진-문화비평가· 시인
  • 입력 : 2020. 05.21(목) 13:11
  • 편집에디터
천세진(문화비평가· 시인)
2031년 시작될 것으로 본 순인구 감소 현상이 10년 이상 앞당겨져 올해 이미 나타나고 있고, 새로운 생태계로의 전환도 '코로나 19' 때문에 앞당겨질 것 같다. 새로운 변화는 모두가 환호하는 방식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타다', '배민' 같은 사례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낯설고, 강하게 거부하는 것들이 언젠가는 낯익은 것들로 자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때가 결국은 온다. 1852년 프랑스에서 아리스티드 부시코가 만든 몽 마르셰 백화점이 처음 나타났을 때와 지금의 백화점처럼 말이다.

에밀 졸라(1840∼1902)는 제2 제정기 프랑스 사회를 해부하여 20권짜리 루공-마카르 총서에 담는 업적을 남겼다. 집필 작업은 1871년부터 1893년까지 이어졌고, 졸라의 대표작인 『목로주점』도 그중 한 작품이다. 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 11번째 작품은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인데, 백화점의 탄생과 성장을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품의 탄생을 위해 에밀 졸라가 백화점에 대해 치밀한 조사를 했던 덕분이다.

백화점은 현대인들에게 낯선 정물이 아니다. 백화점과 백화점에서 기능을 특화한 대형 할인마트는 현대의 상업 생태계가 어떤 모습을 갖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때문에 백화점과 할인마트 성장사를 살피는 것은 현대사회를 이해하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다.

모든 새로운 것은 반작용에 의해서 탄생한다. 백화점도 그랬다.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에는 이런 글이 등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거대한 백화점은 그녀를 혼란스럽게 하면서 동시에 매료시켰다.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는 갈망 속에는 결정적으로 그녀를 유혹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큰아버지 가게에서는 왠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졌다. 그것은 구태의연한 영업 방식이 유지되고 있는 음습하고 후미진 가게에 대한 본능적인 경멸과 반감 같은 것이었다."

당시의 프랑스 가게들은 독재자처럼 소비자 위에 군림했다. 일정 지역 안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렸고, 소비자를 위한 배려는 어디에도 없었다. 물건은 아무렇게나 쌓여있었고, 가게에 들어선 손님들은 물건을 사지 않고는 가게를 나갈 수 없는 것이 규칙이었다. 가게 주인의 덕목은 많이 파는 것이 아니라 가장 비싸게 파는 것이었다. 상품에 대한 정보를 갖지 못한 당시의 '소비자'는 당할 수밖에 없는 약자를 의미하기도 했다.

쇼핑이 즐거움이 될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백화점을 탄생시켰다. 봉 마르세 백화점은 1852년 개점 당시 12명의 직원과 4개의 매장에서 45만 프랑의 총매출액을 기록했지만,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이 출간된 1883년에는 2,370명의 직원이 36개 매장에서 1억 프랑의 총매출을 올렸다. 불과 30년 만에 200배가 넘는 성장을 한 것이다.

백화점은 단순히 상업공간이라는 의미에 그치지 않았다. 부시코가 창업한 몽 마르셰 백화점과 그가 도입하고 창안한 시스템은 현대 자본주의 풍경의 밑그림이었다. 소비자와 생산자를 연결하는 백화점이 가장 강력한 상업적 패권을 갖게 되었고, 제조업자들의 경쟁을 부추겨 백화점에 종속시켰으며, 내부적으로는 판매 수당제와 승진제를 도입하여 직원들을 경쟁시키고 자본주의의 노예로 만들었다. 현대적 상업시스템, 광고시스템에 그치지 않고, 공급 과잉 체제를 낳은 것도 백화점이었다.

'타다'의 출현으로 생태계가 변화하려고 하자 택시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법으로 보호받는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다. 최종 결정권은 소비자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에 차가 등장하자 백화점으로 손님을 실어 나르던 마차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100여 년 전 싸움의 승자는 택시였다. '배민'이 최근 수수료 체계를 바꾸었다가 이전으로 환원한 것도 전적으로 소비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잠시 주춤했지만, 배민의 탄생 자체가 이미 생태계의 파격적 변화를 의미한다. '배민'이 소비자와 생산자의 중간에 서서 삼자가 상생(相生)하느냐 독식하느냐를 결정하는 것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생태계 변화는 반드시 승자와 패자를 만든다. 1세기 이상 승자로 군림한 백화점도 언젠가는 패자가 될 수 있다. 변화의 수용과 거부는 선악의 문제가 아니다.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가장 좋은 것은 '연착륙'이다. 착륙 자체를 거부하게 되면 다음 수순은 '급전직하'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