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총, 균, 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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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다시 읽는 '총, 균, 쇠'
  • 입력 : 2020. 03.09(월) 14:35
  • 박간재 기자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긴급뉴스를 전해드립니다.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했습니다. 화성인들의 군대가 뉴저지주 부근 한 농장에 착륙했습니다. 화성인들이 주요시설을 파괴하고 도로는 피난민 행렬로 북새통입니다. 미국이 혼란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1938년 10월30일 일요일 오후 7시58분. 미국 CBS 라디오에서 드라마를 방송하다가 갑자기 뉴스를 전했다. 이 뉴스는 실제 상황이 아니라 '화성인의 습격' 이라는 드라마의 일부였다. 매스미디어 역사상 가장 큰 해프닝으로 기록된 이 사건은 영국 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스의 공상과학소설 '우주전쟁(The War of the World)'을 각색한 드라마였다. '우주전쟁'은 1953년(조지 팰 감독)과 2005년(스티븐 스필버그) 영화로 방영됐다. 웰스는 구한말 한국을 방문해 '고요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the Calm)'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인물이다.

 이 책은 1898년 웰스가 쓴 소설로 문어처럼 생긴 괴물 화성인들이 무시무시한 무기를 앞세워 지구를 침공한다는 게 줄거리다. 화성인들은 화성에 종말이 닥치자 우주선을 타고 영국의 한 시골마을에 착륙한다. 초록색 열선과 독가스를 발사하며 사람들을 공격했고 런던은 초토화가 된다. 그당시엔 지구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핵무기까지 발사하며 점령해 간다. 그러던 화성인들이 갑자기 죽어간다. 지구상에 있는 박테리아에 감염돼 죽음에 이르게 됐다. 지구의 미생물에 면역력이 없었던 탓이다.

 라디오 방송이 나가자 의외의 사건이 터졌다. 공포에 질린 뉴욕 시민들은 진짜 피난행렬에 동참했다. 뉴저지 주에서는 "유독가스가 퍼졌다"는 소문에 피츠버그에서는 절망한 여성이 독약을 먹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등 미국 전역이 공황상태에 빠졌다. 600만명의 청취자 중 120만명이 피난길에 올랐다는 통계가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겁먹은 사람들이 화성인의 독가스를 피하려고 젖은 타올을 얼굴에 두르고 집을 뛰쳐 나갔다. 서부에서는 로키산맥으로 향하는 피난행렬이 줄을 이었고 일요일 저녁 예배드리던 신자들은 종말이 왔다는 사실에 몸을 떨었다."

 #유라시아 대륙은 운좋게도 다른 대륙과는 달리 소, 말, 양, 돼지 등 가축화가 가능한 13종 이상의 포유류가 존재했다.

 지리적, 환경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덕택에 유럽인들은 수만년 동안 병원균을 보유한 13종의 포유류와 함께 항체를 형성하며 살았다. 동물 가축화 초기단계에서 병원균에 희생되기도 했지만 면역성과 저항력을 키워가며 공존할 수있었다. 반면 남아메리카에는 낙타와 라마 외 가축화 할 동물이 없었다. 유럽인들이 보유한 병원균에 노출된 적이 없던 남미 인디언들은 유럽인들을 만나면서 유행병이 돌았고 95%가 몰살에 가까운 죽음에 이르렀다.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쓴 '총, 균, 쇠(문학사상·김진준 옮김)-제3부 지배하는 문명, 지배받는 문명(제1장 가축의 치명적 대가, 세균이 준 사악한 선물·p285~313)' 중 일부다.

 유럽인들이 남미에 상륙한 뒤 원주민들을 전멸시킨 무기는 총·칼이 아닌 천연두, 장티푸스, 홍역 등 균이었다. 유라시아 대륙은 운좋게도 가축화 할 동물이 많았고 가축으로부터 젖, 비료, 털, 노동력, 군사용 고기, 가죽까지 얻을 수 있었다. 모든 자원을 얻었으며 그 중 최고의 선물은 가축을 기르면서 따라온 균이었다.

 사례를 살펴보면 1520년 스페인령 쿠바에서 천연두에 감염된 노예가 멕시코에 도착했다. 급격하게 퍼진 이 병은 스페인인들은 제외하고 인디언들만 골라 몰살 시켰다. 2000만명에 달했던 멕시코 인구가 1618년 160만명으로 곤두박질 쳤다. 카리브해에 있는 히스피니올라 섬의 인디언 인구는 콜럼버스가 도착한 1492년 800만명의 인구에서 1535년엔 0명으로 궤멸됐다.

 위에서 보듯이 유럽인들은 여러 대륙에 '사악한 선물'을 제공했다. 반면 남미 원주민들은 인구밀도도 낮고 병원균에 노출이 안돼 면역력 자체가 없어 죽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신세계에 뿌리 내린 구세계의 병원균이 모든 일을 해치운 셈이다. 유럽인들의 DNA가 우월해서가 아닌, 가축의 균 덕택에 남아메리카를 지배할 수 있었다. 사회가 붕괴되기까지 정복자들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균은 지구 탄생 이후 수억년 동안 생명을 이어왔다. '우주전쟁' 속 선진문명을 가진 화성인을 괴멸 시켰고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멸종시키며 위력을 발휘했다.

악명을 떨치던 균이 이번에는 지난해 말부터 중국 우환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퍼져나가 전세계로 확산 추세다. 국내에도 확진자가 7000명, 사망자가 50명을 넘었다.

 두렵지만 슬기롭게 예방하며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허버트 조지 웰스의 공상과학소설 '우주전쟁'과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쓴 '총, 균, 쇠'는 물론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강병철 옮김·꿈꿀자유)'의 저자 데이비드 콰먼의 얘기에도 귀를 기울여야겠다.

 "인수공통 감염병이 창궐하는 이유는 바이러스가 특별히 인간을 표적으로 삼아서가 아니라 인간이 너무 많이 존재하고 너무 주제넘게 침범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분별있는 행동과 선택만이 감염률을 극적으로 낮출 수 있습니다"



박간재 기자 kanjae.park@jnilbo.com